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보리
도시에서 10년간의 공동체 예술 활동, 지역신문 기자로서의 이력과 4년간 마을조사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인터뷰했다. 인터뷰한 글들은 지역신문이나 마을조사 후 발행된 마을책에 실렸다. 다소 시간이 지난 후 다시 그 글을 읽고 나면 후회가 남는다. 미흡했던 부분들이 손가락에 박힌 가시처럼 통증을 유발하기도 했다. 당시 만났던 인터뷰이 얼굴이 생각나며 근황도 궁금해졌다. 안부 전화를 하려고 해도 어느새 전화번호 목록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기억하기나 할까?
인터뷰는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간에 이뤄지는 공감의 결과물이다. 인터뷰를 하게 되면 보통 2시간에서 4시간 정도 소요된다. 2시간이 넘는 시점이 되면 인터뷰어도 인터뷰이도 슬슬 몸이 꼬인다. 어떤 이들은 ‘아, 이제 그만해. 할 얘기 더 없어’라고 대화의 피로감을 말한다. 적어도 4시간을 꽉 채우고 ‘부족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이는 절대 없다.
대부분의 인터뷰는 한 번에 마무리되지 않는다. 인터뷰를 할 때만 해도 많은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아 뇌가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고 느끼지만, 돌아와 훑어보면 빈 곳이 반드시 나오기 마련이다. 적당한 날을 골라 또 간다. 거의 두 번째 만남에서 인터뷰의 핵심이 나온다.
○○마을을 조사할 때 한 어머니를 만나지 못했다. 수술하러 병원에 가셨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 집 앞에 차가 주차되어 있었고 대문이 열려 있었다. 노크를 하니 아들이 나왔다. 어머니가 왔지만 얘기를 나눌 형편은 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아쉬워도 어쩌랴, 몸이 회복되는 것이 먼저지. 인사를 하고 뒤돌아왔다. 열흘쯤 지난 뒤 다른 일로 다시 마을을 방문했다. 볼 일을 보고 돌아가던 중 그 집 마당에 할머니 한 분이 서성거리는 것을 봤다. 얼른 차를 주차시키고 다급히 다가가 인사를 했다. 어머니는 기운이 없어 보였지만 들어오라고 했다. 마을책을 만든다는 설명을 드렸다. 어머니는 당신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셨다. 1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이었다. 어머니의 이야기가 포함된 마을책이 발행되고 나서 어머니는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건넸다. 과한 감사의 말에 오히려 내가 송구했다. 어머니는 곡식 창고에 쌓여있는 식자재 중 초코파이 한 박스와 한과를 내밀며 가져가라고 했다. 극구 사양했지만 거의 차에 던져 넣었다.
그 마을의 다른 어머니를 만났을 때다. 아흔여섯 살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정정한 어머니다. 비록 지팡이나 밀차가 없으면 이동이 어려웠지만 귀가 어둡지 않아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어머니는 대부분의 오후 시간을 동네 분들과 보낸다. 여럿이 모인 틈에서 어머니를 만났기에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다. 오전에는 집에 혼자 있다는 것을 알고 자택으로 방문했다. 어머니는 마을 토박이로 열다섯 살에 시집갔다. 시집을 가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후처를 들였고 후처와 함께 살다가 이혼을 했다. 서른 살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재혼을 했다. 재혼한 남편의 아들을 키우며 살았다. 내가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는 말에 어머니는 느닷없이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지배 처지나 내 처지나 비슷하네. 그래도 사는데 까지는 살어. 아무리 해도 본처만큼은 못해’라며 내 손을 다독거렸다. 어머니가 내 말을 이혼했다는 말로 잘못 알아들은 것이 분명했지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혀 옷소매로 눈물을 훔쳐냈다. 고개를 숙인 채 연신 고개만 끄덕이는 나의 등을 말없이 두들겨주기도 했다.
인터뷰와 취재는 조금 다르다. 취재의 사전적 의미는 작품이나 기사에 필요한 재료나 제재(題材)를 조사하여 얻는 것을 말한다. 인터뷰의 사전적 의미는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개인이나 집단을 만나 정보를 수집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로 정의한다. 취재보다 조금 더 밀도 있게 접근하는 방식이 인터뷰라 할 수 있다.
인터뷰를 한다는 것은 평소 멀리 보던 것을 가까이서 보고 듣는다는 것이다.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사물과 사람을 30센티미터 간격에서 만지고, 들여다보고, 느끼는 공감의 언어다. 그러다 보면 그저 내가 보고 있었던 사물과 사람이 비로소 보이게 되고 들리게 된다. 눈과 귀가 열리는 순간이 온다. 그렇게 보이는 것의 새로움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 그들에게 송구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