인터뷰 후기-스물넷의 가난

by 김보리

너를 만난 그 봄, 거리는 분주해 보였다. 여기저기 봄 잎사귀들이 삐죽삐죽 머리를 내미는 것도 모자라 다채로운 색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 온통 갈색과 흰색, 회색만 있던 겨울을 지나온 터였다. 늙으면 꽃이 좋아진다고 한다. 꽃을 보면 휴대전화를 들이밀고 사진 찍기에 바쁘다.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요즈음 내가 하고 있다. 동네 산책을 하다가도 붉은 철쭉을 만나면 걸음을 멈추고 향을 맡거나 사진을 찍는다. 멀리 산봉우리 희끗희끗한 산벚꽃을 따라 무작정 산행을 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그저 나이 듦에서 오는 연유만은 아닐 것이라고, 너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하곤 했다.


언젠가 열두 살 아이가 어른이 되기 싫다고 말한 적이 있다. 왜 그러냐고 물었다. 아이가 요즘 빠져 있는 게임 중 하나가 귀신 잡기 게임인데 어른이 되면 귀신을 볼 것 아니냐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도 귀신을 안 보는 사람이 더 많다고 했다. 그건 어른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아니라고도 했다. 아이는 이해하기 힘든 표정을 지으며 휴대전화 게임에 다시 열중한다.


어릴 적 나도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어른이 되면 내 손으로 밥을 해 먹어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하고, 빨래도 해야 하며, 돈도 벌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특별히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주변 어른들 모습이 그랬다. 어른들은 늘 무언가에 바빠 보였고, 해가 뜨면 집을 나가 초승달이 머리 꼭대기에 걸려서야 돌아왔다. 집에 오면 쓰러져 자기 바빴고, 쉬는 날도 없었다. 저렇게 손에 잡히지 않는 날들을 하루하루 보내면서 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친구들과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소꿉놀이도 해야 하고, 줄넘기도 백 번 해야 하고, 술래잡기도 해야 한다. 숙제도 하고, 그림책도 읽어야 한다. 할 일이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어른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아마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이는 어른이 되어 가고 어른은 노인이 되어가며 노인은 아이가 되어간다. 세상의 비정함과 야속함이 교차하는 지점, 애매한 어른인 내가 너를 만나러 가고 있었다.


5월에 너를 만나고 10월에 너의 안부를 묻는다. 2월 퇴소하기 전 LH임대주택을 계약해 자취할 예정이라고 한다. 다시 연락한다고 했지만 이런저런 일을 처리하느라 시간을 낼 수 없었다. 11월이 되어서야 전화한다. 필요한 거 없냐고 묻는다. 많다고 한다. 뭐가 필요하냐고 했다. 이것저것이라는 말이 돌아온다. 세상 가장 어려운 주문이다. 약속을 잡고 일주일 내내 생각한다. 원하지 않는 물건을 가지고 가는 일은 쓰레기가 될 것이 뻔하다. 생활하며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고민한다. 내가 찾은 답은 음식이다. 밥은 매일 먹어야 하니까. 음식을 해서 가져가는 것도 개인 입맛을 맞출 수 없으니 부적합하다. 쌀을 사서 페트병에 담는다. 부식 거리 몇 가지와 휴지를 챙긴다.


다시 너에게 다시 가는 길, 도로는 한산하다. 도로 옆 은행나무 한 그루가 마지막 노란 잎을 떨구고 있다. 이미 노란 이불이 갈색으로 변하고도 한참 지났을 때다. 다른 것은 겨울을 나기 위해 이리도 서두르는데 아직 가을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는 은행나무에 안쓰러운 마음이 몰려왔다. 겨울은 가난한 계절이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슬픔의 문을 잡고 서 있는 청춘의 모습과 어딘가 닮았다. 현관 손잡이의 차가운 감촉마저도 청춘에게는 시린 발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두서없이 몰려온다. 아마도 그래서, 다시 오고야 말 봄을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오전 9시가 조금 넘은 시간, 너는 부스스한 머리로 청소기를 든 채 문을 연다. 9평 원룸이다. 현관에는 재활용 수납함이 있고 슬리퍼와 운동화가 어지럽다. 좌측은 화장실, 우측엔 싱크대다. 한쪽에는 침대와 텔레비전이, 맞은편에 아르바이트를 해서 구매했다는 게임용 컴퓨터가 있다. 유튜브를 하기 위해 구매한 마이크도 눈에 들어온다. 너는 여전히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집안은 따뜻하다. 가방에서 가져온 물건을 꺼내는 동안 너는 청소기 들었던 손을 어쩌지 못한 채 가만히 서 있다. 점퍼를 벗고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그제야 청소기를 내려놓고 앉는다.


이 집에서 처음 잔 날 어땠어요?

아~편하다?

무섭지는 않았어요?

뭐 별로.

한 달 넘었어요?

네.

막상 혼자 생활해 보니 어때요?

후달리죠. 돈 관련해서.

혼자 살면서 제일 고민이 뭐예요?

음…매일 뭐 먹을지가 고민. 반찬은 지인들이나 원에서 가져다주기도 해서 그거로 때우거나 라면 먹어요.


너가 살았던 시설과 집까지는 걸어서 24분 거리다. 아는 사람이 많아 지금까지 살았던 지역이 편하다. 잘 되면 서울이나 경기도로 가고 싶다. 아직은 생각만 한다.


서울에서 인천, 인천에서 전라북도 진안, 진안에서 충청북도 보은, 보은에서 다시 인천으로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한 동네에서 다른 동네도 아니고 지역을 옮겨 다니며 사는 내게 친구는 훌훌 떠나서 부럽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어디야,라고 묻는 친구에게 나도 모르는 내가 답했다. 목숨 같은 고향에 가는 중이라고.


결론부터 말하면 그런 고향은 없었다. 인천에서도 진안에서도 보은에서도 그리고 지금 여기서도 나는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다. 돌이켜보면 그저 시간을 떠돌아다니며 잠시 머물렀을 뿐이다. 기형도 시인의 말처럼 여러 번 장소를 옮기며 살았지만 나의 경력은 출생뿐이었고, 두려움은 나의 속성이며 미래가 나의 과거였다고 말하고 싶었다(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중 『오래된 書籍』, 문학과지성사, 1994). 떠나고 나니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곳이 고향이라는 것을. 비록 그곳에도 나의 흔적은 없겠지만. 그래서 다행이기도 하다.


삶이 무지근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허름한 술집에서 혼자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을 때, 나는 사뿐사뿐 걷는다고 걷는데 죽은 하늘이 먹구름처럼 몰려올 때, 내가 나를 버리고 나를 모르는 내가 나를 부를 때가 그러하다. 그 진득거리는 생을 부여잡고 나는 고향으로 가는 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고향이 어디인지 모르는 너는 어디로 갈까. 그곳이 어디든 과거를 매달지 말고 훠이훠이 가볍게 하늘을 날았으면 좋겠다. 너의 하늘이 너에게 들어와 진짜 하늘이 되면 좋겠다고,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고 하루 종일 하늘을 보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한눈에 들어오는 원룸 싱크대 앞에 쌀 20kg 포대가 쭉 찢어진 채 문에 기대어 있다. 행거 밑에는 드라이기가 바닥에 드러누워 있다. 텔레비전 밑에는 각종 종이들이 어수선하다. 날벌레가 들어갈 수도 있을 텐데, 난방을 하면 쌀이 쉽게 상할 텐데, 드라이기를 욕실에 걸어두면 좋을 텐데, 종이는 빈 박스에 넣어 수납하면 되는데, 따위의 잔소리 심한 노인네 같은 걱정을 한다. 정작 너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태연하다. 여전히 고개를 30도 정도 꺾은 채 바닥을 응시하고 있다.


자취하면서 주거급여와 기초생활수급비, 주말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해결한다. 시청에서 두 달에 한 번 부식을 지원해 준다. 첫 부식으로 돼지고기를 받았다. 평일에는 컴퓨터 활용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학원에 간다. 일주일에 한 번은 이력서와 자소서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학원에 간다. 학원은 지원사업으로 신청했는데 어떤 지원사업인지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불안하죠. 장래 문제 생각하면. 미래에 내가 뭐 먹고사나, 취업이 자신 없어요. 잘할 수 있을까? 이상한 사람 많으면 어쩌지? 뭐 이런 생각. 얼마 전에도 공단 시험 봤는데 떨어졌어요. 저는 눈도 높지 않고 돈 적당히 벌면서 오랫동안 다닐 수 있는 직장이면 좋겠어요. 월급은 250에서 300? 내 생활하고 여행 다니고 영화 보는 정도의 여가 생활하고 저축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한 거 같아요.”


너와의 이야기는 많은 침묵으로 이어진다. 부식거리 중 말린 자몽 차를 가져갔다. 침묵과 침묵 사이 나는 가져온 차를 마시자고 했다. 주전자가 없다고 한다. 차를 안 마신다고 한다. 오래 같이 지내봐야만 알 수 있는 취향의 문제가 나는 어렵다. 다행히 커피는 있다고 한다. 커피머신이 싱크대 앞 바닥에 있다. 180이 넘는 키인 너가 쭈그리고 앉아 커피 캡슐을 넣는다. 유리컵에 커피를 따르고 자연스럽게 냉동실에서 얼음을 꺼낸다. 잠시 망설인다. 얼음을 넣지 말라고 할까? 때는 11월 중순이었고 나는 얼죽아는 아니다. 따뜻한 커피가 마시고 싶다. 아무 말 없이 커피를 마신다. 채 녹지 않은 얼음에 첫 커피는 미적지근하다. 커피를 마시는 잠시, 다시 침묵이 지나간다.


오래 앉아 있는 것이 눈치가 보인다. 준비하고 학원 가야 되지요, 라며 주섬주섬 옷을 챙긴다. 어려운 일 있으면 연락해요,라는 말을 남긴다. 어려운 일이라니. 나는 내 입을 원망한다. 막막하지는 않지만 불안하다는 너에게 할 수 있는 말이 고작 그것밖에 없다.


막막하다는 뭘 해야 할지 모르거나 기대고 의지할 사람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불안함은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막막함이 아닐까. 막막함을 견디다 보면 불안감이 안정감으로 변할까. 『일인칭 가난』(마티, 2023)의 안온 작가는 20여 년을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았다. 작가의 젊은 가난이 너의 가난과 오버랩되었다. 본문에 이런 글이 있다.


“‘20대 청년’이라든가 ‘MZ세대’ 같은 용어의 기본값에 우리가 포함될까. ‘청년’에서 여성이 배제되고, ‘20대’에서 가난이 고려되지 않고, ‘MZ’를 ‘고생’을 모르는 세대로 취급하는 사회에서 말이다. 그러고 보면 열음이 한 말이 백번 옳다. 우리를 아는 건 우리뿐이다.”


너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너와의 시간을 다시 듣는다. 침묵의 말들 앞에서 나는 침묵했다. 가난한 스물네 살의 청년, 고생을 아는 ‘MZ’ 세대인 너에게 나는 너를 안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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