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고 미루며 느끼는 감정 조각

감정을 잘 다루고 싶지만

by 행복 한스푼

느긋함을 좋아한다. 시간이 닥쳐 불에 콩 구워 먹듯 하는 일 처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 순발력과 스피드 따윈 겸비하지 못한다는 걸 소상히도 잘 알고 있기에. 조금이라도 부지런을 떨며 목표한 바의 절반 정도는 성취해 내는 편이다.


브런치 독서 챌린지에서 받은 <가녀장의 시대>, 주인공 슬아는 마감날 아침은커녕 점심까지도 별생각이 없다가, 해 질 무렵까지도 태평을 떤다. 결국 저녁밥을 먹고 나서야 고통을 느끼며 마감을 지켜내려는 캐릭터. 그때 지나가던 아빠가 한마디 한다.

“글이 잘 안 써지면 잠깐 집 밖에 나가 산책하라고. 바람도 좀 쐬고, 나무도 좀 보고, 손으로 풀도 좀 만져보고, 걸으면서 심호흡도 하고. 그렇게 차분히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책상 앞에 돌아오면, 딱 그런 생각이 든다고. 씨바, 그냥 아까 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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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줄이 단축되는 느낌을 경험하지만, 닥쳐서라도 완성해내는 주인공이 멋있어 보였달까?

숨겨진 능력을 폭발적으로 발휘한다는 건, 재능일까? 성격일까? 축복일까?’


브런치 마감을 힘겹게 끝내고 나면, 항상 “플리스(제발)”하는 마음이 생긴다. 미리미리 써놓고, 원고의 거친 이음을 수없이 매만져 완성도를 높이자고. 그러고선 절대 실행으로 옮기지 않는 모순. 마감한 날은 마감의 자유를, 다음날은 좀 더 자유를, 일주일의 절반 이상을 마감에 대한 보상으로 사용한다.


간신히 몇 줄을 써나가다가 마감일이 되어서야 엄청난 스트레스와 두근거림을 안고, 일의 가속도를 올린다. 마감을 지키라는 압박과 눈치 주는 건 없다. 다만, 안 한다는 것의 찜찜함을 이겨내려고 끄적거린 습작의 글을 올린다. 발행하고 나면 홀가분함은 3초, 엉성한 문장력과 짜임새에 가슴 밑바닥부터 무겁게 차오르는 한숨들이 뱉어진다. 부족함과의 대면은 꾸준히 쓰고 있는다는 대견함보다 달갑지 않은 부끄러움이 꺼내어진다.



다이어트 일상을 적으며 감량에 성공하겠다던, 처음의 의지는 꽃 구경을 가듯이 사방팔방 나들이 갔다. 그런 사실을 아는 주변인을 만나는 것조차 부담스럽다. 그럴수록 달달한 것을 찾아 나서며 순간의 달콤함을 수여한다. 현실의 비극을 원망하면서 때론 포기를 통해 안도한다. 나의 존재를 나약한 의지를 가진 사람으로 내리꽂아 버리고, 어느 순간 그런 것이 사람의 특성이 아니겠냐는 이상한 논리로 전개된다. 나는 그런 사람일 뿐이라고.


여자 개그우먼이 인터넷 검색어 상위에 링크되었다. 다이어트에 성공했고 긴 시간을 잘 유지해 왔는데, 요요가 온 상태로 TV 화면에 출연했다. 그녀는 “살을 빼고 10년 정도 유지하면 아무리 먹어도 예전으로 안 돌아간다는데, 바로 돌아간다.” 한마디로 씁쓸한 상황을 웃음으로 흩뿌릴 줄 알았다.

특별한 심경 변화는 없다. 다만 맛있는 걸 먹고 살자 싶었다. 너무 참았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초코케이크에 빠졌고, 라면은 7봉지도 먹는다.” 열심을 내었던 노력은 입 터짐으로 돌아왔고, 그동안의 수고들을 빠른 속도로 되돌려 놓았다.

역시 다이어트는 그런 거라고, 매일 방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그러면서도 요요로 돌아온 자신을 자책하기보단, 먹고 싶은 걸 먹겠다는 답변에, 선뜻 말하지 못하는 진실을 대신한 것 같아 묘한 통쾌함을 느꼈다.


사람들은 나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꾸준함을 발휘하지 못하는 모습에 주눅이 든다. 건강을 위한 다이어트가 아니라, 남을 의식하는 것에 시작된 일. 결국 그런 시선은 꾸준함을 위한 동기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걸려 넘어지게 만드는 돌부리가 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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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지도 않으면서, 잘하고 싶은 마음만이 앞섰는지도 모른다. 그걸 <아주 작은 시작의 힘>이라는 책에서는 ‘게으른 완벽주의자’라고 표현하였다. 그렇게까지 완벽함을 추구하는 스타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고 수긍한다. 멈추고 있는 지금, 시작하기가 두려운 건 내가 원하는 만큼의 기대를 얻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 완벽한 결과를 내지 못할 바에는 시작하는 것이 무슨 의미냐는, 핑계라는 얇은 막 뒤에 살며시 숨고 있었는지도.


쓴다는 행위를 계속한다. 부족해도 나아가려는 행위. 결과는 어차피 내 몫을 떠났다. 나는 감정 조각들을 모으고, 달래고 나아갈 뿐이다. 그 조각들은 또 다른 나를 만들어간다.


다이어트도 그러한 과정이 아닐까? 짧은 순간에 힘겹게 쌓아 올린 시간을 손쉽게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 그래도 땀 흘림의 동작을 통해 조금은 자신감 있고 건강한 나를 만나자는 약속. 다시 시작해 본다.

아이들의 방학도 오늘이 마지막 날, 이젠 댈 핑계도 없겠지?

“내일부터 다이어트도 분주한 개학에 한발을 떼어내길!”


#다이어트그게뭐라고

#나는의지약한사람이라는사실을매번받아들여야할때

#게으른완벽주의자일지도

#미루고미루면마음이무거워지며파도를타지

#매번발행을하는이유는찜찜함을이겨내려고

#핑계라는얇은막뒤에숨어

#먹고싶을땐먹으려고요라는통쾌한한마디가멋졌어

#플리스하는마음제발미리쓰고퇴고하는삶을꿈꿔매번꿈으로끝나지만

#가녀장의시대이슬아작가님의독서챌린지선물

#감정조각들을달래고어르며글을씁니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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