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들은 힘들었다.
적은 농지에 다수확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여건이었기 때문이다. 품을 팔러 다니고, 장사도 했다. 땅을 딛고 사는 농부이기에 대안이 필요했다. 구릉지를 개간해 사과나무, 배나무, 복숭아나무를 심었다. 지게에 똥을 져다 나르며 거름을 줬다. 잘 자라 튼실한 과실을 수확해 좋은 가격을 받았다. 땅을 사서 더 많은 과수를 심
었다. 논 두 마지기와 안 바꾼다는 사과나무 한 그루였다.
홍북읍 상하리 상산마을은 1958년 고(故) 최영석 씨가 예산에서 이사 오면서 과수 농사를 시작했다. 주민들은 구릉지를 개간해 묘목을 심었다. 유건호 씨는 1981년부터 딸기 농사를 짓기 전까지 과수 농사를 지었다.
“새벽 4시에 지게 지고 똥을 퍼서 거름 주면서 농사를 지었다. 지금 하라고 하면 누가 하겠는가. 1978년 11월 초순에 눈이 많이 왔었다. 사과 수확을 채 하기 전이었다. 결국 수확을 포기하고 다음 해 봄에 사과나무를 베어버리고 밭농사를 짓다가 딸기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상산마을에서는 주로 3반과 4반 주민들이 과수농사를 많이 지었다. 현재 딸기농가는 19가구, 과수농가는 4가구, 과수와 딸기 겸업농가는 2가구다. 김영배 씨는 예산군 오가면에서 부친과 함께 이사를 오면서 과수 농사를 시작해 현재 6000여 평의 과수 농사를 짓고 있다. 예전에는 부인 이춘오 씨 친정에서 운영하는 축사에서 분뇨를 가져와 비닐을 덮어 숙성시켜 거름으로 사용했다.
“분뇨 거름을 주면 인분이 많아 사과 색깔이 안 난다는 단점이 있다. 요즘에는 거름이 잘 나오니 예전보다 농사짓기는 수월하다. 과거에는 광천에 과수를 위탁 판매하는 곳이 있었다. 픽업트럭에 나무상자 7~8관을 싣고 가면 길이 나빠 차라리 걸어가는 것이 더 빨랐다.”
이제는 큰아들 김종구 씨와 과수원을 함께 운영한다. 사과 품종도 후지, 아리수, 미얀마 등 다양하다. 올해 긴 장마로 인해 복숭아 낙과가 심해 한편으로는 걱정도 있다.
“우리는 과수를 전량 직접 판매한다. 좀 고생스럽더라도 그 편이 낫다.”
최선부 씨는 부친 고(故) 최영석 씨의 뒤를 이어 과수와 딸기 농사를 짓고 있다. 금마면 용흥리에서 스물일곱 살에 시집온 부인 주윤희 씨는 과수와 함께 늙어간다.
“아버님이 일궈놓으신 배나무가 60여 년 됐다. 계속 전지를 해서 새 가지를 받으면 배는 달고 맛있지만, 사과는 10년에 한 번씩 품종을 갱신해줘야 한다. 나무가 너무 오래되면 과일이 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복숭아나무는 부러지지 않는 한 새 가지를 받아 전지하면 수령이 15년은 간다. 유목보다 오래된 것이 과일이 더 좋다. 과수농사가 일도 많고 사람 구하기도 어려워 우리가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된다.”
1988년에 홍북읍 중계리 홍천에서 이사 온 박동오 씨 역시 2300여 평의 과수 농사를 짓고 있다. 후지사과, 배, 복숭아 등을 서산 공판장에 전량 납품한다.
“올해 복숭아는 낙과가 심해 농사를 망친 셈이다. 예전에는 사과나무를 대학나무라 불렀다. 과수농사를 지어 자녀들 교육을 했기 때문이다. 이제 모두 다 옛날 말이다.”
상산마을 주민들이 과수에서 딸기로 선회한 것은 1978~80년 무렵이다. 은하면에서 딸기 육묘를 들여오면서 전체 가구 중 40여 가구가 딸기 농사를 지었다. 2015년 19가구가 상산딸기영농조합법인으로 설립되어 현재 24명이 상산딸기작목반에 가입되어 있다. 현재는 논농사와 밭농사만을 짓고 있는 신영균 씨는 그 당시 상황을 기억한다.
“1978년에 홍북농협에 입사해 1999년에 퇴직했다. 농협에 입사해 산수리 딸기를 서울로 수송하는 업무를 맡았다. 그 당시만 해도 주민들이 차가 없던 때고 농협에도 차가 딱 한 대 있었다. 산수리와 구룡리 딸기를 차 한 대에 실어 용산과 남대문, 청량리시장에 출하했다. 동네 딸기는 한 해 정도 출하하는 업무를 맡았다.”
딸기 농사를 처음 지을 때는 논딸기였다. 가을이면 벼를 서둘러 수확하고 비닐을 쳐서 딸기를 심었다. 봄이 되면 비닐을 거두고 다시 모를 심었다. 비닐하우스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1986~87년 무렵이다. 농부들 손이 하나 덜은 셈이다. 상산딸기작목반 반장을 맡고 있는 김성태 씨는 14년 전 일본 견학을 다녀오면서 시
설을 직접 설치했다.
“파이프를 잘라 직접 용접을 해가며 시설을 만들어 고설재배를 한다. 홍성군에서 보조를 받아 두 번째로 시설을 갖췄다. 고설재배의 장점은 일단 일하는 사람이 편하고 발에 차이는 것이 없어 깨끗하다는 점이다. 수확량도 토경에 비해 나은 편이다.”
마을에서 고설재배를 처음 시도한 이는 현재 부녀회장을 맡고 있는 최경숙 씨다. 홍성농업대학 딸기전문과정을 1회 졸업하고, 체험마을협의회에 가입해 딸기체험을 한 지 15년이 됐다.
“딸기체험을 처음 할 때만 해도 사람이 많았다. 요즘은 딸기 농가가 많기도 하고 코로나로 인해 체험객이 없는 상황이다.”
상산딸기작목반 중 고설재배를 하는 농가는 7가구며 그 외는 토경재배다. 용봉산딸기에서 상산딸기로 출하된 것은 2000년 무렵부터다. 상산딸기는 무르거나 깨지는 것 없이 선별, 납품해 인기가 좋다. 과거에는 나무상자에 신문지를 깔고 8kg씩 포장했다. 포장한 딸기는 광천에서 온 장사꾼에게 팔거나 홍북농협으로 출하했다. 마을 주민 전양근 씨에 따르면 자동차가 흔하지 않던 시절에 주민들이 용봉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딸기를 들고 모이면 밤 9~10시가 되어서야 트럭이 와서 싣고 갔다고 한다.
시집와 딸기 농사를 시작한 전양근 씨 부인 방화순 씨는 “딸기 농사를 40년 짓다 보니 그걸로 늙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딸기가 효자였던 것 같다. 딸기가 없었다면 외지로 나가 직장 생활을 했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사과와 딸기는 손이 많이 가는 품종이다. 농부의 손과 눈이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다. 그런 정성과 노력이 들어가는 만큼 농부도 덩달아 늙어간다. 젊은이들이 농업을 하러 마을에 들어오지 않는 이상 사과와 딸기를 재배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 것이 뻔한 현실이다. 이래저래 농부들의 마음만 타들어간다.
용기는 살아야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다. 농부의 삶에 대한 열정과 노력이 담긴 사과와 딸기를 먹는 일 역시 어쩌면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