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실습을 했던 아동양육시설은 지방의 한 소도시에 위치하고 있었다. 도로변에서 100미터 정도 들어가면 주택가 초입에 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기 위해 공부한 것은 아니었다. 혼자 남은 어머니는 자식들이 요양원에 보낼까봐 무섭다고 했다. 나는 고민도 하지 않고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해 가족요양을 받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요양보호사로서의 태도인 돌봄과 보살핌의 미덕이 나에게 없음을 알고 있었다. 더욱이 자격 취득을 위해 한 달 이상을 온전하게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차선책으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공부하기로 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면 교육과 실습시간이 짧아져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이 좀 수월해진다. 어머니에게 아직 시간이 남았다는 미천한 생각이 에둘러 가는 방법을 선택하게 한 것이다.
시설은 신축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깔끔했다. 1층에는 사무실, 식당, 여자 아동 방이, 2층에는 남자 아동 방이 있다. 신축되기 전 사용하던 공간은 놀이 공간과 운동기구, 상담실이 있다. 뒷마당에는 아이들 자전거와 공, 훌라후프 등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고, 앞마당에는 철마다 꽃이 피고 울창한 나무 사이 트램펄린이 있다. 하교 후 아이들은 트램펄린에서 소프라노 톤의 고음을 내지르며 팡팡 뛰어오르기도 했고, 자전거를 타며 시설 옆 하천 길을 따라 달리기도 하며, 잡초 하나 없이 깔끔한 마당에서 축구를 하기도 했다.
여자 아동 숙소 거실에는 텔레비전과 널찍한 소파가 있다. 고학년 방과 저학년 방이 분리되어 있고 4개의 방에는 침대와 옷장, 개인 책상이 나란히 마주 보고 있다. 화장실 앞에는 쉴 새 없이 세탁기와 건조기가 돌아간다. 인위적인 라벤더 향의 섬유유연제 냄새가 코를 찌르며 공기 중에 퍼진다.
아이들이 학교에 간 사이, 건조기에서 아이들 옷을 꺼내 나란히 나란히 개켜 놓는다. 속옷과 양말을 구분해 서랍에 넣고, 아이들 옷을 차곡차곡 쌓아놓으면 하교한 아이들이 각자의 옷을 챙겨간다. 수건도 반듯하게 접어 화장실 옆 선반에 각을 맞춰 쌓아 둔다. 하교한 아이들이 샤워를 마치고 섬유유연제 냄새가 밴 수건을 들고 나오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거실 통창 앞에서 서성거리는 시간이 많아진다. 바삭거리는 햇살이 손에서 부서질 듯하기도 하고, 천장에 물 새듯 비가 쏟아지기도 하며, 아직 초록이 되지 못한 잎들이 바닥 여기저기를 훑고 지나가는 모습을 본다. 눈에 보이는 것이 분명 전부는 ‘아닐 텐데’ 였다가, ‘아닐 것이다’ 였다가, ‘아니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총총총 집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하염없는 생각에 빠진다.
거실 창밖으로 아이 A가 하교하는 모습이 보인다. 아이는 가방을 메고 고개를 숙인 채 천천히 걷는다. 땅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일까. 나도 어릴 때는 땅바닥만 보고 걸었다. 나이가 들며 하늘을 쳐다보는 일이 더 많아진다. 검은 황색 어둠이 하늘을 지배하는 거먹구름을 보며 안절부절못하던 마음, 수직으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쌘 구름을 향해 솜사탕을 손에 쥔 채 한껏 부푼 가슴을 안고 뛰어오르고 싶었던 마음, 바람에 밀려 정처 없이 하늘을 헤매고 다니는 열구름을 보며 마음 갈 곳 없는 생각이 허둥지둥하기도 했다. 단 한 번도 같은 모습의 구름을 보여준 적 없는 하늘을 보며 생각한다. 나의 하늘은 누구인지, 무엇인지, 어떤 것인지.
문득 지수가 한 말이 생각난다. 아이들 하교 전 시간이 되면 마음이 떨린다고.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되면서도 하루가 무사히 지나감에 감사한 마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평온한 일상에 한줄기 구원 같은 물줄기가 되어줄 아이를 기다리는 마음, 이제 두근거리지 않는 인생에 방망이를 들고 우당탕 소리를 내어줄 아이들을 안아줄 마음 말이다.
사무실 문을 열고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하는 A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현관 입구에 서서 아이가 들어오기를 기다린다. 나에게는 인사도 없이 고개만 까딱하며 현관 우측에 있는 가방걸이에 가방을 걸어 놓는다. 손 씻어야지,라는 말에 화장실에 간 아이는 물만 묻히고 수건에 손을 쓱쓱 닦으며 나온다. 숙제 있어?라는 내 물음에 없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자기 방으로 쓰윽 들어간다. 할 일이 없어진 나는 거실 소파에 앉는다. 5분 정도 지났을까. 아이가 퍼즐을 가지고 나와 같이 맞추자고 한다.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아이와 마주 앉는다.
100피스의 퍼즐이지만 얼마나 반복했는지 아이는 섞여 있는 퍼즐 조각을 거리낌 없이 집어 착착 맞춰나간다. 내가 퍼즐을 여기에 맞춰보고 저기에 맞추어 보지만 번번이 다른 자리다. 아이가 내 손에 든 퍼즐 조각을 뺏어 그건 여기예요, 라며 맞춘다. 외출했던 생활복지사 선생님이 돌아온다. 아이가 벌떡 일어나 엄마, 하며 선생님을 안는다. 배가 고프다고 하는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하나 먹게 하고 알림장을 확인하는 선생님이다. 식당에는 서랍식 작은 냉동고가 있다. 여러 종류의 아이스크림 중 부라보콘을 들고 온 아이는 유튜브를 틀고 아이스크림을 핥는다. 부드러운 바닐라를 핥고 나면 아삭아삭한 콘을 만날 시간이다. 바닐라와 콘이 함께 입안에서 와그작 소리를 내며 부서진다. 아이의 옆얼굴을 보는 내 목구멍 침샘이 콱 터질 듯하다.
A는 초등학교 2학년이다. 아이는 새침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어떤 날은 눈길도 주지 않았고 어느 날은 내 손을 잡아끌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게임을 하자고도 했다. 종잡을 수 없는 아홉 살이었다. 언젠가는 받아쓰기 백 점을 받았다며 오자마자 시험지를 보여주는 아이, 감기로 갯벌 체험을 가지 못해 종일 시무룩해 있는 아이, 텔레비전을 보면서 발톱 주변 살점을 입으로 물어뜯는 아이였다.
아이는 여자 아동 방에서 가장 막내였다. 얼마 전 두 살 남아가 오지 않았다면 말이다. 원칙적으로는 2층 남자 아동 방에 있어야 하는데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위험해 1층 여자 아동 방에서 생활하기로 했다. 덕분에 누나들의 온갖 예쁨을 독차지하는 중이다. A가 언니들에게 어리광 피우며 귀여움을 받았을 텐데 요즘은 여의치가 않다. 언니들은 하교하면 제일 먼저 막내를 찾는다. 먹을 것이 생기면 막내에게 먼저 먹인다. 막내가 A에게 다가가면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젓는다. 자신의 장난감을 공유하고 싶지 않다. 옆에 앉아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던 언니가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A는 장난감을 들고 자기 방으로 간다. 막내가 A의 뒤를 쫓는다. 막내의 뒤를 내가 따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