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트와 물통

별 것 아니지만 by 보리

by 김보리

가끔 그림을 그린다. 스물두 살이 되던 해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게 되면 서다. 학교로 통학하는 왕복 4시간을 벌었으니 시간이 남아돌았다. 변변한 스케치북도 없이 노트나 눈에 띄는 종이에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렸다. 동기들이 그림 잘 그리네, 라는 말 한마디에 덜컥 그림 동아리를 만들었다. 동아리에 모인 학생들은 그림은 좋아하는데 그림은 못 그리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간혹 미술교육과 학생이 오기도 했지만 얼마 버티지 못했다. 학교를 그만둔 뒤 동아리와의 연락은 끊겼다.


그림 전공자가 아니니 그림을 그리는 도구도 이것저것 다 사용해본다. 연필, 목탄, 콩테, 수채화, 한국화, 아크릴까지. 뭐 하나 전문적으로 하는 것은 없다. 그림 도구들도 어느 정도 사용하면 닳아지기 마련인지라 새로 구입하기를 반복한다. 그래도 가장 옆에 오래 두고 쓰는 물건 중 하나가 팔레트와 물통이다.


나무 팔레트에 덕지덕지 앉은 아크릴의 흔적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동아리 후배가 떠오른다. 십오 년 뒤 동아리와의 우연찮은 인연이 다시 시작됐다. 내가 동아리를 나온 뒤에도 계속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고 가끔은 신입생도 들어왔다고 한다. 오랜만에 모여 술잔을 기울였다. 모두가 얼큰하게 취해 과거와 현재를 왕복하던 중 후배는 나무 팔레트의 아크릴을 손으로 떼어내는 일에 열중했다. 틈틈이 선후배들과의 대화에도 참여를 하면서도 손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런 후배를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아크릴 물감은 건조가 빠르다. 한 번 덜어놓은 물감은 그날 사용하지 않으면 금세 굳어버린다. 각각의 원색이었던 물감이 팔레트에서 만나 다른 색으로 창조되기도 한다. 팔레트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의 흔적이다. 그 흔적이 지워지기를 나는 원치 않았다. 그렇다고 후배의 손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후배가 드디어 팔레트를 던져버리고 술 마시는 일에 집중했다.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 뒤에도 나는 그림 언저리를 배회하고 다녔다. 직업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취미로 하는 것이니 심심하면 그림을 그린다. 그런데 대체로는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해야 좋은 이미지가 생산되기는 한다. 가령 그림책을 만든다거나 하는 일 말이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이미지가 있다. 이미지는 그저 내가 본다는 행위만으로는 버려지는 이미지가 된다. 이미지가 나의 눈과 머리와 가슴에 투사되어 나온 이미지는 지금까지 내가 봐왔던 이미지와는 다른 세상의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이를 보고 즐기는 것, 그것이 그림이 나에게 주는 위로다.


글쓰기는 그림과는 조금 달랐다.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나를 정화시켜주었고 사유의 체계를 만들어줬다. 가족, 친구, 이별, 퇴사, 관계에서 오는 상처 등 내 안에서 쓰레기처럼 버려진 감정들이 재활용되는 것을 경험했다고나 해야 할까. 그저 단순하게 일기처럼 써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이를 다시 보고 뒤집어 분석하고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주기도 했다. 그래서 복잡한 감정에 휩싸일 때면 노트북을 열게 된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오래된 나무 팔레트에 아크릴 물감을 쭉 짜 놓고 붓에 물을 묻혀 쓱쓱 그림을 그려보고 싶은 날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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