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쓴 편지

별 것 아니지만 by 보리

by 김보리

초등학교 시절 매년 치르는 행사 아닌 행사 중 하나가 국군장병에게 편지 쓰기였다. 이름도 몰라, 성도 몰라, 알지도 못하는 국군 장병에게 왜 편지를 쓰라고 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국군은 친구나 부모가 없나? 왜 고사리만 한 손으로 연필심을 꾹꾹 눌러가며 편지지 가득 누구에게 전하는지 모를 안부와 자신이 누구이며 지금 무얼 하는지를 두서없이 적게 했는지 모르겠다. 휴전선을 지키고 있는 고마운 국군들에게 안부 인사를 건네는 것이라고 선생은 말했다. 이 편지로 국군들이 무사히 나라를 지킨다면 그 누구보다 열심히 써 내려가겠지만 철없는 나의 생각에도 지금 쓰고 있는 편지가 그들에게 위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에 반해 친구와 주고받는 편지는 즐겁고 애틋하다. 말로는 전하지 못한 진심 혹은 배려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장마로 인해 무지근한 몸뚱이를 어쩌지 못하고 있을 때, 세상 모든 불행을 짊어진 것처럼 어두운 얼굴로 침울해할 때 우편함에 놓인 편지 한 통을 들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읽는 편지는 오랜 가뭄 끝 단비 같은 존재였다.


이메일이 등장하고부터는 손으로 쓴 편지를 대신했다. 당연히 편지를 주고받는 행위도 없을 줄 알았지만 내 주변인들은 그럼에도 가끔 손 편지를 보내온다. 참으로 친절하고 상냥한 벗들이다. 남미 여행을 간 친구의 이국적인 남미 모습이 담긴 엽서, 일 년 동안의 교사 생활에서 알게 된 제자의 손 편지, 함께 일한 작업자들의 편지, 어린 조카들에게서 받은 편지 등이 서랍 한가운데를 아직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매년 생일이면 죽마고우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손 글씨로 써 내려간 편지는 짧은 안부 같기도 하고, 서로의 처지를 도닥이는 위로 같은 것들이 섞여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기차나 지하철 안에서 몰래 편지를 꺼내보며 삶의 뒤안길을 어슬렁대고 있는 나를 감지한다. 친구의 편지를 그렇게 받았음에도 나는 과연 몇 번의 답장을 했을까를 생각하면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친구여, 부디 이 미련 맞고 애틋하지 못한 친구를 용서해다오.

민에게


다시 여름이 오고 있다. 또 겨울이 오겠지. 그리고 어김없이 봄이 열리겠지. 얼마나 많은 삶의 계절을 통과해야 우리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언젠가 너의 편지에 쓰인 말이 생각난다. ‘버림을 받아야 어른이 된다고. 넌 많이 컸니? 난 아직도 자라지도 못하면서 늙고 있다’라는 말이 가슴에 박힌다. 세상으로부터, 사람으로부터 수없이 버림받고 상처받았지만 나 역시 어른이 되지 못한 채 속절없이 늙어가고만 있다. 얼마나 더 살아야 우리는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는 걸까 싶다.

봄이 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텃밭에 앉는 일이다. 엉덩이 방석을 깔고 앉아 호미로 고랑을 만들고, 상추, 고추, 토마토 등의 모종을 심는다. 이번 장날에 나가니 한 할머니가 한없이 작은 몸을 웅크리고 앉아 직접 키운 모종을 팔고 있었다. 다른 이들의 모종보다 한눈에 봐도 크기도 작고 약해 보였다. 손님이 묻는 소리에 몸만큼 작은 목소리로 답을 한다. 손님 한 명을 상대로 여러 개의 모종을 비닐봉지에 넣는 사이, 다른 손님이 모종 가격을 물어보지만 모종을 담고 가격을 계산하느라 다른 손님이 온지도 모른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할머니라 파악했는지 다른 손님은 잽싸게 스스로 비닐봉지를 집어 자신이 사고자 하는 모종을 담는다. 모종 파는 노점상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나는 여리고 작은 모종 몇 개를 할머니에게서 샀다. 집에 돌아와 모종을 심어 놓고 보니 열흘이 지나도 그대로다. 북주기를 하고 잡초도 뽑아주다 보니 조금씩 모종의 크기가 미세하게 달라진다. 크다고 다 좋은 것만은 아니겠지, 조금 적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달라지는 것들이 있는 게지, 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나는 시간이 지나 달라진 것이 있을까? 얼굴에 주름살이 하나씩 늘어가고, 소주 한 병쯤은 거뜬했던 몸도 두 잔이면 얼굴이 불콰해지고, 비타민과 영양제 없이는 버티지 못하는 몸뚱이가 되었다는 정도쯤인가. 눈으로 확인되는 것들이 이 정도라면 가늠하지도 못하는 마음의 깊이와 길이는 어느 정도 달라졌을까? 혹여 달라졌더라도 두려움, 불안함, 고통, 이런 것들에서부터 영원히 자유로워지기를 나는 바라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들이야말로 우리가 아니 내가 이 삶을 버티고 견디어내는 요소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잘 버티어내자.

‘삶이 궁서체’라고 말한 너에게 우리 삶은 알고 보면 바탕체일지도 모른다고, ‘쳇바퀴 같은 생활’이라 말하는 너에게 질서 정연하고 정갈하게 사는 것도 힘든 일이라고 전해주고 싶다.

‘손 편지 이제 좀 촌스러운가’라는 너의 첫 문장에 난 이렇게 답한다. 촌스럽지 않다고, 그러니 더 써 달라고, 마냥 한없이 투정 부리는 어린애처럼 너에게 말한다. 일 년에 한 번 받는 손 편지 내년에도 또 받을 수 있기를. 그것만이 너와 내가 이 세상을 간절하게 버티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는 것을 뒷받침해주는 든든한 밑거름이 됨을 말이다. 부디 건강하게 늙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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