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rendipity Nov 10. 2022

아들 둘 아빠의 육아휴직 이야기.05

05. 제주도 한 달 살기 우리 집 찾기

살아보고 싶은 집 구하기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목적지와 일정을 정했으니 이제 살 집을 찾아야 한다. 코로나 기간 동안 삭제해두었던 에OOOO, 아OO, 부OOO 등 각종 숙박 앱을 다시 설치했다. 연관 앱을 보니 이전에는 없었던 국산

숙박 앱도 보여서 함께 설치했는데 숙소를 검색하는 것만으로도 설레기 시작했다. 


 사실 이번이 두 번째 한 달 살기이다. 코로나 직전인 19년에 안식휴가, 여름휴가, 추석 연휴를 이어서 제주도 한 달 살기를 경험했었다. 성인이 된 후에는 3~5박 이내 짧은 여행에 익숙해져 있는 상태라 장기 숙박은 새로웠다. 하지만 무엇이든 처음에는 서툴기 마련인데 첫 번째 한 달 살기가 딱 그랬다. 만약을 대비해 준비할 것도 많다. 가볼 곳도 많고, 먹을 것도 많다. 한 달이면 매우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보니 시간은 항상 부족했고, 한 달 살기를 하고 왔지만 충분히 쉬었다는 상쾌함보다는 짧은 여행을 5번 한 것 같은 피로감만 남았다. 급하게 구한 숙소는 불편했고, 이동거리는 길었으며, 대부분의 끼니를 

외식한 결과 지출은 예상을 초월했다. 추억은 남았지만 다시 한다고 하면 그렇게는 하지 않을 것이다.


 제주도의 전부를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한 달이나 살아본 제주는 짧은 여행에서 경험한 제주도보다 척박했다. 한 달 살기 이전에는 '제주도에 살고 싶다.' 하는 막연한 희망사항이 있었으나, 한 달 살기 이후 그 꿈은 조용히 사라졌다. 역시 여행지는 여행으로 갔을 때나 낭만적이고, 아쉬움이 남는 법인가 보다. 짧은 제주도 여행에서 호텔과 리조트 위주로 여행지만 다녔으니 밝고, 아름답고, 소란스러웠다. 하지만 한 달 살기 제주도에서는내륙의 어느 조용한 시골마을과 마찬가지로 생각보다 척박하고, 캄캄했고, 조용한 섬이었다. 한 달을 살던 집 주차장 뒤편에는 현무암 담장으로 둘러진 농지가 넓게 펼쳐져있었다. 바다까지 탁 트인 전망이 낮에는 꽤 멋지고 시원해 보였지만 밤이 되자 칠흑 같은 어둠으로 변했다. 밤바다 보다도 거리감을 헤아릴 수 없어서 갑자기 뭐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공포가 느껴지는 듯했다. 심야에 맥주나 간식이라도 사러 근처 편의점에 가거나, 빨래방에 다녀오기 위해 차에 오를 때까지 잠깐의 시간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편의점까지 다녀오는 길에 차 한 대 없이 오가는 것도 어색했고, 한적한 도로에서 뒤 따라오는 차는 자기 갈 길을 가고 있을 텐데 '나를 따라오는 건가?' 하는 망상이 들기도 했다. 제주도의 문제라기보다는 서울과 수도권을 벗어나 살아보지 않은 나의 문제일 수 있다. 변화된 환경에 적응해야 살아남을 텐데, 수도권을 벗어나면 예상외로 적응력이 떨어지는 동물임을 새삼 느낀다.

19년도 한 달 묵 없던 숙소의 주차장 전망. 낮에는 멋있지만, 밤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한 달 살기 장소를 제주도로 정했는데 제주도가 가진 이국적인 느낌때문인지,

지난번 서툴렀던 제주도 한 달 살이 동안의 고됐던 기억은 미화되고 추억만 남아서인지 알 수가 없다.


 일전에 한두 번 가본 적이 있지만 첫 번째 한 달 살기에서는 방문하지 않은 지역으로 대략적인 위치를 정했다. 바다가 가까운 성산에서 주로 물놀이를 하고 서귀포 이동하기로 했으며, 첫 번째 한 달 살기 경험을 토대로 두 번째 한 달 살기 집을 구하는데 규칙을 정했다. 


0. 살아보고 싶은 집 구하기, 1. 건조기가 있을 것, 2. 취사가 가능한 것, 3. 마트나 편의시설이 가까울 것 


0. 아파트가 아닌 집에 살아보고 싶지만, 층간소음을 제외하면 꽤나 만족스러운 아파트를 떠날 용기가 나지 않는다. 혹시라도 미래에 주거 형태를 변경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한 달 살기 동안 다른 주거 형태에 살아보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층간소음 가해자로 지목되었던 터라 마당이나 테라스가 있는 단독주택이나, 1층인 집을 우선순위에 두었다.   


1. 한 달 살기 동안 빨래방을 이용해보니 번거롭고 불편했다. 낮시간에 빨래와 건조를 하자니 시간이 아깝고, 밤에 하자니 어두운 골목길에서 덩그러니 훤한 빨래방에 서 있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누군가에게 관찰당하는 것 같고, 다른 손님이 들어오면 덩치가 꽤 큰 남자인데도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한 경험이 있어, 건조기가 설치된 집을 찾기로 했다.


2. 제주도의 물가는 꽤 높은 편이고 휴직 중이니, 이전처럼 매 끼니를 사 먹기에는 부담스럽기 때문에 

호스트가 허락하는 수준에서 취사가 가능한 곳을 찾기로 했다.


3. 당연한 이야기지만 생활 편의시설 및 병원은 가까울수록 좋다.


 이 모든 것을 만족하는 숙소를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보다도 어려워서 3번은 '조금 멀어도 된다.'로 정정했다. 22년도의 제주 한 달 살기 숙소 유형은 19년도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단독 주택이 많이 보였고, 신축 숙소가 많아졌다. 특히 1~2인 숙소가 많이 보였는데 COVID19 이후 재택근무자들의 제주도 원격근무가 늘고, 집합 금지로 인한 소규모 여행 수요가 제주도로 몰린 효과인가 싶다. 여행 일정이 꽤 많이 남아있음에도 한눈에 보기에도 좋아 보이는 숙소는 대부분 1월 초부터 연말까지 마감된 상태였다. 물가상승의 효과인지, 제주 여행 수요가 많은 탓인지 1박 비용도 꽤 높아져 있어서 4인 가족의 1박 비용은 20만원 내외로 결정했다. 


 아이들이 어렸던 19년도에는 조금 작은 숙소에서도 충분히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이들이 제법 커졌고, 코로나 격리기간 동안 온 가족이 한정된 공간에 머무르기엔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작은 숙소를 구할 수도 있었으나, 제주도 한 달 살기 동안 가족들의 스트레스 관리를 위해서라도 1인당 적당한 최소한의 면적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며칠을 고르고 고른 끝에 성산의 단독주택에서 2주를 지내고, 서귀포의 테라스가 있는 타운하우스에서 2주를 지내기로 했다. 

성산 단독주택 마당에서 보이는 500년 된 나무와 서귀포 타운하우스의 테라스 뷰

지천이 바다인 성산에서는 아이들과 물놀이를 하고, 도심지인 서귀포에서는 문화생활을 즐기길 예정이다. 

우리가 살 집을 골랐으니 이제는 제주도까지 어떻게 갈지를 결정해야 하고, 필요한 물품들을 준비해야 한다.

여행을 간다는 소식에 아이들은 격렬하게 반응했고, 제주도로 간다는 말에 둘째는 이제 비행기를 탈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여행가자.'는 한 마디로도 설레이는 건 아이나 어른이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작가의 이전글 아들 둘 아빠의 육아휴직 이야기.0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