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기억하다

by 김보리

은하면 장곡리 장촌마을에는 오래된 옛집이 많이 있다. 족히 100년 이상 된 옛집의 황토와 나무 기둥을 기본 구조로 유지한 채 대부분 입식 부엌과 화장실을 개조해 거주하고 있다.


1925년생 유영례 씨는 서부면 이호리에서 스물두 살에 시집왔다. 유영례 씨 집은 크게 위채와 아래채로 나눠진다. 위채에는 방 3개, 아래채에는 방 2개가 있다. 집 뒤로는 대나무 숲이 있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바람을 막아준다. 딸기 농사를 지을 때는 대나무를 베어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사용했고, 죽순을 캐서 음식으로 해 먹기도 했다.


"죽순은 지금 이맘때(6월)가 좋아. 연한 놈으로 캐서 그걸 쪼개. 죽순이 좀 쓴 맛이 나거든? 그럼 물에 좀 담가 놔. 그래 가지고 고기하고 볶아도 되고, 간간하게 무쳐서 먹어도 맛나지. 얼마 전에 캤는데 귀찮아서 지금 저기 그대로 나뒀어."


시집오기 전부터 시댁 식구들이 거주했던 집이니 족히 200여 년은 될 것으로 추정한다. 대문을 지나면 오른쪽으로는 배나무가 탐스럽게 열매를 맺었다. 지난 홍성 장날, 아들과 함께 배 봉지를 사 와 달아 줬다.


옛집의 대문은 모두 나무 대문이다. 옛말에 문이 크고 집이 작으면 헛되게 소비하는 것이 많고, 문이 작고 집이 크면 재산이 늘고 복이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네 문은 안으로 열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을 밖으로 열면 복이 달아난다고 한다. 그러나 광이나 부엌은 문은 바깥으로 열린다. 좁은 공간을 조금이라도 넓게 쓰려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새마을운동하면서 나무 대문을 바꿨지. 나무라 안 버리고 창고에 넣어두고 땔감으로 사용했어."


위채 옆에는 가족들의 식수를 책임지는 작은 우물이 있다.


"마을에서 공동 상수도 내기 전까지는 이 우물 먹었지. 지금도 물이 마르지는 않았어."


현재 유영례 씨 집은 예전 부엌 아궁이를 뜯어낸 곳을 좀 더 확장해 입식 부엌으로 개조해 사용하고 있다. 아궁이가 있던 곳을 제외하고는 예전 부엌의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다. 선반을 만들어 살림살이에 필요한 도구와 용기를 보관한다.


지금처럼 냉장고가 없던 시절, 부엌에는 벽장과 찬장, 찬탁, 나락뒤주와 들 뒤주가 부엌 옆에 자리했다. 벽장에는 찬거리를 보관하고, 찬장에는 그릇을 보관한다. 반찬을 얹어 놓는 긴 탁자인 찬탁에는 그때 먹을 수 있는 반찬들을 얹어두고, 나락뒤주에는 일 녀 내 먹을 쌀을 보관한다. 들 뒤주에는 부엌에서 사용하는 살림살이들을 보관한다. 그리고 그 뒤쪽으로는 장독대가 있어 장을 퍼서 부엌으로 이동해 음식을 장만했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면 창호지를 바른 세 개의 방문과 쪽마루가 있고, 각 방과 방 사이에는 작은 문이 있어 각 방들이 연결되어 있는 구조다. 마당에서 본채에 오르기 위해 기단을 오르면 작은 쪽마루가 있다. 마당과 연결된 마루는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된다. 하나는 마당에서 일을 하고 잠시 쉬거나 앉아서 사용하는 용도다. 또 동네 사람들의 마실 장소가 되기도 한다. 추우 겨울에는 방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쪽마루에 걸터앉아 햇빛과 바람을 친구 삼아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 마루다.


"옛날에 동동구루무를 팔고 다니는 백물장사가 있었어. 백 가지 물건을 들고 다닌다 해서 백물장사야. 구루무는 지금 로션 같은 거고 분덩어리가 있어. 하얀 덩어리를 물에 개어서 바르면 하얀허니 그랬어. 지금으로 말하면 선크림이지."


동동구루무 장사가 오면 쪽마루에 걸터앉아 행상을 풀어내고 동네 아낙들이 모여 물건을 구경하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든다. 겨우내 큰 얼굴에 동동구루무를 서로 발라주며 웃음꽃을 피웠던 곳도 쪽마루다.


마루의 다른 용도는 서서 생활하는 용도다. 쪽마루 위쪽 시렁에는 살림에 필요한 소쿠리나 상을 올려놓는다. 또한 마루는 방과 통하는 유일한 공간이기도 하다. 바깥과 안을 연결하는 공간이면서, 바깥과 안을 분리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유영례 씨 집 방문 위에는 소목사리가 지금도 걸려 있다. 작고한 남편이 직접 만든 것으로 아주 연한 나뭇가지로 만들어 걸어두면 집에 사는 모든 사람이 아무 병 없이 살라고 걸어둔다고 한다.


옛집에서 중요한 공간 중 하나가 변소(便所)가 아닐까 싶다. 변소는 일본말이 변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문을 풀어보면 편안해지는 곳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몸 안에 쌓인 배설물을 내보내면서 몸이 편안해지고, 더불어 마음까지 편안해지는 곳이기도 하는 뜻이리라. 그래서 절에서는 변소를 해우소(解憂所), 근심을 푸는 장소라 했다. 현재 유영례 집은 화장실을 개조해 변소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지만 외양간 옆으로 변소가 있었다고 한다.


유영례 씨 집은 구들을 놓아 취사와 난방을 해결했던 집이다. 자식들이 외지로 나가고 남편을 여윈 후 자식들이 구들을 뜯어내고 가스를 놓아 혼자 사는 어머니의 생활이 편리하도록 리모델링을 해줬다. 다만 아래채에 있는 구들과 아궁이는 뜯지 않았지만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구들은 난방과 취사를 한 번에 해결하는 구조다. 밥을 하면서 따뜻해진 아랫목에는 한가운데가 불록해진 이불이 있다. 그 안에는 미처 끼니를 맞춰 집에 돌아오지 못한 식구를 위한 밥이 임자를 기다리고 있다. 겨울이면 메주를 띄워 이불을 덮어두기도 한다. 식혜를 만들 때도 아랫목은 내 차지가 되기 힘들다. 밥알이 동동 떠 제대로 된 식혜가 될 때까지 아랫목에게 양보해야 한다.


불에 제대로 달궈진 구들장 덕분에 거무스름하게 타버린 아랫목은 그저 따뜻하기만 곳이 아니다. 어머니의 가족에 대한 배려와 한겨울 한 이불 밑에 온 가족이 모여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군고구마를 까먹던 기억이 있는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