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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콘텐츠연구소 Sep 19. 2022

우리 역사 속의 범죄자들.21.대구지하철 방화참사

21. 잊힐 수 없는 참사, 대구지하철 방화사건

21.잊힐 수 없는 참사, 대구지하철 방화사건


하는 일의 특성상 늘 새로운 뉴스를 자주 찾아 읽게 되고, 그러다 보니 온갖 사건 사고의 소식들을 다양하게 접하게 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경중은 나뉘기 마련이고 가장 마음아프고 지워지지 못할 사건 리스트를 정리하면 상위권에 들어갈 이야기가 바로 오늘 이야기할 대구지하철 방화사건이다.


1947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난 김대한은 대구에서 택시기사와 화물차 기사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2001년 뇌졸증에 걸리며 졸지에 백수가 되자 자신의 불행을 사회의 탓으로 돌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2003년 2월 18일 근처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구입해 샴푸통에 담고 대구지하철 1호선 송현역에서 지하철 1079호 열차에 탑승하였다.


대구지하철방화범 김대한 - 시사저널


그리고 열차가 중앙로역에 도착하자 열차에 불을 질렀고, 자신의 몸에 불이 붙자 당황하여 열차 바깥으로 뛰쳐내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당시 열차가 중앙로역에 정차한 상태였기에 승객들은 재빨리 열차에서 뛰어내려 대피할 수 있었고, 승객들이 119에 신고도 할 수 있었다. 이때가 대략 오전 9시 52~53분 사이였다고 한다.


그리고 중앙로역의 역무원이 종합사령실에 "중앙로역에 화재로 앞이 보이지 않는다. 신고를 부탁한다"고 전달했으나 종합사령실에서는 119에 신고를 하지 않았고, 마침 대구역에서 중앙로 역으로 출발하기 전이었던 1080 열차에게 '중앙로역에 화재가 발생했으니 조심해서 진입하라'라는 간단한 메시지만을 전달했다. 하지만 이미 당시 1079호 열차는 불길에 휩싸인 상태였다.


이런 상황을 알 수 없었던 1080호 열차가 중앙로 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역 전체가 검은 연기에 휩싸여 있었고, 기관사는 연기가 들어오자 문을 닫아버린다. 그러나 이후 전기가 끊기면서 1080호 열차는 연기 속에 밀폐되어 버리게 된다. 


9시 57~58분 정도가 되자 1080호 기관사는 종합사령실에 다시 상황을 알리며 대책을 문의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대기하고 승객들에게 안내 방송을 하라'라는 것이었다. 기관사는 승객들에게 "잠시 후 출발할 것이니 대기해 달라"는 안내를 한다. 그리고 그제서야 중앙로역의 역무원은 소방서에 화재 신고를 한다. 그때는 다행히 중부소방서 대원들이 중앙로역에 도착해 사람들을 구조하던 상태였다.


현장에서 수숩하는 소방관의 모습 - 위키백과


9시 58~59분 사이에 1080호 기관사는 다시 종합사령실에 승객 대피 여부를 문의하지만 전력이 끊겼다 들어왔다 하며 제대로 된 답을 듣지 못하고 시간만 지나고 있었다. 전력이 공급될 때 출발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기관사는 다시 승객들에게 열차가 출발할 것이니 대기하라고 전달한다. 하지만 이때쯤부터는 1079 열차에서 1080 열차로 불이 옮겨붙기 시작하였다.


결국 그제서야 종합사령실에서는 1080 열차의 기관사에게 "승객들을 승강장 위로 대피시키라"고 지시하였고, 기관사는 승객들에게 대피 안내 방송을 했지만 이미 전력이 끊겨 문이 열리지 않는 칸이 많았으며, 무엇보다 유독가스와 연기로 가득찬 상태에서 수동으로 문을 개폐하는 방법도 몰랐던 승객들이 문을 열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이후 이 기관사는 사령실의 지시에 따라 전동차의 엔진을 끄기 위해 마스터 키를 뽑고 근처의 몇몇 승객과 탈출하는데, 이 과정에서 나머지 다른 승객들의 안전은 확인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10시 10분 경에는 인근의 소방서와 파출소의 인원들이 총출동하여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역사는 연기와 유독가스, 그리고 뜨거움으로 가득해서 사람들을 구조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그리고 이때까지가 구조자들의 마지막 골든타임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소방본부장까지 나서서 경북지역의 모든 소방관들을 출동시켰으나 역사로 내려가 사람을 구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고, 오후 1시 38분경 겨우 화재에 대한 진화작업만을 완료할 수 있었다.


대구지하철방화사건 - 위키백과


이 사건은 기본적으로 김대한이 저지른 방화가 시작이기는 하지만 애초에 이처럼 큰 인명 피해와 물질적 피해를 입힐 일은 아니었다. 지하철 공사 직원들의 한심한 수준의 대응이 일을 키웠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우선 1079호 기관사는 중앙로역에 도착해서 화재가 난 사실을 알게 되자 바로 소화기를 들고 화재를 진압하려는 노력을 했다. 하지만 불길을 진압하지 못하자 상황실에 정확한 화재의 규모와 위치 등을 보고하지 않고 대피하였다.


1080호 기관사의 경우는 더 심각한데, 종합사령실에서 중앙로역에 불이 났다는 소식도 듣고, 중앙로역에 들어서기 전부터 이미 연기로 뒤덮인 상황을 목격했음에도 별 일 아니겠지하는 마음으로 중앙로역에 진입한다. 이후에도 스스로 사건 현장에 있었음에도 사령실의 지시만 기다렸을 뿐 아무런 구호조치도 하지 않았고, 나중에 사령실에서 승객들을 대피 시키라는 지시를 받고 나서야 승객 몇 명과 함께 지상으로 대피하였다.


중앙로역의 역무원들 역시 한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역사 내부를 비추는 cctv는 물론 화재발생벨이 있었음에도 불이 난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다. 게다가 화재 사실을 알고난 이후에도 종합사령실에 1079호 열차에서 불이 났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중앙로역에서 화재가 발생했다고만 보고를 하여 혼란을 초래하였다.


가장 문제는 종합사령실이었다. 열차의 운행을 관리하고, 전력의 공급을 관리하고, 시스템을 제어 관리하며, 기계설비와 통신시스템까지 전부 관리하고 감독하는 종합사령실 역시 중앙로역을 cctv로 관찰할 수 있었다. 게다가 중앙로역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신고까지 받은 상태였기에 1080 열차가 중앙로 역으로 들어서기 전에 충분히 멈춰 세울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cctv가 까맣게 보일 정도의 연기 속에서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1080 열차가 중앙로역으로 들어서도록 허락했다. 게다가 빠르고 정확하게 승객들의 대피를 지시했어야 함에도 시간만 끌다가 골든타임을 놓쳐버렸다.


결국 제대로 상황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고 도망친 1079 기관사, 오로지 사령실의 지시만 기다리다 시간을 허비한 1080 기관사, 제대로 된 상황파악을 하지 못한 중앙로역의 역무원들, 마찬가지로 제대로 된 상황파악도 하지 못하고 별일 아닐 것이라고 판단한 사령실의 직원들이 함께 이 엄청난 참사를 빚어낸 것이다.


결국 약 3시간 동안의 화재로 인해 사망자 198명, 부상자 151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인명 피해가 발생하였다.


비록 이 사건으로 인해 열차 안의 재질을 모두 난연, 불연 소재로 바꾸었고, 열차의 문을 쉽게 수동으로 개폐할 수 있도록 만들었으며, 휘발유를 임의의 용기에 담아 판매하지 못하도록했지만 200여 명에 가까운 안타까운 생명들을 이것으로 달랠 수 있을까?


게다가 대구시장은 다음 날 바로 대구지하철공사 사장을 해임시키며 아직 시신 발굴도 이루어지지 않은 현장에 군인들을 투입시켜 열차와 역사 내를 물청소 시키는 만행을 저지른다. 게다가 지하철공사 역시 유가족에 대한 사과보다 먼저 탈출한 기관사들을 불러들여 대책회의를 하는 등 비상식적인 행태를 보인다.


그럼에도 대구시장은 당시 한나라당의 적극적인 실드를 통해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으며, 문제의 방화범을 포함한 기관사, 사령실 직원 등 8명 만이 구속되었으며 방화범 김대한을 제외한 인원들은 무척 가벼운 형량만을 받게 풀려났다.



끝으로 각종 커뮤니티에 소개되었던 희생자분들의 마지막 휴대전화 메시지들을 보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더 이상의 사족은 달지 않고 싶다.



"잘 잤어요. 여긴 날씨 맑음. 오늘 하루 보고 싶어도 쬐금만 참아요."

사고 발생 7분 전(오전 9시 46분) (사고 발생 9시 53분) 예비 신부 송혜정이 예비 신랑 이호용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지금 지하철인데 거의 사무실에 도착했어. 저녁밥 맛있게 준비해 놓을 테니깐 오늘 빨리 퇴근해요!"

사고 발생 4분 전(오전 9시 49분) 김인옥이 남편 이홍원에게 한 통화기록 중


"...좀 있으면 중앙로역을 지난다. 곧 갈게. 조금만 기다려."

사고 발생 3분 전(오전 9시 50분) 서동민이 선배 송두수에게 한 통화기록 중


"엄마가 여기 와도 못 들어와!"

오전 9시 54분(사고 발생 1분 후), 대학생 딸이 어머니 김귀순에게 한 통화기록 중


"여보, 여보! 불이 났는데 문이 안 열려요. 숨을 못 쉬겠어요. 살려줘요... 여보 사랑해요, 애들 보고 싶어!"

오전 10시 01분(사고 발생 8분 후) 김인옥과 남편의 통화기록 중


"역에서 불났다고 지금 바로 신고해. 당황하지 말고 침착해.알았지? 오빤 괜찮으니까."

오전 10시 02분(사고 발생 9분 후) 남자친구가 여자친구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오빠가 급한일이 생겨서 어디 좀 다녀와야 될 것 같아. 기다리지 말고 들어가. 알았지?사랑해"

오전 10시 11분(사고 발생 19분 후), 이성운이 여자친구에게


"만약 내가 내일 당장 없다면 넌 어떻게 할거야?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ㅎㅎ

10시 14분(사고 발생 21분 후), 고등학생 이미영이 여동생에게


"불이 났어. 나 먼저 하늘나라 간다. 할렐루야...아멘"

10시 22분(사고 발생 29분 후), 서부교회 집사 김창제가 부인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엄마 나간거죠? 난 괜찮으니까.. 미안해하지마요. 사랑해"

10시 43분(사고 발생 50분 후), 함께있던 아들 손준호가 탈출에 성공해 생존한 모친 박현자에게


"지현아 나 죽어가고 있어. 나를 위해 기도해줘."

기독교 모임 강사 허현이 강사 강지현에게


"아... 안 돼... 안 돼!"

오전 9시 58분(사고 발생 5분 후), 이현진이 어머니에게.


"엄마 지하철에 불이 났어."
"영아야, 정신 차려야 돼."
"엄마 숨을 못 쉬겠어."
"영아, 영아, 영아..."
"숨이 차서 더 이상 통화를 못하겠어. 엄마 그만 전화해."
"영아야, 제발 엄마 얼굴을 떠올려 봐."
"엄마 사랑해..."

장계순과 딸 이선영의 마지막 휴대전화 통화 내용


"어무이! 지하철에 불이 나 난리라예."
"뭐하노, 빨리 나온나."
"못 나갈 것 같아예. 저 죽지 싶어예. 어머이 애들 잘 좀 키워주이소."

아들 박정순이 노모 황점자에게. 이날 그는 직장을 얻으러 가는 중이었다.


"여보! 나 하늘나라로 먼저 올라가네. 건강하게 잘 지내"

남편 오승유가 아내 김민정에게


"열차에 불이 났다. 살아나갈 수 없을 것 같으니 꿋꿋하게 살아라."

어머니 최금자가 아들에게


"아빠 뜨거워 죽겠어요..살려주세요".

아들 정민회가 아버지에게


"미안하다. 가방이랑 신발 못 전하겠어.. 돈가스도 해주려고 했는데..미안.. 내딸아, 사랑한다."


"공부 열심히 하고 착하게 커야 해. 아빠가 미안해."


"오늘 아침에 화내고 나와서 미안해. 진심이 아니었어. 자기야 사랑해 영원히"


"오빠 없어도 밥 꼬박꼬박 챙겨 먹고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알겠냐. 그리고 기다리지마 나 안간다."


"너 정떨어진다ㅋㅋ 우리 그냥 헤어지자 ㅋㅋ"

죽음을 예감한 한 남성이 자신이 죽은 걸 연인이 알면 슬퍼할까봐 일부러 기분 나쁘게 이별 메시지를 보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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