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임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미디어의 달콤함, 때론 노예

by 행복 한스푼

남편은 옷을 주문하고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입어보지도 않은 대쪽 같은 사람이다. 반품은 웬 말인가? 어림 반 푼어치 없는 소리지. 번거로움을 무척 싫어한 덕에 그 옷을 내가 물려받는다. 뭐 새 옷이니 물려받는다는 표현이 좀 웃기긴 하지만, 내 옷장으로 옮겨진다. 그렇게 그가 예전에 주문했던, 앞에 주머니가 달린 후드티를 오랜만에 꺼내 입었다.

“아니 실내라 춥지도 않은데, 옷을 몇 겹이나 껴입은 거야? 안 답답해?”

“뭐? 나 하나밖에 안 껴입었는데?”

남편에게 확인 사살이라도 하듯 후드티를 올려 생살을 비춘다. 두 눈이 마주치며 모든 강냉이를 다 드러내듯 웃음을 터뜨린다. 말의 의미를 되짚으며 민망함과 짜증이 뒤를 이어 솟아오른다.

“참나. 이 옷이 조금 도톰하긴 하지만, 옆구리살을 저격하는 거야?”

“풋하 그 옷, 밖에 나갈 땐 절대 입으면 안 되겠다. 아니, 나는 옷을 왜 그리 많이 껴입어서 쪼이나 했지.”

눈치 없는 저 입, 끝까지 자신이 느낀 사실을 알리느라 입을 바쁘게도 들썩인다. 순간, 장래 희망에 킬러가 되고 싶다고 적고 싶다. ‘이 쉐끼’를 죽여야 할지, 살려둬야 할지 고민에 빠지면서, 자꾸 어이가 없어 웃고 있는 나 자신이 싫다. 거울에 비친 귀여운 옆구리살의 존재를 살짝 눈치챘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대놓고 폭격을 당하다니 어지럽기까지 하다. 아, 내 빈혈.

뒹굴뒹굴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손가락만 까닥한 채,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한다. 갈팡질팡한 마음은 연이어 따라온다.

“잠시만, 이것만 보고 끝이야. 진짜 끝.”

“재밌는데? 하나만 더? 다음엔 꼭 스톱.”

비장하게 결단을 내리라며 중얼거린다. 입술과 머리와의 거리는 먼 편도 아닌데, 설득력 있게 그 뜻을 전달하지 못하나 보다. 핸드폰 속 영상들이 분주히 움직여 댄다.

‘야~ 이런 결말 신박한데?’

빠릿빠릿한 알고리즘 녀석, 추천 영상을 빈틈없이 제공한다. 그 친절 앞에 냉정하게 거절하기 어려워 핸드폰을 내려놓지 못한다. 답례로 감탄사를 띄워준다.

‘1분 남짓한 영상을 대체 몇 개나 본 거야?’

사골 우려내듯 유사한 패턴들. 그 비슷함에 거부감 없는 익숙함을 느껴나 보다. 짧지만 이야기의 짜임이 있고, 화면은 선명하면서도 빠르게 전환된다. 다양한 효과음에 몰입되고, 빠른 자막으로 넘어간 결말을 다시 돌려본다. 그 대가로 눈은 시뻘겋게 물든 가을 단풍잎을 연상시킨다. 손은 ‘좋아요’와 댓글을 달며 능동적인 시청자임을 알리는 의무를 수행했다.


‘핸드폰 없이 살 수 있을까?’

요리할 때는 레시피를, 설거지할 때는 음악을, 영어책을 펴며 아리송한 영어 단어를 검색하며 뜻과 발음을 재생한다. 배려 넘치게도 미국인, 영국인, 인도인, 오스트레일리아인까지 원하는 나라 사람을 방구석에 초대할 수 있다. 피아노를 연주하다 박자 체크를 위해 음원을 틀고, 동영상 강좌도 수강한다. 쇼핑과 결재도 손바닥 안에서 끝난다.

그럼에도 핸드폰은 이불 밖만큼이나 위험하다. 시력 저하는 물론 거북목의 시발점, 다이어트의 적군이다.

잘 활용하고 있다가도 샛길로 풍덩 빠진다. 잠깐 휴식은 긴 휴식으로 자리를 내어준다. 핸드폰 하나로도 심심할 틈이 없다. 제목에 낚여 쓸데없는 기사를 읽고 괜히 놀랬다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광고에 현혹되어 계획에도 없던 물건을 쇼핑한다. 아이쇼핑을 길게 한다고 눈치 줄 점원도 없으니 꼼꼼히 가격과 배송비, 구매 후기까지 살핀다. 여러 좋은 후기 속에 안 좋은 후기라도 발견하면 결정 직전까지 갔던 진도는 걸음을 멈춘다.

선택의 폭이 넓을 때는 어떤 걸 선택 해야 좋을지 손과 눈이 쉼 없이 움직이다가 줄곧 패닉 상태가 된다. 신중함이 우유부단함의 끝판왕으로 변절한다. 어느새 결재하려던 순간에 변덕을 부리고 다른 제품을 구매하겠다고 통보한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다.


꼼짝없이 몇 시간을 보냈다. 최소한의 에너지만을 썼음에도 무언가 더 피곤하다. 무기력해짐이 내려앉는다. 손가락도 멈춰서고 눈도 감긴다. 움직임은 더 줄어든다. 아기처럼 귀여웠던 옆구리살은 사춘기가 되었다고 몸집을 늘리며, 질풍 가도를 달릴 준비 중이다.

빨리 일어나야 한다. 옆구리 지적질을 생각한다. 불쏘시개처럼 마음에 불화살을 지피지만 ‘끄덕’ 없다.

‘이미 난, 틀렸어.’


#장래희망은킬러가되고싶다적었지

#귀여운옆구리살은성장하길원했지

#남편의팩트폭격에빈혈처럼어지러움

#멈출지모르는핸드폰재생

#선택의폭이넓어질수록결정장애로패닉상태

#눈치주지않은아이쇼핑의댓가

#나는후회하고있었네

#이미틀렸는지몰라

#다이어트그게뭐라고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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