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것 아니지만 by 보리
봄이 되면 으레 집안 이곳저곳을 정리하게 된다. 오래된 것들이나 사용하지 않은 것들을 처분하는 계절이다. 해마다 정기행사처럼 벌이는 청소에도 10~20년쯤 묵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모든 사물에는 저마다의 역사가 있다. 나의 손에 들어오기까지의 어떤 사연들이 있었다. 사실 들여다보면 별 것 아니지만 말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은 1993년에 도서출판 동하에서 발행된 책이다.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의 감정은 새로웠다. 아, 소설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단순한 연애소설이 아니라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 개인의 상실감을 기술하는 방식이 놀라웠다. <노르웨이의 숲>은 1987년에 처음 발표되었고, 1989년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됐다.
내가 이 책을 만난 것은 1995년이었다. 그때 나는 인천 제물포에 살고 있었다. 아는 언니가 운영하는 분식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노래를 입에 달고 살았다. 역전에 있었던 분식집은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단지 밥을 먹으러 오는 사람들 이외에 노숙자나 채소 장사, 폐지를 줍는 할아버지 등이 분식집 근처를 오갔다. 손님이 없는 시간에는 그들에게 물 한 잔을 건네며 분식집 앞에 쪼그리고 앉아 이야기도 나눴다. 무슨 이야기였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저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잠깐 생각하기는 했던 것 같다.
어느 날 제물포 지하상가를 어슬렁거리다가 헌책방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첫 페이지를 읽고 집으로 데려왔다. 도서 가격은 6500원이었는데 헌책방이어서 4000원에 샀다. 그중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1969년이라고 하는 해는 내게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진창을 연상시킨다. 발을 옮겨 놓을 때마다 신발이 훌떡 벗겨질 것만 같은 깊고 질퍽질퍽한 느낌을 주는 진창이다. 그런 깊숙한 수렁 속을 나는 온갖 고생을 다 하면서 기를 쓰고 걷고 있었다. 앞으로도 뒤로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암울한 빛의 수렁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을 뿐이었다. 시간마저도 그러한 나의 걸음걸이에 맞추어 느린 템포로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벌써 저만큼 앞장서서 가고 있었으나, 유독 나와 나의 시간만이 진창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주위의 세계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존 콜트레인을 비롯한 다방면의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모두들 변혁을 외쳐댔고, 그 변혁은 바로 보이는 길모퉁이에서 금방이라도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런 모든 사건은 끝내 아무런 실체가 없는 의미 없는 배경 그림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거의 고개를 드는 일 없이, 하루하루를 흘려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서른을 앞두고 있는 내가 꼭 그랬다. 젊었기에 아직 다가오지 않은 내 미래를 그려보기에는 막막했고,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변화의 시대에 하나둘 발맞추어 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만이 조금은 뒤처진 채로 그저 내게 주어진 시간들을 무심한 일상생활로 채워가고 있었다. 그런데 나만 이런 기분으로 사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그런 알지 못할 안도감 비슷한 것을 느꼈다.
25년이 지난 지금, 햇살이 쏟아지는 창가에서 <노르웨이의 숲>을 펼쳐 든다. 누렇게 변한 종이에 촘촘한 텍스트가 내 눈을 자극한다. 다른 세대, 다른 장소에 살았어도 같은 감정과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종이 위에 펼쳐지는 일, 새삼 책이 선사하는 경이롭도록 놀라운 세계에 감사함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