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꿈이 뭐니?”
성장하며 누구에게나 듣는 질문이다. 우리는 답한다. 의사, 선생님, 경찰, 간호사, 소방관 등등. 모두 직업군이다. 내가 되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일은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글쓰기 수업에 참여했던 사십 대 초반 여성의 말이 기억난다. 결혼 후에도 직장생활을 했다. 건설회사 홍보팀에서 일했다. 아이디어를 내서 기획안을 제출하면 팀장, 과장, 부장을 거쳐 회장까지 간다. 끝내는 회장의 생각대로 수정되는 것이 일상이었다. 무엇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은 일개 월급쟁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12년 직장생활을 그만뒀다. 남편에게 자신도 알고 있는 그 직장생활을 당신에게만 짐 지우는 것 같아 미안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의 해방일지>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주인공 염미정은 카드회사 계약직 직원이다. 카드 디자인을 해서 팀장에게 검토받는다. 팀장은 빨간색 플러스펜으로 줄을 쫙쫙 그어대고 체크하고 별표를 한다. 다시 해서 제출하라는 얘기다. 비록 미정 얼굴에 서류를 던지며 ‘다시 해 와’라고 고함치지 않지만 그보다 더 굴욕적인 방법으로 미정을 멸시한다. 미정은 퇴근 후 노트북을 들고 카페를 찾는다. 창밖에 ‘오늘 당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옥외 광고를 바라보며 스스로 위안한다.
디자인을 다시 검토받으러 간 미정에게 팀장은 말한다. ‘그런 바지 어디서 사? 아~언제 샀냐고 물어봐야 하나? 바지 끝단이 무거운 여자, 간만이라. 패션이나 디테일이나, 쯧쯧.’ 미정은 입술을 깨문다. 얼굴에서 열이 난다. 미정이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술을 마시는 일이다.
회사에서는 나의 역량만 평가받지 않는다. 나의 외모, 옷차림, 태도 그 모든 것이 평가 대상이다. 특히 여성의 경우 화장을 해서 젠더를 표현해야 한다. 속눈썹을 자존심만큼 세우고 립스틱으로 여성성을 드라마틱하게 드러낸다. 시시각각 변하는 유행에 맞춰 의상도 준비해야 한다. 명품백까지는 아니더라도 브랜드 가방 정도는 들어줘야 한다.
그에 더해 스펙도 쌓아야 한다. 토익은 기본이며, 자격증 서너 개는 소지해야 한다. 아프면 상사로부터 눈총을 받는다. 병가를 내겠다고 하면 ‘도대체 자기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라는 비난이 돌아온다. 당연히 체력을 키우고 건강관리도 해야 한다. 자기 관리의 끝판왕 정도는 되어야 정년까지 무사히 버틸 수 있다.
일만 잘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평판도 중요하다. 모든 사람과 두루두루 잘 지내야 한다. 세상에, 조직에, 사회에 반하지 않는 정상인을 요구한다. 세상은, 조직은, 사회는 변하지 않는데 나는 계속해서 노력하고, 성실해야 하며, 부지런함을 요구받는다.
나의 부모 세대는 한 번 회사에 들어가면 정년퇴직을 최고의 일이라 여겼다. 남들이 인정하는 떳떳한 직업, 노후를 보장할 수 있는 연금, 뒤따라오는 명예 같은 것들이 당연한 삶의 순서였다. 하고 싶은 것을 뒤돌아볼 만한 여력도 없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부서진 몸이 남았다. 비정규직, 파트타임 노동자 등으로 불안한 고용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에게는 미래를 생각할 여력이 없다.
어릴 때부터 성실하고 부지런해야 하며 책임감 있게 살아야 한다고 교육받았다. 사회가 원하고 노동의 위계가 바라는 인간의 모습이다. 나의 노력과 책임 뒤에 따라오는 것은 정해진 월급뿐이다. 노동의 질서에 편입되지 못한 이들은 낙오자로 분류된다. 분류되지 않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혹은 새벽부터 고단한 몸을 움직인다. 그곳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없다. 그저 해야 할 일이 있을 뿐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스스로 변화하고 노력하며 발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언제까지, 어디까지 노력하고 열심히 살아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것일까. 노력하지 않으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못하는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 난 무엇을 하고 싶을까, 이런 종류의 질문은 사춘기나 청년기에만 해당하는 질문은 아니다. 자신에게 끝없이 묻고 답하는 과정이 인생 아니던가. 사실은 그래서 더 모르겠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이들 역시 그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 하는 일을 하며 노동 시장 주변을 맴돈다. 나에게 자문한다. 성실과 책임이 몸에 배겨 살아온 나는 정작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가. 꾸준함과 성실함 뒤에 가려진 나의 분투에 친절하게 대하는 일, 그것이 내가 나에게 해야 할 일임을 지금은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