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시를 바탕으로
우리 문학사 이해하기.(3-1)

3. 근˙현대를 대표하는 우리 시

3. 근˙현대를 대표하는 우리 시

(1) 갑오개혁(1894) 시기

20210802_171111-1627891898057.jpg

최남선 시인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대표적인 신체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시는 시조로서 정형시의 형태를 띠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체시는 고정적인 형태를 벗어나면서 형식의 자유로움과 개방성을 추구했습니다. 이것은 후에 자유시가 등장하는 과도기의 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완전한 자유시의 형식은 아니었기 때문에 2, 4, 6행의 경우엔 3·3·5조의 형식을 유지하고 있지만, 3행은 4자, 3자, 4자, 5자로, 5행은 4자, 3자, 4자, 4자, 3자로 구성되어 정해진 율격이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또한 개인적인 감정이 아닌 계몽성을 지닌 주제로 시를 지었다는 점에서도 완전한 근대시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2) 독립운동(1919) 시기

11111-1627892074428.jpg

1910년에 들어서면서 우리나라에도 자유시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주요한 시인의 「불놀이」를 보면 그 차이점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우선 보기에도 이 시는 산문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일정한 글자 수를 따른다거나 연과 행에 규칙이 존재한다거나 하지 않습니다. 즉, 외적인 정형성을 띠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계몽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면, 시인의 「불놀이」는 '사랑의 봄은 또 다시 안 돌아오는가'처럼 개인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창작된 시들은 이 시처럼 형식적인 제약과 주제적인 제약을 벗어나 자유로운 형식과 개인적인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근대적 자유시는 191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2222-1627892181836.jpg

근대적 자유시가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개인의 감정을 주제로 한 시들이 많이 나타났는데,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맞이하는 이별의 순간, 그 대상을 원망하면서도 축복하고, 축복하면서도 인내하는 시적 화자의 정서가 잘 표현된 「진달래꽃」 은 주제나 내용적인 측면에서 완전한 서정시, 자유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1920년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선정하였습니다.


(3) KAPF(1926) 시기

33333-1627892279061.jpg

문학사적 측면에서 ‘카프(KAPF: Korea Artista Proleta Federatio: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하지만 빼놓을 수도 없는 부분입니다.

일제강점기를 살던 당시의 몇몇 작가들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단을 사회주의에서 찾았습니다. 김기진, 박영희, 임화 등이 대표적인 카프의 작가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한계는 명확했습니다. 김기진 시인이 「백수의 탄식」에서 ‘브나로드(민중 속으로)!’를 외치는 것처럼 시를 시가 아닌 정치의 수단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몇몇 작품을 빼고는 대부분 정치 선전문 정도의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물론 어려운 시기에 어려운 사람들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었기에 대중들의 호응을 얻기는 했지만, 딱 그 정도까지가 한계였습니다.

게다가 중일 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검열을 강화했고, 결국 카프는 짧은(1925~1935) 흔적을 남기고 우리 문학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44444-1627892384485.jpg

물론 이 시기에 모든 문학이 사회주의를 노래했던 것은 아닙니다. 서정시는 이미 고유의 갈래로 자리잡았고, 정지용 시인의 「유리창」 처럼 개인의 감정을 주제로 한 시도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폐결핵으로 죽음을 맞은 자신의 아들을 그리워하며, 그 애절한 슬픔과 그리움을 ‘외로운 황홀한 심사’라고 표현한 것은 가장 이상적이며 적절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시적 화자는 죽은 아들의 모습이 유리창에 비치는 순간에 느껴질 감정의 폭풍을 시종일관 담담하게 표현하여, 시를 읽는 사람들에게 더욱 큰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래서 1930년대를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손꼽을 수 있습니다.


55555-1627892479593.jpg

1930년대에 빼 놓을 수 없는 또 한 명의 시인이 바로 김영랑입니다. 음악에 대한 조예도 깊었고, 각종 운동에도 능했다고 알려진 그는 그 때문인지 자신의 작품에서 시의 운율성을 특히 잘 드러냈습니다.

김영랑 시인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잘 살펴보면 자연스러운 운율을 느낄 수 있으며, 무엇보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살리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모란’에 대한 그리움이 특히 두드러지면서도 자신의 슬픔을 찬란함과 연결 지어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고 표현한 부분은 앞서 보았던 정지용 시인의 ‘외로운 황홀한 심사’에 견줄만큼 뛰어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4) 국어말살정책(1940) 시기

66666-1627892595824.jpg

1940년 대에 들어서면서 일제는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으로 국어말살정책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역사를 왜곡하는 일제에 맞서 신채호 선생은 한국사를 연구하며 을지문덕, 강감찬, 이순신 등의 전기문을 써서 애국심을 높였습니다.

그리고 국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일제의 탄압에 조선어학회는 한글 연구 및 강습회를 열며 한글 보급과 국어사전 편찬에 공을 들였습니다.

또한, 문인들 역시 자신의 작품을 통해 항일 의지를 드러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윤동주 시인의 「서시」입니다. 많은 문인들이 저항과 굴복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고, 이때 윤동주 시인은 어려움과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던 것입니다.


77777-1627892662473.jpg

윤동주 시인이 자기 성찰과 참회를 통해 운명을 극복하기를 바랐다면, 이육사 시인은 절망적인 현실의 극복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염원을 드러냈습니다.

이육사 시인의 「광야」는 그런 시인의 의지가 잘 드러난 작품입니다. 과거 – 현재 – 미래의 세 단계로 나누어진 이 시는 태초에 광야가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했는지, 그리고 눈 덮인 암담한 현실의 모습이 어떠한지, 마지막으로 먼 훗날 나타날 초인에 대한 기대감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 시를 읽다 보면 시인이 지닌 미래에 대한 의지와 염원이 잘 느껴지기에 1940년대를 대표하는 시로 손꼽을 수 있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시를 바탕으로 우리 문학사 이해하기.(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