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보리
나는 찌질한 어른이 되었지만 그다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여기서 ‘찌질한’은 맞춤법상 ‘지질한’이 맞다. 그런데 ‘지질한’이라고 쓰면 그 느낌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것 같다. 맞춤법 무시하고 굳이 ‘찌질하다’고 씀을 밝힌다. 진짜 어른이 되기도 쉽지 않은 세상에서 찌질한 어른이 대수던가. 어른이라고 해서 모두 폭넓은 아량과 지혜로 넘쳐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간혹 인터뷰나 취재를 가서 진짜 어른을 만날 때가 종종 있다.
여든 중반의 한 어르신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불거나 오후 2시 20분이면 산책을 나간다. 사선으로 맨 작은 가방에는 사탕과 비가 오면 깔고 앉을 비닐이 들어 있다. 산책길에는 늘 이웃이 함께한다.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동네 주변을 돈다. 열 걸음쯤 가다가 한 번 쉬고, 다시 열 걸음을 옮긴다. 그러다 다리 위 의자에 앉아 흐르는 강물과 바람을 느낀다. 수다와 침묵의 그 어디쯤을 수없이 왕복하면서 오가는 사람들과도 인사를 나눈다. 다리를 건너 다른 이를 만나러 가던 나는 놀다 가, 라는 말에 옆에 앉았다. 그 사람과는 별도의 약속을 잡지 않은 터였다. 어르신이 말했다.
“가만 생각해보니 나 스스로 열심히 살았으니 이제 되었어. 아등바등 싸 가지고 가는 사람은 저승길 갈 때 무거워서 나보다 먼저 못 가.”
어떤 생각의 끝에 이런 생각을 했을까.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고개를 돌려 어르신의 옆얼굴을 바라봤다. 모자와 마스크를 써서 자세한 표정을 읽기는 어려웠다. 다만 그 눈빛만큼은 맑고 투명했다. 위로를 건넬 수도, 공감의 말을 꺼내기도 어려웠다. 그저 긍정의 침묵 말고는 다른 것은 할 수 없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무엇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두 사람 사이에 오갔던 인터뷰는 다른 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최소한 인터뷰를 통해 나 자신의 변화가 있었다면 그것이 가장 큰 소득이다.
인터뷰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다 보면 자칫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 겸손이라는 미덕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마을조사 초반에는 당사자도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기 마련이다. 당연히 네, 네, 라는 말만 한다. 그 과정이 쌓인 후 비슷하거나 똑같은 사실을 알게 되면 먼저 알은체를 하게 된다. 인터뷰이가 어떤 정보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순간, 아, 그거는 알고 있고요, 다른 거요,라고 대답하는 광경을 종종 목도했다. 인터뷰이는 머쓱한 표정을 짓고 만다. 인터뷰이가 대상자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손맛 좋은 어머니들이 음식을 하면서 간은 어떻게 맞추느냐고 하면 적당히 넣으면 된다고 말한다. 요리를 잘 못하는 사람에게 그 적당히는 늘 어렵다. 입맛은 살아 있어서 적게 넣으면 싱겁고, 조금 더 넣으면 짜다. 마을 조사나 인터뷰를 나갔을 때도 마찬가지다. 마을 주민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물론 좀 깊이 있게 들어가야 할 때도 있다. 이를 판단하고 결정짓는 것도 적당하게, 적절히, 눈치껏 해야 하는 일이다.
○○마을을 조사 갔을 때의 일이다. 60대 초반에 남편을 잃고 혼자 사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오전에 요양보호사를 하고 먹을거리 정도의 농사만을 짓는다. 집에 들어가니 오전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침대 위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사별 후 모든 것을 정리하고 지금의 삶을 선택한 여자, 남편과 살 집을 새로 짓기 위해 땅도 샀지만 이제 다 물 건너갔다고 말하는 여자. 남은 인생을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마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하지만 그건 나의 기우에 불과했다.
아주머니는 오전 자신의 생업을 마치고 나면 삶은 고구마나 감자, 감 등을 가지고 마을회관에 간다. 사람들이 오기도 하고 오지 않기도 한다. 바구니를 앞에 두고 오는 이들에게 하나씩 건넨다. 저녁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풍물도 배운다. 오히려 내가 아주머니에게 보았던, 느꼈던 감정이라는 것은 미래의 내 모습에 대한 측은함에 불과했다.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주어진 생을 열심히 살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지혜로운 어른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은 곤두서 있던 마음이 잘 다려진 와이셔츠처럼 반듯하게 펴지는 기분이다. 인터뷰를 거절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소심함,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 인터뷰 내용을 어떤 형식으로 풀어갈 것인가에 대한 막막함이 해소되면서 글에 대한 막연한 기대마저도 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