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꽃

by 김보리

결성면에는 3개의 염전이 있었다. 성호리 원성호마을에 위치한 성호염전은 1947년 넓이 17정보(5만 1000평)의 규모로 1975년에 폐장했다. 성남리 신리마을에는 1952년에 넓이 45정보(13만 5000평)의 홍성염전과 중리마을에 1953년에 조성된 23정보(6만 9000평)의 결성염전이 있었다. 이곳 염전에서 생산된 소금의 양은 일량 250가마에서 350가마 정도를 생산했다. 주민들은 홍성염전을 앞개염전, 결성염전을 창말에 위치해 창말염전 혹은 뒷개염전이라 불렀다.


염전이 번창했던 당시 중리마을 주민들 중 35여 가구가 염부로 일하면서 경제적 활동을 영위했다. 염전에는 감독, 회계, 호장, 구염부, 신염부가 일했다. 호장은 소금을 만드는 사람, 구염부는 염전에서 일한 지 2년 이상인 사람, 신염부는 일한 지 1년이 안 된 사람을 말한다. 1941년생 최정석 씨는 호장을 10년간 보기도 했다.


"1963년 스물두 살 때부터 일하기 시작해 문을 닫기 전까지 일했다. 보통 5월에서 10월까지 일한다. 초봄이 되면 바닷물을 염전에 대어 염도가 23도에서 25도 정도 되면 소금꽃이 피기 시작한다."


마을 주민들은 염판을 만들기 위해 사금파리를 촘촘하게 깔아 시멘트로 만든 돌로라를 밀어 만들었다. 사금파리, 일종의 깜파리는 햇빛에 반사가 되어 증발하는 시간이 빨랐다.


1947년생 김희자 씨는 "가끔 남편을 따라 염전에 나가 일을 도와줬는데 사금파리를 깔아 편편하게 하는 작업을 주로 했다"라고 기억한다.


염전에는 각 방마다 나무로 짠 물고를 만들어 나무판자를 이용해 막았다가 열고 닫으며 바닷물을 가두고 열었다. 물자를 이용해 염도를 측정해 적당한 염도가 되면 물꼬를 막아 소금을 만든다. 이때 대파질을 한다. 고무래로 소금을 모으는 일인 대파질은 소금이 모아지 때까지 무한 반복된다. 한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서 이뤄지는 대파질은 염부들의 가장 큰 노동 중 하나였다.


비가 오는 날이면 염부들의 마음은 조급해진다. 기껏 올려놓은 염도가 비로 인해 낮아지기 때문이다.


최정석 씨는 "비가 오는 날이면 새벽이건 밤중이건 달려 나갔다. 하루에 평균 100 가마 정도를 생산했다"라고 설명한다.


소금을 얻는 일은 자연이 허락하는 만큼과 인간의 노동력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최고의 산물이다. 1970년대 초반 농경지가 부족했던 중리마을에서는 간척지 사업을 진행해 염전 일부를 논으로 개간했다. 1991년 홍성과 보령 지역의 상습적인 가뭄 해소를 위해 천수만사업단 홍보지구 사업으로 인해 1990년 염전이 폐장되면서 결성면의 염전에 대한 기록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그 당시 염부로 일하던 주민들의 얼굴과 손에 하얀 소금꽃 피던 그때의 기억만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