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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endipity Nov 07. 2022

아들 둘 아빠의 육아휴직 이야기.04

04. 놀러 갈 생각부터 합니다.

놀고 있지만 놀고 싶으니까요.  


 기상 후 아이들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나면 이후엔 할 일이 없는 상태로 2주 정도가 지났지만 딱히 할 일이 없다.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도 출근을 했을 테니 만나서 놀 사람도 없다. 오전 시간에 도서관이나 단지 내 헬스장에 다녀오고 나면,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대부분의 일과는 종료된 상태지만 이 느낌이 어색하지가 않다. 회사에서는 정신없이 일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는 날이 종종 있었지만, 집에서 쉬기만 해도 시간이 빨리 가는 게 놀랍기만 하다. 심지어 경제적 여유만 허락한다면 이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내도 지루하지가 않을 것 같다는 망상까지 들기도 한다. 

  

 휴직을 이후 눈에 띄는 변화를 굳이 찾자면 외식 빈도가 줄었다. 바빠서 귀찮아서 습관적으로 외식을 했지만, 시간이 남고 수입이 줄었으니 밥을 해 먹기에 적격이기도 하다. 아이들 귀가 시간이 가까워지면 저녁 준비를 시작하고 어느 정도 저녁 준비가 마무리되면 단지 내 태권도장에 아이들을 데리러 간다. 수업이 끝나면 집까지 자전거를 타고 알아서 잘 오지만 가끔은 이렇게라도 저녁 바람을 쐬러 간다. 

마중길 석양과 주인을 기다리는 자전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먼저 변화된 근황을 물어온 건 태권도장 관장님이었다. 휴직 전에는 아이들을 데리러 갈 일이 없었으니, 어느 날부터 편안한 차림으로 자주 아이들을 데리러 오는 나를 보고 꽤나 궁금해하셨나 보다. 보통 때라면 가벼운 인사로 끝났을 텐데, 귓속말을 하시듯 "아버님, 궁금한 게 있는데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하시길래 태권도장에서 아이들이 문제라도 일으키는 줄 알았다. 어떻게 이 시간에 자주 오시는지 물어보셨고, 이번 달부터 육아휴직 중이라고 말씀드렸다. 관장님의 말투에서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 꽤나 고심하신 흔적이 느껴졌다. 과거에 내가 다녔던 태권도장은 삭막하고 엄격해서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금방 그만두었던 기억뿐인데, 아이들은 종종 주말에도 태권도장을 가고 싶다고 하여 놀랐던 적이 있다. 막연히 요즘 태권도장은 놀이체육을 겸해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지만, 소소한 변화도 금세 알아보는 관장님을 뵙고 나니 어쩌면 아이들은 작은 것에도 열렬히 반응해주시는 관장님을 따르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자세는 본받을 필요가 있다.     

 

 집으로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아이들 숙제를 봐주고, 잠을 재우고서 와이프가 물었다. "이제 뭐 할 거야?"

"여행 갈까?" 뇌를 거치지 않은, 마치 무조건 반사 같은 대답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휴직 이후 아무런 계획 없었으니 여행 시기, 목적지, 기간도 정해진 것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곧 여름 방학이었고, 첫째의 학교 증축으로 7월 중순부터 추석 연휴까지 여름방학이라는 것이 생각났고, 연이어 방학시즌 층간 소음 항의로 인한 지독한 트라우마가 떠올랐다. 층간소음 가해자로 지목된 상황에서 기나긴 여름방학을 집에서 보낸다면 유난히 긴 여름방학이 편할리 없다. 무의식적이고 재빠른 사고 작용으로 여행기간은 아주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휴직 중이니 일제히 방학이 시작되는 시기에 여행을 떠날 필요도 없고, 굳이 성수기에 비용을 더 지불할 필요도 없기에 여행 시작은 2주 앞당겨 시작하기로 했다. 대신 한 달 여행 후 집에서 2주 휴식 후, 다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이제는 기억도 까마득한 대학시절 배낭여행보다도 더 긴 여행이다. 잠깐 해외여행을 꿈꾸었으나 아직 코로나가 끝나지 않았다. 이국적인 느낌을 내기엔 제주도만 한 곳이 없으니 일단 제주도로 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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