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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콘텐츠연구소 Sep 23. 2022

우리 역사 속의 범죄자들.23.<그놈 목소리>

23.영구미제로 남은 <그놈 목소리>

23.영구미제로 남은 <그놈 목소리>


검경에 대한 불신은 물론 재판부의 선심 판결까지 일반 시민들에게 아쉬움을 주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강력사건 검거율은 98%를 넘어서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치안 국가이다.


코로나 발생 전인 2019년 자료이긴 하지만...



이정도면 충분히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나라가 아닌가 생각된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이른바 미제 사건들도 있다. 2019년 약 35년만에 진범이 잡힌 '이춘재 연쇄 살인 사건'이나 실종 사건에서 지금은 살인 사건이 되어버린 '대구 성서 초등학생 5명 살인 암매장(일명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 그리고 오늘 이야기 할 '이형호군 유괴 살인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래도 과학 기술과 그로 인한 수사기법이 발달하면서 분명 언젠가는 그 범인들은 꼭 잡힐 것이라 믿고 있다.


故이형호군. 사진제공=SBS - 동아일보 기사 재인용


1991년 강남구 압구정동에 살던 초등학교 3학년생 이형호군은 1월 29일 아파트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던 모습을 마지막으로 실종되었다. 그리고 그날 밤 11시 경, 한통의 전화가 걸려오는데, 30대 서울 말씨를 쓰던 그 남자는 "형호는 내가 데리고 있다. 이틀 뒤에 다시 전화할테니 현금 7천만원과 카폰이 달린 자동차를 준비해 놓고 있어라."는 지시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후로 44일 동안 약 60여 차례의 협박 전화를 하게 되는데, 범인은 매우 치밀했으며 사람의 심리 역시 잘 파악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이형호군의 보호자가 경찰에 신고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걸어 "저 서초 경찰서 형사입니다. 거기 있는 형사분 좀 바꿔주세요."라고 말을 했다. 다행히 현장에 있던 강남 경찰서의 형사가 이상함을 느끼고 어머니를 유도하여 "가정집에 무슨 형사가 있나요?"라고 대답해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이형호군의 아버지를 김포공항 주차장으로, 대한극장으로, 태극당 제과점으로 불러내며 끊임없이 경찰의 개입여부를 확인하였다. 그리고 결국 이형호군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88도로를 타고 가시다보면 서울교라고 다리가 있습니다. 거기 밑에 철제 박스가 있고 메모를 돌로 눌러놨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인 줄 알고 잘 진행해주십시오’라는 지시를 내리게 된다. 메모의 종착점은 양화대교 근처의 철제 박스였는데, 이때 경찰들이 박스의 위치를 혼동하는 바람에 범인이 돈을 가져갈 동안 형사들은 다른 곳을 헤맸다.


하지만 이형호군의 어머니는 범인이 은행 계좌에서 돈을 인출할 것에 대비, 한일은행에 입금되었던 돈을 상업은행으로 송금했다. 그리고 2월 19일 상계동 상업은행 지점에 한 남자가 나타나 돈을 빼려 했는데, 은행원은 단말기에서 사고신고 계좌라는 메시지를 확인한 뒤 당황하였고 남자는 황급하게 통장을 받아 도망친다. 그 지점에는 cctv도 없었고, 통장 개설 신청서와 메모지에는 지문조차 남지 않아 범인은 결국 추적하지 못했다.


3월 13일, 잠실 올림픽대로 뚝방 아래 배수구에서 한 소년의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그 소년이 바로 이형호군이었다. 부검결과 이형호군은 납치된 당일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범인은 이형호군을 납치하자마자 살해한 뒤에 뻔뻔하게도 44일 동안 부모와 경찰을 농락했던 것이다. 이후 경찰은 범인과 직접 접촉했던 은행원의 진술을 바탕으로 몽타주를 만들며 공개 수사로 사건을 전환하게 된다.


범인의 몽타주 - 부산일보


사실 이 사건은 범인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이처럼 몇번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형호군의 생모쪽 사촌 동생인 이상재(가명)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올랐는데 이를 놓치고 만다. 우선 협박 전화의 성문이 이상재와 일치했으며, 이형호의 친형까지 들먹이며 협박을 했으며, 이형호의 조부가 자산가임을 알고 있는 등 집안 사정에 훤했다. 게다가 초등학교 3학년 정도면 낯선 사람을 함부로 따라가지 않았을텐데 특별한 목격자 없이 납치가 되었다는 점도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이상재는 서울의 공중전화에서 협박전화가 걸려왔을 때 자신은 경상북도 경주에 투숙 중이었다는 알리바이를 제시하며 용의자에서 빠져나간다. 


하지만 성문은 DNA와 마찬가지로 개인에게 고유한 특성이기 때문에 그는 분명 사건과 관련이 있는 인물임에도 경찰은 유괴를 저지른 인물, 전화로 협박한 인물, 현금 인출을 시도한 인물을 모두 1명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풀어준 것이다.


이후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는 1992년, 2011년, 2019년 세 차례나 이 사건에 대해 다루며 범은은 최소 3명 이상으로 추정하였으며, 성문 분석을 통한 범인의 하관을 유추한 결과 범인은 입에서 턱까지의 길이가 짧고 좌우로 잘 발달된 얼굴을 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하지만 은행원이 직접 만난 현금 인출 시도를 한 남자는 입에서 턱까지의 길이가 긴 계란형의 얼굴이었다. 또한 범인은 '저희', '우리' 등의 단어를 자주 사용했고, 이형호군의 이우실의 동선을 자세히 알고 있었던 점으로 보아 이우실을 감시하는 인원도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어쨌든 이 사건의 범인은 아직도 잡히지 않았고, 2007년 설경구, 김남주 주연의 <그놈 목소리>라는 영화의 소재로 사용되기도 했다.


영화 <그놈 목소리> - CJ엔터테인먼트


필자 역시 이 사건의 범인은 결코 한 명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춘재 사건이 뒤늦게 해결되며 경찰들이 이 사건 역시 재수사 중이라고 하니 기대를 해본다. 물론 이춘재 사건처럼 범인의 DNA가 남았다던지 하지는 않아 어려움이 클 것이지만, 그래도 그동안 발전된 과학 수사 기법으로 무언가 더 확실한 증거를 획득하고 범인들까지 체포할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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