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것 아니지만 by 보리
얼마 전 서울 집에 갔다. 집에 들어서니 식탁 위에 사진 몇 장이 놓여 있었다. 엄마의 처녀 적 사진 한 장과 내 중학교 졸업사진이었다. 이건 왜? 내 처녀 적 사진이 이것 한 장밖에 안 남았네. 액자에 걸어줘,라고 힘없는 목소리로 엄마가 말했다. 오래된 흑백사진 속 엄마는 통통한 볼에 단정한 단발머리를 하고 무릎까지 오는 스커트 사이로 날씬한 종아리를 오므리고 앉아 있었다. 친구들과 놀러 가서 찍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사진 속 엄마의 모습에는 청춘의 푸르름과 싱싱함이 있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근처 팬시점에 가서 액사를 사 가지고 와 거실 벽면에 걸어놓았다. 액자 안에 조용히 들어간 기억의 순간이 박제되어 벽에 고정되었다.
다른 한 장의 사진은 내 중학교 졸업사진이다. 그 당시 교복에는 빳빳한 하얀 깃을 옷핀으로 고정해 달았는데 그 깃의 딱딱함이 목에 닿는 촉감이 싫었다. 마치 목을 옥죄어 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학생이라는 신분에 갇혀 지내는 느낌 말이다. 다행히도 내 기억으로는 삼 학년이 되었을 때 빳빳한 깃에서 천으로 된 깃으로 바뀌었었다. 그나마 숨을 쉴 수 있어 다행이었다. 삼 년 내내 다행인지 불행인지 키가 많이 자라지 않아 검은색 동복과 흰색 윗도리에 검정 치마인 하복, 딱 두 벌의 교복으로 버티어냈다.
교실에는 63명의 학생들이 바글바글 대었다. 점심시간이면 가지고 온 도시락에서 이 집과 저 집의 반찬 냄새가 섞여 알 수 없는 냄새가 났다. 겨울에는 교실 한가운데 난로가 있어서 도시락을 먼저 데우기 위해 눈치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가장 밑에 놓으면 4교시 동안 밥이 타기 때문에 적당한 타이밍을 노려야 한다. 너무 위에 올라가면 데워지지 않은 미지근한 밥을 먹어야 한다. 밑에서 두 번째나 세 번째가 가장 먹기 좋은 상태의 따끈한 밥이 된다. 그 와중에 부잣집 딸내미들은 보온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녀 모두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나는 그다지 부럽지 않았다. 난로에 데워 먹는 밥의 고슬거림이 더 좋았다.
중학교 졸업 이후 동창회라는 것을 가본 적이 없으니 저 많은 친구들이 지금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모른다. 저들 중에 이름이 생각나는 친구는 여섯 명뿐이다. 나의 협소한 인간관계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지점이다. 그중 한 친구는 삼십 대쯤 연락이 닿아 만나기도 했고, 다른 한 친구는 사십 대에도 만났다. 그 친구는 집 전화번호가 그대로였고 심지어 이사도 가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화로 생사를 확인하고 얼굴을 마주한 친구들과는 반가움보다 어색함이 더 앞섰다. 평소 살갑게 대하지 못하는 내 성격 탓도 있으리라. 모두 어찌어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혹은 직장생활을 하며 그럭저럭 살고 있었지만 개중에는 가출을 하고 결혼이 아닌 동거의 방식을 택해 살림을 내었다가 헤어지기를 반복한 친구도 있었다. 하긴 인생에 정답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소설가이며 다큐멘터리 작가, 미술평론가로 활동한 존 버거는 <말하기의 다른 방법>에서 이렇게 말한다.
한 장의 사진은 사진에 담긴 사건을 한때 담아두고 있던 시간의 흐름을 정지시킨다. 모든 사진은 과거에 속한다. 사진 속에서 과거의 한순간은 우리가 살았던 과거와는 달리 결코 현재로 이어지지 않는다. 사진은 우리에게 두 가지 메시지를 전한다. 하나는 사진 찍은 사건에 대한 메시지, 다른 하나는 불연속성의 충격을 전하는 메시지다. 기록된 순간과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 사이에는 심연이 가로놓여 있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 졸업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학생들은 학교를 배경으로 일렬종대로 줄을 맞추어 서 있고, 담임선생과 교장, 교감 선생이 앞에 앉아 있다. 학생들은 카메라를 동시에 바라보며 웃음기 없는 얼굴로 정면을 응시한다. 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고등학교로의 진학이 가져오는 무거움이 그들의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두어 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미간을 찡그린 채 잔뜩 찌푸리고 험상궂은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졸업식 날 화가 났던 것일까. 분명 그러지는 않았을 텐데 무엇이 저리도 열여섯 살 소녀들의 마음을 응어리지게 했을까 싶다. 오래된 사진 한 장을 보며 마음속 심연의 세계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