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라는 미각에 종소리가 울리네

여행 가서까지 다이어트 생각해야 하나요?

by 행복 한스푼

여행을 간다는 건 낯섦을 견뎌내는 것. 일부러 익숙지 않은 상황들을 만들고 그 상황을 위해 기꺼이 돈을 쓰는, 그러고선 내린 결론은 “집만 한 데가 없어. 역시 집이야!”다.


여행을 가자고 먼저 제안하지 않을뿐더러, 가자는 여행도 반대한다. 꼭 가야 하는 여행은 언제나 뒷짐 진다. 1인칭 나의 여행이 아닌, 3인칭 의무라는 자아를 내세워 남의 여행을 지켜보듯 관망한다. 동쪽 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을 살랑이게 내맡기듯, 시키면 시키는 데로 먹으라면 먹고, 잠깐 쉬어가자고 하면 쉰다. 의견을 내기보다 의견에 따른다. 별 불만은 없다.


다만, 보기와 다르게 잠자는 것에 예민하고, 배설 중에 크게 배설해야 할 것에 고통을 겪는다. 평소엔 늦잠을 자지 않는 편이지만 여행지에선 아침에 눈을 뜨지 못한다. 피곤이라는 녀석은 나에게 살포시 어깨동무한다. 눈 감을 수 있는 모든 시간에 눈꺼풀 셔터를 내린다. 여행 절반은 암흑이다.


그런 자신을 알기에 데모라도 하듯 무박 여행을 주장하지만, 여행을 주관하는 자는 생각보다 완고하다. 모든 준비를 다 했으니 브리핑하는 수준이다. 억울하지만, “알았어.”라고 정해진 답을 할 뿐.


금기숙 작가 기증전시회

대중교통을 이용한 여행, 버스 타고 서울에 가서 지하철로 이동한다. 불편함과 변수를 몸으로 느끼고, 가족과 전우애를 다지자는 명분으로 시작된 여행. 3월에 있을 해외여행 예행 연습이라는 숨은 과제도 포함되어 있다. 해외여행도 최대한 미루고 싶었지만 여행을 주관하는 자는 확고하다 못해 일정을 바꿀 아량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나만 옆에서 “싫어. 너~무 싫다니까.” 백만 번을 외치나, 그 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방구석을 떠돈다.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먹을지 안 설레하는 건 나밖에 없다.


인간은 안 변한다고 하지만, 마음을 고쳐먹는 수밖에. 싫다고 코만 씩씩 불고 있다면, 내 코 평수만 넓어지겠지. 금기숙 작가님의 와이어를 이용한 전시회를 가기로 제안하고 체크인 전에 미리 짐을 맡길 수 있는지를 확인한다. 난 이런 사람이 아닌데, 능동적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도 아이들 덕. 첫째는 자발적으로 맛집 리스트까지 만든다. 날 닮지 않음은 분명하다.


아이들이 말했던 스케이트 타기, 동대문 클릭커(컴퓨터 자판처럼 누르면 딸각 소리가 나거나 불빛이 나는 것 위에 꾸미기까지 하는 것) 사기도 채택됐고, 마지막으로 남편은 연극을 예매했다. 복잡하면서 신경 쓰이는 일, 왜 여행을 못 가서 안달인지, 이해 불가능한 1인은 최종적으로 동선과 시간을 체크 한다.

먹는 재미가 빠진 여행은 앙금 없는 찐빵, 슈크림이 없는 붕어빵. 매끼 걱정에서 자유 해지며, 요리와 설거지에서의 해방, 부엌으로부터의 독립 만세는 축제처럼 다가와 폭죽을 터트린다. “저기요.” 말하면 남이 차려주는 밥상을 반갑게 만날 수 있다. 어쩜 이렇게 예쁘면서 새로운 맛일까? 혀라는 미각에 아름다운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첫째가 고르고 둘째가 최고라던 베트남 쌀국수, 멜론 소다와 명란 파스타가 신선했던 일본식 돈가스집, 간판 보고 즉흥적으로 들어갔으나 망했던 낙지 보쌈집, 남편이 픽한 육전 국밥, 입으로 향하는 음식 앞에 흐뭇함을 발산하는 자가 되어간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만큼 손 뻗으면 닿을 곳의 간식들. 냄새로 선빵맞고, 자르르하고 영롱하면서 고혹하기까지 한 자태에, 기꺼이 카드님을 뽑아 든다. 야무지게 호두과자와 깨찰빵을 한입 베어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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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네 명인데, 다섯 개 이상을 사야 50% 할인한다니 그 개수를 채운 아이스크림, 1개 먹고 나서 얼른 나머지 하나에 눈독을 들인다. 절반의 아이스크림을 비워내다 여행의 주관하는 자에게 빼앗긴다.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지 말라는 일침과 함께. 다이어트도 잠시 여행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고 읊음에, 여행을 주관하는 자는 어처구니없어한다.


포만감에 예민해서 잠을 자지 못한다던 자는 스르륵 눈을 감는다. 첫째의 발길 짓에 몇 번이고 깬다. 태권도를 배웠던 걸 왜 나에게 써먹는지. 퀸사이즈 침대 모서리까지 옮겨가나 아이의 발길 짓은 포기를 모른다. 꿈에서까지 무언가에 쫓겨 도망가다 침대 끝에 대롱대롱 위태위태하게 잤다. 역시 피곤하다.


여행 절반을 눈꺼풀 셔터를 내렸던 자는 잘못 환승하거나 반대편 노선을 타지 않기 위해 재차 확인한다. 인원 모두가 자리에 앉을 때까지 눈꺼풀을 올리고 아이들이 잘 있는지를 지켜본다. 앉아도 곧, 환승이거나 내려야 하니, 눈꺼풀을 닫지 못하는 숙명이다.



익숙함에 벗어나 불편함을 견뎌내는 것, 화려하고 복잡한 서울의 반짝거림을 잠시 느껴보는 것, 아이들의 컨디션을 중간중간 체크하며 세웠던 계획을 때론 내려놓는 법도 배운다. 뜻대로 안 됨을 받아들일 줄 알라는 참된 깨우침을 얻는다.

1박 2일이었지만, 일주일 동안 다녀온 것처럼 후유증이 깊게 남는다. 며칠째 맥아리를 못 추스른다. 역시, 여행의 결론은 ‘집 떠나면 개고생’.


#낯섦과불편함을잘견디고싶어요

#여행에낯가리는자

#여행을주관하는자에게는알았어라는말밖에

#전시회며짐보관을능동적으로처리하는기염을토함나그런사람아니지만

#서울의화려함과복잡함에잠시계획을내려놓으며

#눈의셔터를내리고싶었네

#1박2일여행후5일간후유증앓는여자

#역시집이최고였어

#금기숙작가전시회를보며

#연극내일은내일에게

#다이어트도여행을떠난다지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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