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것 아니지만 by 보리
어릴 적 주말이면 늘 엄마와 목욕탕에 갔다. 사 남매를 모두 데리고 간 엄마는 바빴다. 제일 막내는 목욕탕에서 제일 큰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앉혀놓고 셋째인 나부터 물을 뿌리고 비누칠을 해댔다. 첫째와 둘째 언니는 조금 컸다고 스스로 대충 비누칠을 했다. 비누칠이 끝나면 탕 안으로 삼 남매를 들여보내고 그제야 엄마는 자신의 몸뚱어리에 비누칠을 박박 했다. 막내의 머리를 감기고 비누칠을 한 다음 한 팔로 막내를 안고 물을 휘저으며 엄마가 성큼성큼 들어왔다. 막내는 엄마의 목을 부여잡고 좀체 내려오지 않았다. 탕에서 제대로 때를 불리고 나온 순서대로 엄마의 때밀이가 시작된다. 일주일에 한 번 미는 때는 늘 줄줄 나왔다. 세 명의 때밀이를 끝내면 이제 큰언니가 엄마의 등을 밀어준다. 이때만이 오롯이 엄마가 두 팔을 쉬는 때다. 하지만 엄마는 등을 맡긴 채로 막내의 몸을 닦아준다. 하긴 그때의 엄마는 눈부시게 젊었으니까. 비록 아이 넷을 낳았어도 엄마의 활기찬 에너지와 탱탱한 육체는 네 아이를 케어하기에 충분했다.
이때쯤 되면 손가락과 발이 쭈글쭈글해진다. 목욕탕에서 나와 바나나 유유에 빨대를 꽂아 하나씩 마시는 시간, 언니들과 서로의 손가락을 들여다보며 누가 더 많이 쭈글쭈글한가를 견주어본다. 그게 무슨 재미라고 킬킬대며 서로의 손가락을 들여다본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목욕탕을 나와 집에 도착할 즈음이면 탱탱하고 포동포동한 손으로 원상 복귀된다. 그때는 몰랐다. 시간이 더 많이 지나면 원하지 않아도 쭈글쭈글해진다는 것을 말이다.
마을에서 어머니를 만났을 때였다. 집에 가니 문은 열려 있는데 어머니가 없었다. 나오는 길에 이웃집에 물어보니 밭에 계신다고 한다. 밭으로 찾아갔다. 밭은 지난 비로 인해 축축했다. 어머니는 아예 신발을 벗어놓고 맨발로 밭에 들어가 일을 하고 있었다. 푹푹 빠지는 흙을 밟고 어머니 옆까지 가는 동안 어머니는 누가 다가오는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집중한 탓도 있지만 귀가 어두운 이유도 있었다.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깔고 어머니 옆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머니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쭈글쭈글한 손에 진흙들이 말라비틀어진 채로 촘촘히 박혀 있었다. 전날 비가 내린 탓에 그날은 바람도 없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이었다. 잠시 손을 놓고 쉬는 동안 햇빛을 받은 진흙들이 회색빛으로 말라가며 주름을 따라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두 손을 맞잡고 멀리 어딘가를 멍하니 바라보며 그 자세로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혼자 살기에 이 정도 밭 일구는데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으니 바쁠 것도 없다. 쉬엄쉬엄 하면 작물을 심을 준비를 맞추는데 부족하지 않을 것이었다. 어머니의 시선이 허공 어느 지점을 떠도는 동안 나 역시 아무 말 없이 어머니 옆을 지켰다. 둘 사이를 흐르는 침묵의 시간들이 고요하게 흐르고 있었다.
문득 팔순 중반을 넘어가는 엄마가 생각났다. 지난해 고관절 수술로 인해 병원 신세를 졌던 엄마는 퇴원 후 자신의 쭈글쭈글해진 팔을 내밀며 한탄을 했다. 늙으면 당연한 것인데 뭐 그리 수선스럽게 그러느냐고 퉁박을 주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대신 바디로션 많이 발라,라고 말해줬다.
나이가 들면 주름이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뭐 그게 대수냐, 라는 말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그가 견디고 버티어 온 삶의 무게와 깊이가 그의 쭈글쭈글한 얼굴과 손과 발과 몸에 오롯이 담겨 있다는 것 정도를 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