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꾸 본전 생각하냐고요?

본전이 지켜낸 몸무게

by 행복 한스푼

‘요렇게 예쁘게 줄지어 서 있으면 나보고 어쩌란 말이야?’

음식들은 “저요. 저요. 저를 데려가 줍쇼.”라며 탱글탱글하면서도 때깔 고운 자태를 뽐낸다. 그들 앞에 나의 마음은 평화롭지 못하다. 전투에 임하기 전 비장한 선서를 읊는다. 다이어트하는 자로서 더부룩하고 기름진 음식을 최대한 멀리할 것이고, 그 자리를 풀떼기와 담백한 음식들로 채우겠노라고. 굳센 의지를 새기듯 접시를 품에 안는다.

‘식탐에 무릎 꿇지 않으리. 자존심을 내어주지 않으리. 대쪽 같은 절개를 담아 음식 선택에 신중 또 신중하리.’

음식 냄새가 버선발로 나와 코끝을 간질인다. 이에 식욕이 ‘안녕’하며 공손히 인사하고 수줍은 미소로 답한다. 종류별로 정돈된 다채로움에 눈은 이미 황홀한 상태다. 가족 계비로 식사하니 지금 당장 지출도 없다. 공짜로 먹는다는 생각은 기쁨을 배로 만든다.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 슬슬 본전을 뽑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본심이 튀어나오려 한다.

조금씩, 더는 양에 심사숙고한 탓인지 집게가 달달달 떨린다. 맛있는 아이는 다시 집으러 오겠다고 위치까지 기억하려 애쓴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쏘냐? ‘치킨 앞을 지나친다는 건 뷔페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어느덧 옹기종기 다양한 치킨 형제들이 사이좋게 자리를 잡는다. 첫 접시에 벌써 배가 불러오기 시작한다. 이건 분명 작전 실패다. “아, 벌써 배부른데?” 하면서 새로운 접시를 꺼내 들고 한 바퀴 더 순례한다. 언행 불일치의 연속.

분명 포만감이 ‘삐삑삐-이익’ 신호를 보내며 난리 부르스를 춰도, 본전이라는 명목으로 눈 감는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 불룩해지다 못해 미어터지기 직전인 배와 마주한다. 미련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하니 두 어깨가 땅까지 쳐진다. ‘많이 먹었다아이가. 그만해라.’라며 영화의 명대사까지 읊는다. 후회의 발걸음을 후식의 발걸음으로 대신한다. 접시에 망고, 사과 타르트와 말차 맛 아이스크림, 요거트에 간단한 토핑을 추가한다.

결국 집에 돌아와 차라리 가지 말았어야 했다고 결론짓는다. ‘적당히’가 안 되는 음식 앞에서 본전 생각은, 참 질기고도 질긴 악연이다.



아이들의 방학, 북적이지 않으면서 동물과 사파리를 구경할 수 있는 대전의 놀이 공원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규모가 작아 이동이 편하고 줄을 적게 기다리니 여유롭게 놀이기구를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곳을 대표하는 유명 빵집에 들르자는 의견도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두둥. 줄을 보며 눈을 뜨고 감기를 반복했다. 믿고 싶지 않았다. 밥도 아닌 빵을 위해 꼬리에 꼬리를 문 긴 줄. 내가 생각한 긴 줄은 10명에서 최대 30명 안팎이라 차이가 나도 너무 났다. 놀이 공원에서 신나게 움직였던 피로감이 폭삭 내려앉기 시작했다.

“우리 그냥 갈까? 줄이 길어도 너무 긴데? 이렇게까지...”

첫째의 굳건한 의지에 내 말은 한 글자씩 허공 속에 흩어진다. 약속해버린 내 발등을 사뿐히 찍을 뿐.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어야 했다. 역시나 한숨이 입 밖으로 줄지어 나왔다.


사람들을 살펴보니 빵 봉투를 가득 든 채 줄을 서고 있다. 이건 또 무슨 상황? 오기 전, 남편으로부터 임산부 프리패스 줄이 있다는 것, 케이크 줄이 따로 있다는 말만 흘려들었다. ‘이게 그 줄인가?’ 무작정 줄을 기다리며 처음 왔음을 티 내듯 두리번거렸다. 서둘러 인터넷을 검색해 보지만, 명확한 답을 얻지 못한다. 뒷 분께 여기는 부띠크 줄이며 휘낭쉬에, 마들렌, 무슨 무슨 빵과 케이크 등을 판매한다는 정보를 얻는다. 부띠크, 휘낭쉬에, 마들렌 생소한 단어들에 마음은 더 움츠러든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떡이는 혼신의 연기를 마치고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몸을 앞으로 돌린다.

‘부띠크는 뭐고 빵 이름들은 왜 이렇게 어려워? 앞 사람들과 비슷하게 행동하면 되겠지? 아이가 지켜보고 있어! 침착해.’

기다리는 내내 심폐소생술을 하듯 심호흡을 뱉어낸다. 이제 입구, 케이크와 롤케이크 등의 메뉴판을 사진에 담는다. 무슨 케이크를 주문할지 의견이 엇갈린다. 말차 맛을 먹고 싶은 나와 그러고 싶지 않은 아이의 기싸움. 벌써 앞사람은 쟁반을 들고 빵을 담기 시작했다. 나도 눈치껏 쟁반을 들며 가격표를 슬쩍 본다. 교황님 치즈 무슨 빵을 담으려다 아이에게 저지당하고, 말차 맛 롤케이크를 사려다 또 저지당한다. 딸기요거트 롤케이크를 고르는 대신 말차 맛 케이크를 사자고 타협한 뒤 몇 개의 빵을 주워 담는다.

계산대로 옮기자 아이는 말차 맛 케이크 대신, 딸기맛 시루 케이크를 고른다. 어이없음에 내 눈은 쭉 찢어지며 아이를 강렬히 내려본다. 아이는 당당하게도 오로라 반사를 시전한다. 어쩔 수 없이 과일 크레페를 추가 주문하고 몇 개의 빵을 계산했다. 정신 차리고 나니 말차 맛은 어떤 것도 사지 못했다. 이럴 수가. 크레페는 매장에서 진동벨 순서로 기다려 받고, 시루는 밖으로 나가 픽업하는 줄을 기다려 받았다. 힘들고 복잡하고 정신없는 빵집 방문이 그제야 종료되었다.


양손 가득 무겁게, 결국 한번 오기 어렵다는 사실과 줄서기 힘들다는 이유로 11만원이 넘는 금액을 결재했다. 작은 빵들은 차에서 금방 사라졌고, 집에 도착해 딸기 맛 시루 케이크와 과일 크레페를 동시에 맛보았다. 처음에는 과일 양에 놀라고 환상적인 맛이라며 극찬했지만, 점점 남편과 나는 느끼하다며 부르르 떨었다. 역시 욕심은 언제나 문제. ‘하나만 살걸.’ 절반도 못 먹은 케이크 상자로 냉장고가 가득 찼다. 다음날 급격히 증감된 몸무게는 뽀~~너스.

그놈의 본전이 뭐라고, 몸무게는 연일 플러스 행진이다. 입술로 열심히 다이어트를 한다고 외쳐대지만, 입은 연일 먹고 싶은 것 앞에 주체를 못 한다. 본전 생각은 결국 몸무게의 본전도 지켜냈다는 슬픈 소식.

‘대체, 몸무게는 언제쯤 덜어낼까?’


#다이어트그게뭐라고

#자꾸본전을생각하며몸집을키웁니다만

#저지당한말차덕후

#힘들고복잡하고정신없었던유명빵집방문기

#나의인내는길지않아요

#결국몸무게도본전을지켰다지

#배부르지만음식순례는계속되었어

#버선발로나온음식냄새에식탐은공손히안녕하며수줍은미소를

#욕심으로가득찬냉장고케이크상자

#긴줄을보며놀이공원에서신나게놀았던피로감은내어깨로

#많이먹었다아이가그만묵으라

#이젠본전생각하고싶지않아요뒤늦은다짐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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