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시를 바탕으로
우리 문학사 이해하기.(3-2)

3. 근˙현대를 대표하는 우리 시

3. 근˙현대를 대표하는 우리 시(2)


(5) 광복(1945) 시기

88888-1627892745462.jpg

1945년 광복 이후, 우리말의 특징을 살려 자연을 소재로 자연의 심성과 순수한 인간성을 표현한 청록파 시인(조지훈, 박두진, 박목월)들이 등장합니다.

특히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는 조지훈 시인의 「완화삼」이라는 시에 화답하는 시로 쓰였지만, 향토적인 느낌과 2연과 5연의 반복을 통한 운율성과 안정감을 통해 서정시로서의 완성도를 높인 뛰어난 서정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도 소개했던 정지용 시인은 "북에는 소월이 있었거니, 남에는 목월이가 있다"라고 했을 정도로 아름다운 언어와 우리 정서에 어울리는 가락이 담긴 시를 썼던 박목월 시인의 시는 그래서 많은 작곡가들에 의해 가곡으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99999-1627892885521.jpg

우리나라 근·현대 시인 중에 가장 논란거리가 많은 인물이 바로 서정주 시인입니다. 그의 시가 지닌 뛰어난 예술성과 그가 행한 반민족적 친일 행위가 극점에서 대립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선, 대부분의 문인들은 그의 시가 지닌 예술성을 인정합니다. 필자가 대학 시절 김춘수 시인이 학교에 와서 강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는 자신이 서정주만큼 아름다운 언어로 시를 쓸 자신이 없어서 ‘무의미 시’라는 장르를 개척했노라 고백했습니다. 그만큼 서정주 시인의 시가 예술적 무게감은 묵직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많은 문인(이광수, 김동인, 김동환, 주요한, 모윤숙, 노천명 등)들이 친일 행위를 했음에도 서정주 시인이 친일 행위의 주요 타깃이 되는 것은 그의 뻔뻔함에 있습니다. 후에 왜 친일 행위를 했냐는 질문에 “일본이 백 년도 못 갈 줄 누가 알았겠냐?”며 되묻는 그의 뻔뻔함은 결국 그가 쌓은 문학적 예술성을 무너뜨리는 데 일조한 것입니다.


(6) 한국전쟁(1950) 시기

1010-1627893026638.jpg

광복 이후 1950년 갑작스레 일어난 6·25전쟁으로 우리나라는 폐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자유당과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들의 독재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들을 억압하였습니다. 따라서 1950년대의 시의 주류는 이런 현실에 저항하는 ‘저항시’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시인이 김수영입니다.

그의 시 「눈」을 살펴보면 ‘젊은 시인‘들에게 '눈'이라는 억압제에 저항하라며 기침을 하고 가래를 뱉으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즉, 부정적인 현실에 저항할 것을 권유하는 것입니다. 또다른 대표작인 「풀」에서도 바람에 눕고, 울고, 다시 눕는 풀이 다시 일어나고 눕고, 일어나고, 웃는다며 바람에 저항하는 풀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런 그의 저항성은 1960년 4·19혁명 이후 더 진하게 드러나지만 불의의 교통사고로 1968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1011-1627893108979.jpg

물론 1950년대의 모든 시가 저항을 주제로 삼지만은 않았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시인이 바로 김춘수입니다.

「꽃의 소묘」와 「꽃을 위한 서시」 등과 함께 ‘꽃의 소묘‘부에 실린 이 시는 꽃에 대한 기존의 통념(꽃에 대한 찬사 혹은 정감 등)을 거부하고 무의미했던 대상의 이름을 불러주는 행위를 통해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 가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김춘수의 '무의미 시'라는 갈래는 단순히 의미가 없음을 뜻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시적 의미를 부여하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물과 언어 사이의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그의 시도는 일종의 철학적 사유의 과정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를 1950년대의 대표하는 시인으로 손꼽은 것입니다.


(7) 4˙19 이후(1960) 시기

121212-1627893291512.jpg

4·19혁명 이후 ‘저항시’의 영역은 더욱 확대되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시류에서 벗어난 새로운 주제의 시가 쓰이기도 했습니다.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 역시 그런 시입니다. 그는 이 시에서 민족 분단의 극복은 우리 민족의 역사적 과제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4월’이 바로 4·19혁명을 의미하는데, 그마저도 시인은 ‘껍데기‘라고 묘사합니다. ‘동학년 곰나루의 아우성’은 동학 운동을 의미하는데 역시 시인은 그 의지와 열정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가라’고 합니다. 그리고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기라고 합니다.

이처럼 신동엽 시인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 민족이 다시 하나가 되는 통일이었던 것입니다.


131313-1627893399566.jpg

또한, 끊임없는 개발과 경제 성장의 대전제 속에서 일어나는 인간성 파괴에 대한 반발을 주제로 삼은 시인들도 있었습니다.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는 환경 파괴와 문명에 대한 비판, 가난한 서민들의 애환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시에서 한때 사랑과 평화의 상징이었던 비둘기가 사람들의 개발에 밀려 그 상징성마저 잃어버리며 쫓겨났다고 표현합니다. 이미 1969년에 우리가 지금 흔하게 말하는 ‘닭둘기‘의 행색을 묘사한 것입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경제발전 계획은 뚜렷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이처럼 짙은 그림자를 남기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8) 유신독재(1972) 시기

141414-1627893527865.jpg

1963년 박정희 대통령이 취임하면서부터 이루어진 독재에 맞서는 주제의 시들이 다시 ‘저항시’의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김지하 시인의 「타는 목마름으로」를 살펴보자면 폭력적인 독재 정치 아래서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해 갈망하는 시적 화자의 마음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특히, 그는 ‘남 몰래’, ‘숨 죽여 흐느끼며 남몰래‘ 민주주의를 쓸 수 밖에 없는 엄혹한 현실을 드러내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민주주의여 만세’를 외치고 있습니다.

이처럼 유신 독재 체제 아래에서도 많은 문인들은 자신들의 문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151515-1627893623033.jpg

유신 독재의 그림자는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다양한 곳에 그늘을 드리웠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산업화로 소외된 농촌이었습니다. 개발과 성장이 주 목표였던 당시 그때까지 사람들의 식생활을 책임지던 농민들은 소외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현실이 잘 드러난 시가 신경림 시인의 「농무」입니다. 이 시에서 신경림 시인은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등의 표현을 통해 산업화에 소외 받은 농민들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단지 한탄과 비판 만이 아니라,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등의 표현을 통해 그 상황에 대한 극복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9) 12.12사태와 민주화 운동(1979) 시기

161616-1627893728169.jpg

개발과 성장의 그림자는 농민들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역시 그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실제 노동자이며 시인이기도 했던 박노해 시인은 「손 무덤」을 통해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일하던 노동자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합니다.

가족들과 손목 잡고 어린이 대공원이라도 가야겠다고 하던 공장 노동자의 손목이 잘리는 사고가 발생하지만 사장도 공장장도 부장도 자신들의 차에 태워주지 않았고, 결국 그 노동자는 트럭 짐칸에 실려서 병원에 갔다는 처참한 현실을 담담하게 그려낸 이 시는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과 현실에 대한 자각을 불러왔다고 전해집니다.

12·12 사태 이후에 대통령은 바뀌지만 이런 현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171717-1627893813293.jpg

독재 정권의 암울한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곳은 농민이나 노동자뿐만 아니라 학생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학생들은 언제나 앞장서서 시위와 데모를 주도했고, 그런 그들의 모습은 기형도 시인의 「대학 시절」이라는 시에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가장 고등 교육 기관인 대학교 나무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고, 캠퍼스에서 플라톤을 읽고 있는 시적 화자의 귀에는 총소리가 들리는 현실. 그의 친구들은 감옥이 아니면 군대로 끌려갔으며, 주변의 누구도 믿을 수 없어서 결국 외톨이가 되고 마는 모습을 통해 군부 독재와 그에 맞서는 학생들의 모습이 잘 드러납니다.

기형도 시인의 「백야」, 「안개」 등의 시에서도 당시 현실에 대한 다양한 모습을 비판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시를 바탕으로 우리 문학사 이해하기.(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