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받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

by 김보리

너는 렌즈가 없는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있다. 너가 안경 안으로 손을 넣어 눈을 비비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하얀 피부에 불그레한 뺨, 웨이브가 들어간 검은색 긴 머리, 헐렁한 티셔츠, 빨간색 스니커즈가 잘 어울린다. 너와 나는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카페로 들어간다.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오간다.


2024년 1월에 퇴소했어요. 미디어영상광고를 전공했고 2학년까지는 기숙사에 있다가 3학년 때부터 자취했어요. 사비로. 저는 장학금 받아서 딱히 큰 부담은 없었던 것 같아요. 여기저기 알아보고 받는 돈이 많았어요. 자립준비청년 지원사업에 글도 쓰고 면접 잘 보면 지원금이 있으니까. 특히 대학생 대상으로 지원하는 사업이 엄청 많아요. 많이 배웠죠. 교육 이수를 하거나 단체 프로그램도 했는데 주기적으로 교육도 받고 식비 지원, 주거 지원, 생활비 지원도 받을 수 있어요. 단대별로 한 명씩 주는 장학금이 있는데 거기에 플러스로 기초생활수급자 친구들은 500만 원을 더 받았어요. 저는 4년 내내 받아서 조금 안정적으로 학교를 다녔죠. 받는 게 아니라 찾는 거죠. 제가 퇴소하기 전까지만 해도 자립준비청년 지원금이 500만 원밖에 안 됐어요. 저부터가 1천만 원으로 늘어났거든요. 폭이 좁았던 것 같지만 예전부터 월드비전이나 초록우산에서는 꾸준히 해왔지만 그만큼 물가가 심하게 올랐으니까.


서울 이사 온 지 한 달 조금 넘은 것 같아요. 졸업하고 학교 근처 자취방에 계속 있다가 LH임대주택이 조금 꼬였는데 되자마자 바로 서울로 왔어요. 심지어 서울에서 강남이거든요? 물가가 너무 비싸요. 진짜 밥을 사 먹으면 무슨 국밥이 1만 5천 원 이렇게 되니까 깜짝 놀랐어요. 근데 다행인 건 제가 원래 집에서 해 먹는 걸 좋아해요. 밖에서 사 먹는 것보다 해 먹는 게 더 맛있지 않아요? 뭔가 해주는 것을 좋아해요. 원에서도 선생님들 몰래 밤에 애들 데리고 식당에서 만들어 먹은 적도 있어요. 예전엔 불가능했고 지금 건물이 새로 지어진 건물인데 그때부터 많이 풀렸어요. 선생님들도 시대가 바뀌는 걸 아시고는 저희를 풀어주시지 않았나 싶어요.


너의 눈이 반짝거린다. 먹을 복은 타고난다고 어른들은 말한다.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너는 식당에 가도 서비스를 자주 받는다며 즐거워한다. 남자친구가 너와 있으면 굶을 일 없을 것 같다고도 한다. 자취하면서 김치는 주변에서 언제나 떨어지지 않게 챙겨준다. 먹을 복이 있다기보다 인복이 있는 건 아닐까. 반찬 세 가지와 국이 있어야 밥을 먹는다는 너는 손이 크다. 매일 같은 반찬 먹기는 싫은데 하다 보면 많아진다. 음식물 쓰레기를 만들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먹는다. 대학생 때는 주변에 학교 친구들이 있어 나눠 먹었지만 서울에 오니 반찬 나눌 사람이 아직은 없다. 틈틈이 남자친구 어머니가 김치나 밑반찬을 가져다준다. 너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김밥이다.


고3 때 음악이 하고 싶었는데 현실적으로 너무 늦기도 했고, 저의 상황이 음악을 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거예요. 그렇다고 스트레스받아 가면서 붙들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럼 잘하는 게 뭐지,라고 생각을 해봤는데 굳이 미디어 쪽이어야만 한다는 생각은 없어요. 저는 아직까지 음악을 계속하고 있고, 버리지 않았거든요. 솔직히 제가 직업을 삼고 싶은 것들은 그냥 부가적인 것 같아요. 그나마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거 아니면 직업적 가치관이 맞는 것이 뭘까를 생각하다가 미디어 계열을 배우자 했던 거죠. 언론과 영상, 광고가 있으니까 이 학과가 나랑 맞겠다 해서 가게 된 것 같아요. 근데 영상 쪽이 더 맞다 생각했는데 하다 보니까 오히려 언론이나 광고 쪽이 더 맞더라고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광고 쪽으로 취업 준비를 하고 있어요. 지금은 UN한국협회 인턴을 하고 있어요. 사무국에서 조직적인 경험을 해서 저의 경쟁력을 올리는 거죠. 올 한 해는 저의 목표를 위해 준비하는 시기인 거 같아요.


UN한국협회가 국제 협력, 국제교류 쪽이잖아요. 내가 너무 모르는 분야고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배우다 보니까 재밌는 거 같아요. 환경이나 전쟁 같은 다양한 국제 이슈들을 주로 다루고 있고 ESG 경영도 좀 더 깊게 배울 기회 같아서 좋아요. 조금 힘든 거는 모든 게 다 영어로 이루어지니까. 면접 때 영어를 진짜 못한다고 얘기했는데 어떻게 뽑혔는지 모르겠어요. 모든 공문과 회의안건지가 영어로 되어 있어요. 그냥 단어가 하나씩 보이니까 대충 듣고 번역기 돌리죠. 아직까지 무리는 없는데. 가끔 윗분들끼리 영어로 대화하다 보면 유럽 쪽 영어권에서 생활하다 오신 분들이라서 더 몰라요. 오히려 이제 영어를 확실하게 해야겠다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저는 6개월 계약 인턴인데 광고를 하고 싶으니까 거기는 정말 그냥 인턴 경험으로만.


저는 배우는 걸 되게 좋아해요. 이런 게 취미에도 접목이 되는 것 같아요. 취미를 만드는 게 취미예요. 되게 많아요. 밴드도 하고 그 안에서도 악기들이 보이잖아요. 어, 나 그러면 저거 배워봐야겠다 해서 지금 기타와 베이스도 조금씩 배우고 있어요. 그리고 음악 안에서도 되게 다양한 것들 있잖아요. 음악 녹음을 하고 작업하는 것들도 배워보려고 생각하고 있고. 그 외에도 운동을 좋아해서 헬스랑 필라테스 같은 것들도 하고. 요즘 수영이나 테니스도 배우고 싶고. 최근에 친구들한테 골프를 잠깐 배웠는데 재밌더라고요. 제가 운동 신경이 좀 좋아요. 처음 스크린 골프를 했는데 원래 하던 친구들보다 제가 점수가 더 잘 나와요. 그렇게 배우는 재미가 있고 다양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듣는 걸 되게 좋아해요. 학교 다닐 때도 제가 동아리 활동이나 학생회 활동하면서 다른 전공 친구들이랑 술자리가 많았어요. 애들은 재밌는 얘기를 하고 싶어 하는데 저는 ‘야, 근데 너희 전공에서 뭐 배워?’, ‘너희 뭐 어떻게 해?’ 이런 거 물어보거든요. 그런 거 듣고 있으면 재밌어요. 잡지식이라고 하죠. 그런 게 되게 좋더라고요.


너의 목소리는 하이톤에 가깝다. 터치드나 유다빈 밴드도 좋아하지만 산울림과 이문세, 김광석 노래도 좋다. 가사에 집중하며 통기타 하나만으로 울리는 노래는 감동의 쓰나미라며 손을 맞잡는다. 서울에 와서도 밴드 활동은 계속한다. 밴드 구성원 중 홍일점이다. 서울에서 버스킹이나 무대에 올라갈 계획도 있다. 지방에 있을 때는 간혹 행사장에서 공연했다. 너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밴드 공연 영상을 본다.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바다를 배경으로 해서다.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는 이미 충분히 근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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