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소하기 전에 도내에 있는 기관에서 독일로 해외 연수를 갔다 왔거든요. 독일의 아동정책을 살펴보고 한국에 와서 정책 제안을 하는 사업이었어요. 2주 조금 안 되는 기간이었는데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자본이 가장 큰 것 같아요. 다르다고 느낀 게 독일은 우리나라처럼 ‘자립준비청년’, ‘보호종료아동’이라는 키워드가 없어요. 독일은 애초에 지금 자립준비청년들이 누리고 있는 주거 지원, 식비 지원 혜택들을 어떤 청년이건 다 누릴 수 있어요. 그러니까 사회적으로 자립준비청년을 어떻게 도와야겠다는 게 없어요. 왜냐하면 다 영유하고 있으니까. 자립준비청년들은 오히려 지원받는 거를 더 싫어한대요. ‘너희 퇴소 아동이니까 이런 거 지원 더 해줄게’라고 하면 ‘우리 할 수 있어’, ‘우리 해 보겠다’, ‘이런 지원 안 받아도 된다’고 해요. 우리는 보통 학교에 맡기고 시설에서 뭔가를 하지 않잖아요. 근데 거기는 시설에서 직업 훈련을 무조건 해요. 그러니까 자립준비청년들 스스로가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는 거예요. 근데 한국은 ‘오냐오냐’가 조금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자립준비청년들 지원해 주는 건 고맙고 저도 너무 잘 받고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잘 받는 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사회 일원으로 다가가야겠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겠다가 있어야 하는데 마냥 받는 친구들만 보면 안타까워요. 이거 5년만 지나면 정말 없잖아요. 그러면 ‘그때는 어떡할 건데’라는 생각이 들면 너무 안타까운 거죠. 독일을 보고 들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보편적 청년들이 누릴 수 있는 혜택들이 많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반 청년들을 대상으로 지원해 주는 사업들을 다 모아서 볼 수 있는 사이트가 있거든요. 제가 거기 자문단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정부에서도 노력을 많이 해요. 가장 근본적인 건 어쨌거나 자본의 문제예요. 독일에서 놀랐던 게 저희는 한 시설에 3~40명이 있으면 선생님들이 10명 정도밖에 안 되잖아요. 거기는 거의 1대 1의 비율이에요. 그들도 고령화가 진행되고 인력난을 겪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관계가 가능한 건지 여쭤봤는데 사회복지사 첫 월급이 800이 넘는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본으로 인력난이 해결되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나라 아동들 한 달에 들어가는 비용이 얼마 안 되잖아요. 솔직히 저희 시설에서 들어가는 비용을 보면 100만 원도 안 되는 걸로 알아요. 근데 여기는 한 아동당 한 달에 배정되는 금액이 천만 원이 넘어요. 괜히 복지국가가 아니구나,라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자본은 우리나라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잖아요. 자본이 많이 들지 않아도 아동들을 케어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될 텐데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어요.
시설에 자립 전담 요원 선생님들 계시잖아요. 시설에 있는 아동 대상 케어프로그램이나 지원사업이 모두 시설로 가기 때문에 개별적으로는 알기 어려워요. 그래서 자립전담 선생님 역할이 중요해요. 저도 몰랐는데 대학교 가니까 진짜 너무 신세계인 거죠. 이렇게 우리를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이 많다고? 제가 이런 걸 좀 더 빨리 알았다면 좋았을걸. 지금은 제가 아끼는 친구들한테 이런 좋은 정보가 있던데 해보라고 연락해요. 친구들도 ‘언니는 어떻게 이런 거 아는지 모르겠다’고 해요. 대학생 때는 성적만 되면 받을 수 있는 폭이 엄청 넓어요. 애들한테도 그냥 공부하라는 말이 아니라 시험 전날에 시험공부만이라도 하라고 해요. 저는 벼락치기를 잘하는 스타일인데 수업만 어느 정도 들어놓으면 쉽잖아요. 그런 거 알려주면 애들이 ‘언니 나 이런 거 지원했는데 됐어’, 얘기하면 기분 좋은 거고. 나도 떳떳하고. 사실 선생님이 해야 할 일인데 제가 하고 있는 걸 보면 되게 안타까워요. 그리고 지금 중학생 고등학생 아이들이 직업 훈련을 많이 받아야 진로를 확실하게 정하고 그런 경험이 있어야 실패가 좀 덜한 거잖아요.
자립준비청년들이 자기의 삶을 조금 더 만들어가고, 나라가 정해주는 테두리 안에 갇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까도 계속 이런 식의 말을 해왔던 것 같은데 스스로 만들어가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한 번 사는 인생,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고, 죽기 전에 나는 이런 사람이었다, 내가 만족할 만한 삶을 살았다, 재미있게 살다 간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계속해서 스스로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라고 말하고 싶은 것 같아요.
자립준비청년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너의 표정은 단호하다. 한 치의 망설임이 없다. 내가 아무리 정서적으로 교감한다고 해서 완벽하게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당사자가 되어야만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들, 적어도 나에게 자립준비청년의 마음이 그러하다. 모나지 않게 살살 다듬어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상심의 시간을 보냈는지, 견디고, 상처받고, 울부짖으며, 때로는 내 안의 말을 삼키면서, 단 한 번도 내 것이었던 적이 없는 세상을 향한 분노와 애정이 한 움큼 포개어져 있는 청년들의 마음을 나는 알 수 없다. 너의 어엿한 마음이 어른인 나를 부끄럽게 한다.
제가 코로나학번인데 저는 학생회 활동하고 동아리연합회 국장했어요. 동아리도 광고 동아리, 축구 동아리, 밴드, 사진 동아리 4개 했어요. 영상 촬영이 있었는데 교수님이 대면을 강행했어요. 그리고 미디어 전공자들이다 보니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자 해서 포트폴리오 될만한 것을 만들려고 모여서 회의도 하고 그랬어요. 아마 코로나학번 중에서 제가 제일 잘 즐기면서 학교 생활한 건 자부할 수 있어요.
제가 일하는 걸 되게 좋아했거든요. 물론 지금도 싫어하지는 않은데 예전만큼의 열정이 안 나오는 이유가 저는 대학교 3년 동안 거의 4~5시간 잤어요. 방학 때도 공모전 두세 개씩은 무조건 나가고 그러면서 학기 중에 못했던 취미 활동도 몰아서 했어요. 몸이 진짜 상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쉬는 방법을 모르겠는 거예요. 불안만 생겨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불안해요. 그냥 유튜브를 보고 있는데 너무 불안한 거죠. 나 뭐라도 해야 하는데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계속 드니까. 어느 순간 3학년 2학기가 끝나면서 병원 가서 링거 맞고 컨디션이 너무 안 좋고, 아파서 쉴 때조차 계속 불안한 상황이니까. 번아웃이 크게 왔어요. 그때는 물을 마실 힘도 없는 거예요. 너무 힘들어서 누구한테 도움을 요청할 생각도 안 들었어요. 개강하고 나서 사람을 계속 만나니까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겨내지 않았나 싶어요. 또 같이 밴드 하는 사람들이 많이 끌어내 줘서 원래의 모습을 찾았던 것 같아요.
자립준비청년 지원사업에 심리상담이 껴 있거든요. 그것도 여러 번 받아보고 하니까 저라는 사람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더라고요. 원래 저는 저 자신을 돌아보는 걸 좋아해서 일기를 쓴다거나 책을 읽으면서 코멘트도 되게 많이 달거든요. 나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음에도 상담은 진짜 별개더라고요. 남이 저의 깊은 얘기를 듣고 입장을 봐주고 이해를 해주면서 하는 얘기들이잖아요. 저에게는 색다른 경험이고 지금도 다른 상담을 하고 있는데 재밌는 것 같아요. 예전에 비해서 그런 불안감과 강박증이 좋아진 편이기는 한데 아무리 그래도 저는 그런 사람이라서 되게 어렵더라고요. 제가 예기 불안이 심해요. 오지 않을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어느 정도의 불면증과 강박증이 있어요. 상담하면서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를 듣다 보면 가끔 뭔가 불안해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가 안 하면 뭐 어때, 요즘은 이 정도는 되는 거 같아요.
너는 요즘 노션에 푹 빠져 있다. 일정 관리 프로그램인 노션이 좀 어려워 공부해야만 사용할 수 있다. 노션 공부에 빠져 그것만 붙잡고 있을 때도 있다. 계획을 세우는 일이 제일 행복하고 재미있다. 계획을 달성했다는 뿌듯한 성취감 때문이다. 집에 있는 날에는 한 번 침대에서 일어나면 잠자기 전까지 다시 눕지 않는다. 기타를 치다가, 노래를 부르다가, 더러운 것이 보이면 싹 뒤집어 청소한다. 노션이 뭔지 모르는 나는 멀뚱하게 너만 쳐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