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산면 상촌리 노동마을에 위치한 김우열 가옥은 1985년 충청남도 민속자료 제10호에 지정됐다. 1950년생 김우열 씨에 따르면 조선시대 고종 때 지어진 한옥으로, 안동김씨 문정공파 김학근이 마을을 지나가다가 집을 짓기에 좋은 터라 하여 짓게 되었다고 한다. 가옥 뒤로는 병암산이, 앞으로는 갈산천이 흐르고 있어 배산임수형의 명당이었던 것이다.
김우열 씨의 부친 고 김흥진 씨의 기억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인근에는 기와집 200여 채가 있었는데 모두 철거되고 김우열 가옥과 상촌마을에 있는 전용일 가옥, 그리고 현재 안경분 씨가 거주하는 한옥만이 남았다.
김우열 가옥은 중부지방의 전형적인 한옥 형태다. 안채를 비롯해 3동의 건물이 'ㅁ'자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안채는 'ㄱ'자형으로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서쪽에 안방과 부엌, 동쪽에 건넌방이 있고, 사랑채는 안채 앞에 'ㅡ'자 형으로 있다. 쪽문을 통해 한옥으로 들어서면 우측으로 김우열 씨가 기거하는 사랑채가 있다. 2017년경 리모델링을 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한옥의 특징 중 하나가 높은 기단이다. 기단이 높은 이유는 쾌적한 환경을 위해서라고 한다. 디딤돌을 밟고 올라서면 비로소 한옥의 중심에 선다. 또한 한옥의 처마는 일종의 차양 역할을 한다. 실내외 온도차를 높여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게 하고, 겨울에는 바람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자연 본연의 재료를 사용함으로 인해 한옥의 모든 것은 인위적이지 않다.
김우열 씨의 모친 박계연 씨는 1922년생으로 황해도 출신이다. 안동김씨 며느리로 시집오면서 한옥에서 하숙을 쳤다고 한다. 하숙생의 대부분은 갈산중학교와 갈산고등학교 교사들이었다.
"어머니가 보통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아침 준비하고 교사들 도시락도 싸줬다. 그리고 교사들이 퇴근하면 저녁도 해줬는데 쉰 살부터 일흔 살이 다 되도록 했다."
어릴 적 엄마와 함께 외할머니 댁을 종종 갔었다. 외할머니 집은 오래된 한옥이었다. 나무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좌측에 화장실이 있고, 마당 가운데는 우물이 있다. 'ㄷ'자 형태의 한옥에는 사랑방과 안채가 있어 외할머니는 안채에, 사랑방에는 하숙생이 거주했다.
아버지가 외할머니 집에서 하숙을 하면서 외할머니의 큰딸인 어머니와 연애를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좀 커서 들을 수 있었다. 외할머니가 거주하던 한옥은 그 일대 개발이 이뤄지면서 형태도 남지 않게 됐다.
다섯 살 여자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종종걸음을 치며 뒤를 쫓는다. 나무 대문을 여니 삐걱거린다. 널찍한 마당에는 수도 펌프가 있다. 펌프질을 해서 받은 물로 등목을 하는 사내아이가 보인다. 툇마루에 올라가기 위해 엉덩이를 삐죽 내밀며 한 다리를 올려 엉거주춤 올라간다. 몸을 돌려 앉으니 한옥의 고즈넉한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요염한 자태를 뽐내며 부드럽게 곡선으로 이어진 처마, 쓸고 닦기를 얼마나 했는지 반들반들한 나무 마루, 손가락에 침을 묻혀 구멍을 낸 창호에 한줄기 빛이 스며든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빛나는 가을 햇살이 처마를 지나 마당 한가운데 가득이다.
어릴 적 외할머니가 살던 한옥, 그곳은 집이 아니라 그리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