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rendipity Oct 19. 2022

아들 둘 아빠의 육아휴직 이야기.01

01. 육아휴직을 결심하기까지

 이번 판은 쉬었다 가기로 했습니다.

 

 살다 보니 아들이 둘인 이유로 생각지도 않게 층간소음 가해자가 되어있었다. 아들이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매트를 여러 장 깔아 두었고, 아이들에게는 항상 주의시키고 교육시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발생하는 발걸음 소리는 완전히 막기는 쉽지가 않았다. 아래층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인터폰 연락과 가정방문이 이어졌고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사과뿐이었다. 연락과 방문이 이어질 때마다 아이들을 다그치며 매트를 구매해서 매트 위에 매트를 깔았고 천정과 정수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매트 구매 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약 7cm 정도의 매트를 깐 후에도 드라마틱한 층간소음 예방 효과는 전혀 확인하지 못했고 삶의 불편만 늘어났다. 어느덧 아이들에게 '뛰지 마라', '살금살금 걸으라'라고 소리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매트를 치워도 매트가 나온다.

 물이나 음료라도 흘리는 날엔 매트 사이사이로 스며든 음료를 닦아내느라 진땀을 뺐고, 청소기를 돌리려면 매일이 대청소였다. 여름엔 매트 바닥에 차는 습기로 인해 매트를 들 때마다 쿰쿰한 향이 올라와 자주 닦아줘야 했고, 겨울에는 온돌의 온기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우리 집에 방문하는 사람마다 매트의 개수와 보이지 않는 바닥에 놀라워했고 언제부턴가 퇴근 후 아이들에게 ‘오늘은 어땠어?’라고 물으면 ‘오늘은 뛰지 않았어요.’라는 이상한 대답을 들었다. 아이들을 다그치고 매트를 계속 까는 건 층간소음 해결에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느낄 무렵 집을 비운와중에 아이들이 뛰어서 시끄럽다는 연락을 받았다.


 내가 사는 아파트엔 아이들이 꽤 많은 편이고 아래층을 둘러싼 여덟 가구엔 우리 집을 포함하여 최소한 다섯 가구에 아이들이 살고 있었으며 층간소음 항의가 잦던 아랫집에도 둘째 또래의 여자 아이가 살고있다. 우리 집에서 층간 소음 방지를 위한 자녀 훈육과 무수한 노력을 하더라도 다른 집에서 발생한 소음까지는 막을 방법이 없었다.


 코로나 전에는 최대한 많은 시간을 집 밖에서 보내면서 층간소음 발생 빈도를 최대한 줄일 수 있었지만, 코로나가 발생 이후 아파트 내 모든 아이들이 유치원과 학교를 가지 못하고 가정에 머물면서 우리 가족은 층간소음 가해자로서 더욱 심신이 지쳐갔다. 인터폰이라도 울리면 온 가족이 긴장했고, 아이들은 살금살금  걸었는데도 연락이 온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내 집이지만 편히 쉴 수 있는 집이 아니었다.


 21년 초부터는 1층으로 이사를 가야 할지,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가야 할지 고민하느라 여러 집을 보러 다녔다. 여름쯤 이사를 가기로 결정을 하고 부동산에 집을 내놓았다. 몇 차례 집을 보러 왔지만 이어지는 부동산 규제로 거래가 뜸해졌고 이사를 가기엔 어렵다고 판단을 하고 육아휴직을 쓰기로 했다.


 표면적으로는 아이들을 달래고 지켜주고자 했지만 어쩌면 스스로 쉴 핑계를 찾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불혹에 가까워 생각해보니,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겠지만 대학 졸업 이후에 여름휴가를 제외하면 딱히 쉬어 본 적이 없었다. 지난겨울에 첫째가 '어른들은  방학이 없어요?’라고 물어봤을 때 ‘어른도 방학이 있으면 좋겠는데 없어’라고 대충 둘러댄 기억이 있는데 거짓말을 한 셈이 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