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밟고 사는 사람들

by 김보리

농사를 한 번도 지어본 적 없는 도시인들이 시골에 와서 농사를 지어먹고 산다면 어르신들이 하는 말이 있다. “뭐 할라고 와? 할거나 있깐?” 그렇다. 현지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다하고 없다. 틈새를 아무리 파고들고, 요리조리 생각해보고 고심해도 뾰족한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인들은 시골로 온다. 그냥 농사짓는 게 좋아서? 아님 도시에서 사는 것이 싫어서? 그에 대한 답은 오로지 내 안에 있다.


홍동면 금평리 상하중마을은 55가구 중 15가구가 귀농·귀촌 가구다. 저마다의 이유는 다르지만 모두가 도시를 떠나 시골살이를 하기 위해 온 것만은 분명하다.


상하중마을 첫 귀농인은 절골목장을 운영하는 박평규, 서성의 씨다. 경기도 파주에서 1978년에 이사 왔다. 파주에서부터 축사를 하던 박 씨 부부는 현재 밭 2000평에 옥수수를 키워 사료작물로 사용한다.


“그 당시만 해도 자전거에 20kg 우유 2통을 자전거에 싣고 홍동면으로 갔다. 그러면 축협에서 우유를 수거해가고 빈 통을 받아왔었다. 그때는 낙협이 생기기 전이었다.”


1998년에는 과수원을 운영하기 위해 전국을 돌며 발품을 팔았던 강태환, 이매숙 씨 부부가 지장골복숭아농원를 운영하며 터를 잡았다. 강태환 씨는 “다행하게도 어릴 적 부모가 과수원을 운영하는 것을 눈으로 보고 성장했기에 과수원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농사를 지어먹고 살기는 어렵다. 돈을 벌 욕심으로 시골에 오면 절대 안 된다”라고 말한다.


어쩌면 부농을 꿈꾸며 시골에 온다는 생각 자체가 모순이다. 농사지어 부농이 된다면 이미 현지인들이 다 했다. 또 아무리 농사를 잘 지어도 단기간에 수익을 내기는 어렵다. 그러니 귀농을 생각했다면 적어도 2년에서 3년 정도 생활할 수 있을 만한 자금을 준비하고 내려와야 한다. 그저 몇 년 동안은 까매진 손톱과 그을린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대견해진 나를 발견하는 일로 충분하다. 그렇게 대견한 나에게 보상처럼 잘 익

은 무가, 싱그러운 시금치가 두 손에 쥐어진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다.


1반 지장골 아랫말에 거주하는 김영구 씨가 홍성에 첫발을 디딘 것은 2001년이다. 자연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이 그를 시골로 이끌었다.

“처음에는 충북 괴산에 1년 정도 있다가 홍동에 왔다. 수란리, 팔괘리를 거쳐 상하중마을에 집을 짓고 정착했다.”


생태건축협동조합 얼뚝의 조합원이며 현재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한 김영구 씨는 논 30마지기와 밭농사를 자연재배 방식으로 지어 자연재배협동조합에 납품한다. 마을에서 새마을지도자와 홍동면체육회 이사를 맡고 있기도 하다.


김영구 씨 이웃에 사는 이연진, 남경숙 씨 부부가 홍성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09년이다. 2012년에 상하중마을에 터전을 잡으며 품앗이로 집을 지었다. 생태건축협동조합 얼뚝의 창단 멤버이기도 한 이연진 씨는 자신의 집을 손수 짓는데 참여했다. 스트로베일로 완성된 집은 다섯 가족이 살기에 따뜻한 보금자리로 완성됐다. 부부는 논밭이 풀로 가득한 농장, ‘논밭의 풀로 완벽한 농사가 가능한 충만한 기쁨의 농장’을 모토로 하는 풀풀농장을 운영하며 논농사를 유기농으로 짓는다.


“이렇게 무모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은 이곳이라 가능하다. 다른 곳이라면 엄두를 내지 못할 텐데 다행히 주변 분들이 너그럽게 봐주시는 것 같다.”


잡초 하나가 올라오면 그 꼴을 보지 못하는 것이 농부다. 그 일이 습관이 돼버린 농부는 길을 지나도 아스팔트 틈 사이에서 올라온 잡초 하나를 기어코 손가락으로 파헤쳐 뽑아낸다. 풀풀농장에서는 그런 일은 생각도, 실천도 하지 않는다. 단 너무 높게 자라면 낫으로 베어주는 정도는 한다. 너무 덥거나 귀찮으면 안 해도 된다. 농부 맘이다.


상하중마을 대동계 총무를 맡고 있기도 한 이연진 씨는 “마을에 고맙다. 지금까지 터전을 지키고 힘든 농사일에 손을 놓지 않고 살아오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다”라고 말한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지 않고도 즐겁고 재미있게 사는 이들도 있다.


방인성 씨는 2001년에 풀무학교 미술강사로 근무하면서 홍동면에 정착했다. 미술교육과 조소를 전공한 방인성 씨는 시골에 살고 싶은 마음에 부여 대안학교에서 근무하다가 지인의 소개로 풀무학교를 알게 됐다.


“풀무학교 전공부에 목공소가 있었는데 한번 운영해 보지 않겠냐고 학교 측에서 제안했고 지금까지 갓골목공소를 운영하고 있다.”


2007년에 문을 연 갓골목공소는 지역주민들의 놀이터이자 목공교실이 진행되는 곳이다.


“농업이 아닌 무엇을 하면 즐거울까를 생각했는데 목공 작업이 내게는 재미와 즐거움을 선사하는 일이었다. 내 꿈이 우리 아이들이 논길을 따라 내 일터에 놀러 오는 것이었는데 지금 그 꿈을 이뤘다.”


두 딸의 아버지이기도 한 방인성 씨는 가구에서 출발해 인테리어 목공, 정원 목공 등 나무로 할 수 있는 분야에 도전해 ㅋㅋ만화방, 홍동뜸방, 홍성우리마을의료생협, 풀무학교 도서관 등의 작업을 했다. 아이가 오는 길에 자신이 작업한 모든 공간을 만날 수 있고 아이들이 노는 공간이 자신의 손길을 거친 공간이라는 자부심을 가진다.


“학생들과 하는 목공수업은 지역에 씨앗을 심어주는 일이라 즐겁다. 시골도 사람 사는 곳이라 나도 도움을 많이 받았고 이제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부인 진진선 씨는 “처음에는 시골에서 사는 일이 익숙하지 않아 적응하는데 어려움도 있었지만 홍동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마을이 아이를 키운다는 말이 무엇인지를 알게 됐을 때 내 마음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꼈다”라고 말한다.


사람과 소통하는 미술과 공간을 꿈꾸는 방인성 씨와 행복한 시골살이를 경험하고 있는 진진선 씨다.


평촌목장에서 일하는 이동호 씨는 직업군인이었다. 직업군인을 망설임 없이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다니던 청년에게 외국의 시골이 눈에 들어왔다. 일정보다 서둘러 귀국해 시골을 찾아 홍동에 들어왔다. 마을활력소에서 일하다가 2016년부터 마을에 있는 평촌목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젖소와 함께 더불어 같이 해볼 수 있는 방식이 있지 않을까 하는 물음에서 시작하게 됐다.”


퇴근 후 자신이 키운 작물로 밥을 해 먹고, 반려견 알로와 산책을 하며, 가까운 지인들과 수제 맥주 한 잔을 마시는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누린다.


“농촌의 장점은 마을 분들이 이웃이고 친구이기에 같이 해보기도 하고 동네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다. 또한 모든 재료들을 현장에서 직접 가져올 수 있어 누군가의 쌀로 만든 수제 맥주가 가능해진다. 하나의 작은 사이클을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다.”


농사를 짓지 않는다고 해서 텃밭까지 포기할 수는 없다. 농사는 본능이기 때문이다. 행복해지고 싶은 것이 우리 인간의 본능이듯이 말이다. 돈에 쫓기고 일상에 치인 도시에서의 삶이 흙을 밟고, 초록이들을 만지며,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구름 한 조각을 만날 수 있는 시골에서의 삶이 더 행복하다고 느낀다. 그렇게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나를 버리고 살아가는 방법을 연습한다.


2반 거문배에 거주하는 정해근 씨는 2001년에 홍동에 내려왔다. 성남주민생협에서 근무하던 정해근 씨는 홍동이 친환경농산물 생산지역인 것을 알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홍동면에 정착했다. 2007년부터 금평리 떡공장을 운영하는 정해근 씨는 “2005년에 유기농 쌀 판매가 부진했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쌀 가공을 고민하다가 농업회사법인을 만들어 떡공장을 운영하게 됐다”라고 설명한다.


복잡한 것을 싫어하고 조용한 곳을 좋아하는 정해근 씨는 시골에서의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하고 있다.


진규섭 씨와 전진선 씨 부부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퇴직 후 마을에서 살자는 마음으로 2011년에 홍동에 내려와 2012년 1반 아랫말에 집을 짓고 산다. 아직까지 직장생활을 하기에 마을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는 어렵지만 퇴직 후 즐거운 마을살이를 꿈꾸는 진규섭 씨다.


장일호 씨가 홍동면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14년이다. 경북 대구가 고향인 장일호 씨는 서른 살이 되던 해 변산 공동체에 들어가 일 년 정도 생활하다가 충남 서천에서 홍동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생태건축협동조합 얼뚝과 인연을 맺으면서 홍동면 김애마을에 살다가 2019년 12월 상하중마을에 정착했다.


“사회변혁을 고민하다가 사람과의 관계가 더 중요함을 알게 됐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걸 알았다. 그러고 나서는 내 마음이 편해졌다. 걱정을 많이 하는 편이었는데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이제는 일부러 걱정하지 않는다.”


장일호 씨는 일 년 중 딱 두 계절이 바쁘다. 모내기와 벼바심을 하러 다니기 때문이다. 어느덧 5년이 되었다.


“농촌에서는 이웃과의 관계가 중요한데 다행히 우리 마을분들이 모두 다 좋다.”


시골에 정착하면서 굳이 무언가를 억지로 찾을 필요는 없다. 머물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오로지 느끼면 되는 것이다. 내가 별 거 아니었구나, 하는 마음과 함께 어느 날 아무도 없는 농로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릴 수도 있다. 그럴 땐 그저 마음 놓고 울어도 된다. 누구 하나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는 한적한 농로에서 어깨를 두드려 줄 사람은 없지만 지나가는 바람 한 점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줄 것이고, 길가에 널브러진 돌멩이가 지친 다리 쉬어가라며 자리를 내어줄 것이니 말이다.


인간의 몸과 손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도시에서는 모든 것이 소비만을 하는 구조로 되어 있지만 시골에서는 무엇이든 생산하지 않으면 먹고살기 힘들다. 단지 땅에서 무언가를 수확하는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구를 만들고, 집을 짓고, 나무를 심어 가꾸고, 소나 염소들과 눈을 맞추고 그들과 함께 호흡하는 일이다. 콘크리트와 함께 살아왔던 내 발과 손이 흙의 보드라운 감촉을 느끼며 손톱 밑이 까매지는 경험을 하는 것, 그것이 시골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