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자신만의 무게

by 김보리

아이 B에게 신형 휴대전화가 배송되었다. 엄마가 보낸 것이라고 한다. 아이 D가 아이 B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부러움이 뚝뚝 떨어진다. 우리 아빠가 살아계셨으면 휴대전화를 사줬을 거라고, 나와 휴대전화를 번갈아 보며 말한다. D의 어깨를 가만히 도닥인다.


B는 좀체 곁을 내주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학교 숙제가 있을 때면 나에게 왔다.


-언니에게 물어보지?

-언니들 오면 너무 늦는단 말이에요.

-엄마한테 물어보지?

-선생님, 시간 되지 않아요?


된다. 아주 많이 된다.


초등학교 4학년 수학 문제를 함께 풀었다. 각도 재는 것을 어려워하는 아이에게 각도기로 각도 재는 방법을 알려줬다. 숙제가 끝난 아이는 엄마가 사 준 휴대전화를 들고 거실 창문과 소파 옆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정해진 한 시간 동안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거나 숏폼을 본다. 자신에게 정해진 시간을 넘어본 적이 없다. 미련 없이 휴대전화를 책상에 가져다 두고, 샤워하고, 저녁 식사 시간을 기다린다.


어느 날 아이가 묻는다.


-선생님은 언제까지 있어요?

-이번 달에만.

-나중에 여기서 일할 거예요?

-글쎄, 잘 모르겠는데. 왜?

-그냥, 궁금해서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는지 아이는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한다.


아이는 비교적 말이 없고 내성적인 편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놀아도 잘 어울리지 않았다. 저학년끼리 방을 사용하는 것과는 다르게 아이는 고학년 언니들과 방을 함께 사용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알았다.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분량의 학습지를 풀고, 딱 필요한 만큼의 텔레비전 시청을 했다. 아이는 피아노 바이엘 3권 수료증을 들이밀며 자랑하기도 했고, 빨래를 개키는 내 옆에 앉아 함께 하기도 했다. 어른 같은 아이였다.


학교에서 돌아온 B의 학습지 공부를 도와준다. 국어 문제는 단순했다. 어느 것이 맞고 틀리는지에 동그라미를 치면 끝이다. 영희가 이것을 했는지 철수가 그것을 했는지, 전체 문맥을 잘 파악해야 동그라미 치는 것이 가능하기는 했다. 이해의 범위를 벗어나 문득 이건 맞고 저건 틀림을 선택하는 일은 늘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 다른 삶은 있어도 틀린 삶은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우리는 네 개의 문항 중 맞는 것에만 동그라미를 쳐야 한다. 죽을 때까지.


학습지를 다 풀고 난 후 휴대전화를 보던 B가 나에게 다시 왔다. 그날은 오전에 선생님들과 마당 잡초를 제거한 날이었다. 이미 전날부터 예초기로 잡초 제거 작업을 하던 터였다. 출근하자마자 장화로 갈아 신고 곳곳에 있는 잡초를 긁어모아 한곳에 쌓아두면 되는 일이다. 예초기로 제거되지 못한 잡초는 호미로 캐내야 한다. 봄이 오면 연례행사처럼 선생님들 모두가 동원되어 앞마당과 뒷마당의 잡초를 제거한다. 허리를 구부리고 펴기를 수없이 반복해야 끝나는 일이다. 장화를 신었어도 양말은 흙의 잔해로 누렇게 변했고, 오랜만의 육체노동에 다리와 허리가 뻐근했다.


빈 침대에 누워있는 내 옆에 아이가 누웠다.


-뭐 해요?

-오전에 풀 베서 좀 피곤하네.

-그래서 양말이 이렇게 더럽구나?

-응.


아이가 내 몸을 간질이기 시작했다. 나도 아이의 몸을 간지럽혔다. 침대에서 뒹굴며 서로의 몸을 간질이는 사이, 아이의 눈부신 웃음이 방 안에 가득했다. 조금은 낯설어했고, 약간은 틈을 주던 아이, 그 아이가 지금 내 옆에서 나와 뒹굴거리며 웃고 있다. 아이의 웃음이 잿빛 공기 속에 뿌옇게 떠다녔다.


형들에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맞았다는 진성은 매일매일 이곳을 벗어나 집으로 가고 싶었다고 했다. 그럴 수 없다는 사실도 알았다. 일곱 살 아이가 이해하기에 어른의 세계는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었다. 아이들에게는 자신만의 무게가 있다. 아니, 생겨난다. 교사들이 마냥 예뻐하고, 애정을 쏟아부어도 아이의 무게는 줄어들지 않는다. 자신의 무게를 견디어 내는 일은 오로지 그 아이 몫일뿐이라는 걸,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아이를 안아주는 것, 그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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