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함께 한 시절

by 김보리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원에 들어갔거든요. 다른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 얘기를 들어보니까 사건 사고도 많고 엄청 강압적인 분위기였더라고요. 그거에 비하면 우리가 그렇게 강압적인 분위기가 아니었구나,라는 걸 조금 느끼긴 했어요. 그때는 왜 우리 이거 못하게 하지, 저거 못하게 하지,라는 생각도 했는데 그럼에도 다른 데 비교하면 많이 풀어줬던 느낌이었어요. 폭력이 많다고 하는데 선생님들한테 맞는다기보다는 자기들끼리 싸우는 거예요. 남자애들은 오빠들한테 맞는 거고 이건 원의 분위기가 아니라 원래 그렇게 크는 사람들이잖아요. 학교에서도 싸우는데 원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도 없고. 물론 선생님들이 그걸 제어를 해주니까 그 정도에 그쳤던 거지. 솔직히 원의 차이고 뭐고는 아닌 것 같아요. 여자애들도 엄청 많이 싸웠어요. 진짜 저희도 치고받고 싸우고, 뭐 부서지고, 근데 이거는 저희의 문제인 거니까. 잘못하면 외출 금지, 간식 먹지 마, 근데 그것도 좋은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체벌에 비하면 괜찮았는데. 이제 법과 시대가 변해서 다 없어지는 거 같아요.


저는 제가 있던 원에 종종 가고 싶어요. 원에 있으면서 여행도 많이 가고 후원자분들도 매년 와 주시고 그런 게 재미있는 거 같아요. 매일매일이 수련회 같은 기분? 단체생활하면서 힘들었던 것도 있지만 아직까지 나의 어린 시절을 같이 공유할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친구도 학년마다 바뀌는데 여기는 초등 때부터 성인 때까지 추억이 함께 있잖아요. 누군가 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해 줄 수 있고, 나도 그렇고.


너는 화장실에 다녀온다며 일어선다. 나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숨조차 가만하다. 지금 시간이 그대로 박제되기를 바란다. 물 흐르듯 지나가는 너와의 일분일초가 정교한 한여름을 같이 보는 기분이다. 행여 내가 놓치는 부분은 없는지 조바심도 난다. 너가 빠져나간 빈 의자를 바라본다. 너의 휴대전화가 눈에 들어온다. 휴대전화 뒷면에 남자친구와 찍은 스티커 사진이 있다. 화장실을 다녀온 너에게 묻는다. 혹시 가족에 대해 이야기해 줄 수 있는지 말이다.


엄마는 알코올의존증이 있고 아빠가 도박을 좀 했어요. 두 분이 많이 싸웠어요. 술 마시고 싸우면 엄마가 저를 학교 못 가게 붙들어 놓고, 엄마가 저를 떼어 놓지 못했어요. 저는 저의 삶이 영위되지 않으니까. 아빠는 지방에 내려가 계시고 엄마는 술 마시면 제어할 사람이 없으니까 너무 힘든 거예요. 차라리 이혼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러다가 교회 분들이 나를 시설에 보내는 것을 권유했어요. 평소에도 저와 떨어지는 걸 힘들어했는데 엄마 걱정이 됐어요. 엄마가 나 없이 괜찮을까? 아니나 다를까, 엄마가 외로워하고 술도 마시고 그랬는데 어느 순간부터 괜찮아지더라고요. 저는 원에 들어가서 삶이 편해졌어요. 친구들과 놀고, 제때 음식과 간식 나오고, 여행과 문화 체험하니까 더 나았던 것 같아요. 엄마 보러 가면 답답했어요. 암울하니까. 중학생 때부터는 더 멀리했던 것 같아요. 떨어져 있으니 서로를 기억하는 게 너무 다르고 대화가 어렵더라고요.


제가 스물한 살 때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폐암이 뇌로 전이되어서. 매정해 보일 수 있는데 엄마랑 정서적 교류가 많이 없었고 금전적 지원이 없었기 때문에 조금 빨리 딛고 일어날 수 있었어요. 힘들었던 건 제가 어딘가 갈 곳이 없다는 정도? 아버지와는 2~3년 전부터 연락 안 해요.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별로 없고 불편해요. 제가 이제는 아버지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심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독립한 상태인데 아버지와 관계가 이어지면 혹이 하나 생기는 느낌이었어요. 저 스스로도 이렇게 따지는 게 제가 싫거든요? 뭐 어쩔 수 없죠.


원에 있는 게 창피하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저는 중학생 때부터 다 얘기했어요. 다들 놀라더라고요. 몰랐다고. 다른 애들은 버스 타면 전 정거장에서 내리는데 자기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안 그래도 되는데 왜 저러지? 자기가 잘하면 그런 얘기 안 들을 수 있어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좋은 상황이 되기를 바라야 하는데.


저는 일반 자립 청년이랑 조금 다른 스타일인 것 같아요. 결이 다르다고 해야 하나? 지금 원에 있는 자립준비청년들만 봐도 외부 인맥이 많이 없어요. 아직도 자기들끼리 연락하고 애초에 학교 친구들이 없어요. 당연히 퇴소하면 외로울 수밖에 없죠.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없으니까. 저는 오히려 원에서는 정말 아끼고 가까웠던 그리고 저와의 발전 가능성이 있는 관계들만 유지하고 나머지는 아예 연락을 끊었거든요.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저는 사회에서 만나고 유지하는 관계들이 훨씬 많다 보니까 한 번도 외롭다고 느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나 심심해, 나 외로워 이러면 나와주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래도 가까운 친구까지는 아니라도 어느 정도의 인간관계 형성이 잘 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자립 청년들뿐만이 아니어도 고립되어 있다고 느끼는 건 지금 2030 모든 청년들이 다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거든요. 조금 더 심한 게 자립청년일 수밖에 없다는 정도?


요즘은 다 핸드폰 보면서 에어팟 끼고 돌아다니고 사람 속에 고립되어 있다고 느낄 수 있거든요. 그거를 나오려면 자기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맨날 사람 안 만나고 집에서 컴퓨터 하고 유튜브만 보고 게임만 하면서 외롭다고 얘기를 할 건지가 있나? 자기 스스로 갇혔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그래서 오히려 애들을 밖으로 밀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애들이 밖에서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든지 아니면 동우회라든지 이런 방법으로 조금 밀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어떻게든 나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좀 드네요. 어쨌건 스스로와 외부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사람을 만나야 인간관계가 생기는 건데 만나지 않는데 외로움을 어떻게 해결할 수 없잖아요. 마냥 누군가가 자기를 계속 데려가 주길 바란다는 거는 너무 아이 같고 이기적이라 생각하거든요. 자립준비청년들이 받는 지원을 이용해 자기가 어떻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어떻게 좀 더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자립준비청년 지원사업이 5년이잖아요. 제가 보기에 딱 5년이 적당한 것 같기는 해요. 왜냐하면 5년 이상을 지원하면 대학교 졸업하면 24살이고, 남자들도 군대 안 가니까 24살에 졸업해요. 그러면 29살이잖아요. 30대를 넘어갈 때까지 지원한다는 게 좀. 그러면 얘는 도대체 자기 인생을 평생 책임지고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조금 들어요. 30대 때는 자기가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삶을 혼자 꾸려야 되잖아요. 완전히 다 꾸리지는 않아도 첫걸음은 이미 한 상태여야 되는데. 그리고 요즘은 보호 연장을 더 할 수 있잖아요. 저는 시설에서 선생님들이 ‘더 연장하면 안 되냐? 가지 마’ 그랬는데 ‘선생님 저 이제 놔주시면 안 돼요? 저 이제 가야 할 것 같아요. 저 이제 갑니다~’ 그러고 나왔죠.


너는 ‘자립준비청년’이라는 단어가 소속감을 준다고 생각한다. 퇴소를 앞두고 막막했을 때 다른 청년들이 어떻게 그 시간을 지나 살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자립준비청년들이 모인 프로그램에 가다 보니 일반 청년들과 다른 자립준비청년들만의 소속감이 생겼다. 자립준비청년 스스로가 겪는 자격지심이 있다고 말한다. 자격지심이라기보다는 평범하지 못할 것 같아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변두리를 서성거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아닐까. 청년들의 간절함과 불안함이 삶이라는 정제된 단어 앞에 오연히 서 있기를 바라는 것은 나의 오만함은 아닐지.

이전 19화2. 꿈과 직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