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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콘텐츠연구소 Sep 21. 2022

우리 역사 속의 범죄자들.22.신창원

22.최장기간 탈옥수, 신창원

22.최장기간 탈옥수, 신창원


범죄자에게 대단하다는 말을 붙이는 건 우스운 일이다. 그러나 가끔은 정말 대단하다는 말이 나올 수 밖에 없는 범죄자들이 있는데, 신창원이 그런 인물이다. 물론 그의 범죄가 대단하다는 것은 아니니 오해하는 분은 없길 바란다.


1967년 전북 김제에서 4남 1녀 중 넷째로 태어난 신창원은 가난한 집에서 살았고, 어머니도 병으로 일찍 잃었다. 아버지는 부인을 잃은 슬픔 때문인지 자주 술을 마시고 자식들을 때렸으며, 자신의 아들과 새로 들어온 계모는 심하게 편애를 했고, 이에 신창원은 칼을 들고 난동을 부려 계모가 집을 나가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국민학교 5학년이던 어느 날, 학교에서 육성회비 등을 내지 않은 신창원에게 선생님이 "XX야, 돈 안가져 올거면 학교에 오지마. 꺼져!" 등의 욕설 퍼부었고, 이말을 들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있던 악마가 깨어나는 것을 느꼈다고 전해진다.


어쨌든 신창원은 이후, 점차 남의 밭이나 가게에서 먹을 것을 훔치거나 닭이나 수박 등을 서리하며 도둑질을 익히게 된다. 특히 달리기가 워낙 빨라서 동네 사람들이 잡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중학교에 들어간뒤 석달 만에 퇴학 당했을 정도로 문제가 많았던 신창원은 다시 좀도둑질을 하다 경찰서에 잡혔다가 훈방조치 되었는데, 이때 그의 아버지는 신창원을 완전한 범죄자의 길로 몰고간다. 이미 훈방된 신창원을 굳이 다시 경찰서로 끌고 가서 소년원에 넣어달라고 사정을 한 것이다. 결국 신창원은 소년원에 들어가게 되었고, 이후 완전히 범죄자의 길로 들어선 신창원은 감옥을 밥먹듯이 드나들기 시작했으며 한번 감옥에 다녀올 때마가 점점 대담한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다.


사진출처: 나무위키


특히 어릴 때부터 몸이 민첩하고 지는 것을 싫어해서 싸움을 잘했던 그는 복싱을 배우며 두려움이 더 사라져 지나가는 행인을 폭행하고 돈을 빼앗기도 했다. 그러다가 서울에 상경하여 고향 선후배 4명이 함께 슈퍼마켓과 금은방을 터는 강도짓을 벌이게 되었고, 1989년 3월 28일 주범인 김양훈이 문구점 주인을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다른 일당은 모두 4월 1일 체포가 되었고, 신창원은 총상을 입고도 탈주에 성공하지만 반 년 뒤에 결국 체포당하여 강도살인죄로 무기징역을 받아 경북북부교도소에 수감된다. 살인에 직접 가담은 하지 않았으나 방조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1994년 부산 교도소로 이감된 그는 1997년 1월 탈옥에 성공한다. 노역 작업 중 작은 실톱날 조각을 빼돌려 하루 20분씩 2달 동안 화잘실 쇠창살을 잘라내어 감방을 나와서는 외벽 환기통을 타고 1층으로 내려와 그 쇠창살로 담장 밑의 얼어붙은 땅을 파내어 감옥내 공사장으로 들어간 그는 거기서 밧줄을 주워 그것으로 공사장 펜스를 너머 탈옥했다고 전해진다. 이때 신창원은 좁은 틈을 빠져나가기 위해 약 15kg을 감량했다고 하니 참 노력이 가상하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약 500m 떨어진 화훼농가에서 옷을 훔쳐입은 신창원은 서울로 잠입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마침내 2년 4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4만여 km라는 엄청난 거리의 도주가 시작된다. 그는 도주 중에도 빈집에 들어가 돈을 훔쳐 생활했으며, 중간중간 차를 훔쳐 도주하기도 했다. 이 당시 경찰들과 마주쳐 따돌린 것만 6번이었고, 그를 잡기 위해 연 97만 명이라는 경찰병력이 동원되었으며 전국 6개 지방 경찰청에 전담 수사본부가 설치되기도 했다. 게다가 워낙 여러지역을 돌아다니며 범죄를 저지르고 빠져나갔기 때문에 그 지역의 경찰들이 줄줄이 옷을 벗는 사태도 일어났다.


마침내 신창원은 방송까지 타며 전국구 범죄자가 되었고, 현상금 또한 1천만원에서 5천만원이 넘어가며 당시 역사상 가장 높은 현상 수배범이 되었다. 당시 대치동 은마아파트(35평)가 1억 5천 만원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엄청난 금액이었던 것이다.


사진 출처: 더위키


이 때문에 경찰들의 말하기 부끄러운 추태도 발생했는데, 신창원 출몰에 대한 사전 정보를 입수했으면서도 단독으로 검거를 시도하다 실패를 한다거나, 신창원의 동거녀을 감시하던 형사가 그녀를 성폭행하여 구속되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1997년 7월 16일, 전남 순천의 한 아파트 104동 205호에 가스레인지 수리를 갔던 수리기사는 신창원을 목격하고는 경찰서에 신고를 하게 된다. 결국 2년 반 가까운 시간동안 지구 한바퀴의 거리를 도망치던 신창원은 그렇게 다시 검거가 되었다.


그리고 22년 6개월이라는 형량이 추가되었는데, 솔직히 조두순 같은 인간 쓰레기도 12년을 받았음에도 신창원이 2배에 가까운 형량을 받은 것은 경찰들의 복수가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물론 애초에 강도살인죄로 무기징역형 중이었기에 추가 형량이 얼마나 떨어지든 큰 상관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괘씸죄'가 적용되었다는 의혹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이후 앞서 다루었던 유영철, 강호순, 정남규 그 밖의 조두순, 정두영 같은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이 등장하면서 신창원은 조금이나마 동정의 여지가 생기게 된다. 우선 그는 목숨을 걸고 도주 중에도 도둑질, 강도질은 했어도 여성을 성폭행하거나 사람을 죽이거나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를 도와준 여성들이 많지만 그 여성들은 하나 같이 강압은 없었다고 그를 변호했다. 


특히나 그는 다른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처럼 자신의 범죄에 대해 부정하거나 자랑하지 않았다.



지금 나를 잡으려고 군대까지 동원하고 엄청난 돈을 쓰는데 나 같은 놈이 태어나지 않는 방법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너 착한 놈이다' 하고 머리 한 번만 쓸어주었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5학년 때 선생님이 'XX야 돈 안 가져왔는데 뭐 하러 학교 와, 빨리 꺼져' 하고 소리쳤는데 그 때부터 마음 속에 악마가 생겼다.

                                                                                                           - 신창원 907일의 고백 中


저 같은 범죄자가 다시는 없게, 사회와 가정에서 문제아들에게 사랑을 주십시오.

                                                                                                                   - 재검거 당시 한 말


안녕하세요? 편지 잘 받았습니다. 이틀 동안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만, 사형도 부족한 중죄를 지은 죄인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모두 자기 변명에 불과할 뿐이지요. 저는 그저 이곳에서 조용히 속죄하며 남은 생을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신창원 드림.

                   - 2020년 10월 8일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방송에서 신창원이 보낸 편지 내용



신창원이 워낙 신출귀몰했던 터라 범죄자인 신창원을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가 체포될 당시 입었던 이탈리아 브랜드 미쏘니의 화려한 티셔츠가 품절되는 사태도 일어났었다.


검거당시 신문기사 - 한겨레


이처럼 여러 면에서 신창원은 대단한 기록을 남긴 범죄자임에는 틀림없다.


그가 남겼던 말처럼 이러한 범죄자가 다시 태어나지 않도록 사회와 가정에서 이른바 문제아들을 선도할 수 있는 올바른 시스템이 갖추어지기를 소망해 본다. 무조건적인 훈방이나 솜방망이 처벌도 문제겠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엄벌에 처하는 것도 분명 올바른 일은 아니다.


소년범에 대한 여러 가지 이슈를 해결하는 가장 확실하고 깔끔한 방법은 지은 죄에 대한 더도 덜도 없는 형평성있는 처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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