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음미하는 시 읽기
지난 글을 통해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와 더불어 그 시기에 우리 시 문학은 어떤 형태를 보여주었는지 정리해 보았습니다.
각각의 시기를 대표할만한 작품들과 함께 그 배경을 설명하면서 최대한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들을 소개하기도 했지만 지난 시간에 다루지 못해 아쉬운 작품들도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지난 글에서는 다루지 못했지만 당시를 대표하기에 부족함 없는 몇몇 작품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이북 출신인 김종삼 시인은 「민간인」이라는 시를 통해 탈북 주민들의 슬픔을 담담하게 그려냈습니다. 황해도 해주의 바다를 몰래 건너려던 가족들 사이에서 어린 아기가 울음을 터트렸고, 가족들은 모두가 북한 군인에게 잡혀가 죽을 것인지, 아니면 아기를 희생할 것인지의 기로에서 후자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스무 몇 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그 아기를 희생시킨 가족의 수심(愁心: 매우 근심함. 또는 그런 마음)을 혹은 그 아기를 삼켜버린 바다의 깊이(水深)를 누구도 알 수 없다고 표현합니다.
「민간인」 이 한 편의 짧은 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면, 또다른 그의 시 「묵화」는 한편의 수묵화를 보는 느낌을 줍니다. 의지할 데 없는 할머니와 소가 하루 일과를 끝내고 서로를 바라보는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는 이 시는 「민간인」과 함께 시가 지닌 심상(이미지)이 지닌 영향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형도 시인의 「엄마 걱정」 역시 그러한 이미지의 힘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어느정도 나이를 먹은 한 사람이 ‘그랬던 적도 있었지‘라고 말하며 자신의 추억을 회상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아마도 ‘찬밥처럼 방에 담겨’ 엄마를 기다리던 유년 시절이 그리운 것은 이제 시적 화자가 그때의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자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유년 시절을 그것도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을 때를 떠올리는 것은 그때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이며, 생각해보면 오히려 엄마를 기다릴 수 있었던 그 순간이 축복이며 행복이었다는 깨달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시적 이미지의 영향력은 이면우 시인의 「빵집」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붉은 신호등에 멈춰 선 버스 속에서’ 동네 빵집 유리창에 그 집 아이가 초록색 크레파스로 ‘아저씨 아줌마 형 누나님 우리집 빵 사가세요 아빠 엄마 웃게요, 라고’ 꼭꼭 눌러 쓴 도화지를 바라보는 시적 화자의 모습이 왠지 독자인 나와 겹쳐 보이는 것은 이 장면이 낯설지 않기 때문이며, 이 시가 우리에게 감명을 주는 것은 이 낯설지 않은 이미지가 우리에게 낯설게 다가오기 때문일 것입니다.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것을 낯설게 만드는 것을 문학에서는 ‘낯설게 하기’라고 합니다. 이 시가 우리에게 감명을 주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현대의 시들은 점점 운율성이나 주제성을 벗어버리고 그 이미지성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제가 소개해 드린 시들이 그 주제나 목적을 벗어나 짧지만 깊은 울림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그런 시의 이미지성을 강조하려 노렸했던 본인의 보잘것 없는 시를 한 편 남기며 이번 글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