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화해

감정, 그 사람의 몫

by 행복 한스푼

여름만큼 아이스크림을 찾는다. 집 앞 편의점에선 콘 아이스크림을 1개 가격에 2개를 준다. 이에 부응하기 위해 넉넉히 8개를 구매한다. 5개 이상을 구매해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뾰로통한 상황에 기분을 풀거나 화해하고 싶을 때, 100이면 100 닫힌 마음을 열고 미소가 배달된다.

식기세척기에 설거지를 돌리고 밥순이로부터 임무를 벗어났을 때, 설레는 마음으로 냉동고를 연다. 해방감이 만들어낸 자유를 담아 아이스크림 하나를 쟁취한다. 발을 꼼지락거리며 소파에 기대 먹는 아이스크림은 사소하지만, 충분히 행복함을 선물한다.


남편은 자주 아이스크림을 채워놓는다. 그 여파로 옆구리, 앞구리, 뒷구리까지 둥글둥글해졌다. 뱃살에 대한 막대한 지분이 그에게서 나온 듯하다. 없으면 안 먹겠지만 있으니 자꾸 확인차 문을 열어본다.

과일을 깎듯 껍질을 까니 맨 위의 뚜껑이 벗겨진다. 초콜릿이 별 모양처럼 가운데에서 원 테두리까지 둘러있다. 휘리릭 뿌려진 땅콩은 이쁨을 더 끌어올린다. 한입 깨물면, 아이스크림의 차가우면서 달콤함이 혀에 내려앉고 땅콩의 고소함이 아작아작 씹힌다. 초코 맛이 사라지면 바닐라 맛이 고개를 내밀고 파삭한 과자 맛 콘과 함께 갈아 먹는다. 종이 껍질을 한 바퀴 까고 나면 더 작아진 콘을 맞이한다. 천천히 속도를 조절할 때다. 결국 맨 아래 껍질을 모조리 탈출시켰을 땐, 콘 맨 아래를 살짝 깨물어 구멍을 만든다. 갈색 카라멜을 야무지게 쪽쪽 빨아먹는다. 마지막으로 손가락 크기만 하게 남은, 살짝 눅눅해진 콘을 오물오물 씹는다.


자꾸 바지들이 작아진다. 요술처럼 늘어난 건 내 몸이겠지만, 바지마저도 배고픈지 똥꼬를 먹는다. 이런 사태를 받아들이고, 아이스크림과 절교를 선언한다. 너를 이렇게 받아들였던 내 지난날을 후회하며, 큰 소리로 “나 이제 너 따위, 쳐다보지도 않을 거야.” 당당히 외친다. 옆에서 남편은 “앗싸, 나 지금 먹어야지.” 약을 올린다. 껍질을 까고 있는 남편을 보자 나의 마음은 1분도 지나지 않아 흔들린다. 눈은 이미 아이스크림에 고정됐고, 둥그렇게 벗겨지고 있는 껍질처럼 마음도 돌아서고 있다. 아니라고 취소하고 싶다.

“나, 한 입만, 딱 한 입만. 찐~자 조금만 먹을게.” 촉촉한 눈빛을 발사해본다. 남편은 “사람이 잘 참을 줄 알아야지. 내가 다 생각해서 그런 거야.” 역시, 말이나 못 하면.


그 앞에서는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 곧이곧대로 믿어버리는 융통성 없는 사람. 했던 말을 주워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땐 이미 늦었다. 결국 남편 혀의 속도를 따라가며 나의 상상의 혀도 움직인다. 그를 보며 대리 만족한다고 생각하며 머릿속 아이스크림의 맛을 생각해낸다. 단맛, 고소한 맛, 차가운 맛이 혀끝에 닿아온다. 달큼한 향을 느끼며 살며시 실눈을 떴을 때, 그 맛이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비굴하지만, “한 입만. 응?” 애절함을 더 담아본다. “안된다는 거 알지? 그 한입이 무서운 거야!” 눈이 자동으로 부라려지며 강아지님, 망아지님, 송아지님을 담아 쏘아 보낸다. 살기를 느꼈는지 그는 자리를 옮긴다.


먹을 것 하나에 자존심이 내려앉고, 우주가 무너진다. 그게 뭐라고. 억울함과 삐침을 담아 문건을 탕탕 놓는다. 그렇다고 살이 빠지는 것도 아닐 텐데.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에도 웃긴 서러운 감정을 올려놓는다. 1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고, 1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감정은 땅굴을 파고 지하를 헤맨다.

남편과 또 부딪친다. 글을 읽고 숙제하기 바빴던 요즘, 남편은 못마땅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돈 되는 것도 아닌 일에 목숨 거는 것처럼 보였나? 글 쓴다는 걸 인정하는 듯 보이면서 때론 아닌 것도 같다. 눈치가 보여 글 모임이나 줌 수업을 들을 땐 기분을 살피고 음식과 집안일에 힘쓴다. 나의 눈치는 그렇게 자격지심을 담은 애씀으로 표현된다.

당장 준비 해야 할 해외여행에 대해 태평하다며 불평을 듣는다. 빠지는 수업에 숙제를 굳이 왜 제출하는지, 새롭게 시작하는 일까지 욕을 먹는다. 완벽하지 않아 불안하고 답답함은 모조리 나의 탓이 된다.

어떤 부분이 부족하고 불만인지, 내가 무엇을 구체적으로 알아봐 줄까?라고 물어보면 모르겠단다. 나와 상의하고 토의하며 하나하나 준비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불만. 속이 터지고 있는 건 나도 마찬가지. 일정 짜고, 결재하고, 모든 걸 지켜봐야 하는 상황 자체가 피곤하다. 당신이 결정한 일, 좀 더 준비해 주면 안 돼? 라고 말하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아낸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핸드폰으로 찾고 있으면 “그걸 왜 찾아? 내가 찾아봤던 건데.” 그는 분명 나와 싸우기 위해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불편한 공기는 아이들에게도 전염된다. 미묘한 감정 다툼은 눈빛으로 행동으로 표현되어 진다. 그런 감정 속에 매몰되기 싫어 자리를 피한다. 그렇다고 딱히 갈 곳도 없다. 이런 감정으론 누군가를 만나는 건 유쾌하지 않으니까. 쓰레기를 들고 분리수거장으로 향한다. 올라오는 감정이 쓰레기와 버려지길, 다듬어지길 원하지만, 쉽게 버려지거나 분리되지 않는다. 다만 지끈지끈 아픈 머리에 산소를 주입하며 숨을 고른다.

나에겐 시간이 필요하다. 내 감정을 받아들일 시간, 원망의 감정을 받아들일 시간, 나도 그도 그럴 수 있다는 걸 이해하려는 시간 말이다.


그렇게 우린 치열하게 싸운다. 내가 당신이 될 수 없고, 당신이 내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이 개똥같은 상황도 모두 이해되는 건 아니다. 간신히 참아내지만, 불만은 쌓인다.

애쓰려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언제가부터 알게 되었다. 감정은 그 사람의 몫이므로, 나는 나의 감정을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선 아이스크림 하나를 입에 문다. 달콤함으로 내 감정에게 화해를 요청한다. 너무 자책하지 말자고. 속상한 마음 풀라고. 배려받지 못한 것 같아 속상함이 올라온 것이 아니냐며. 닳아 없어지는 아이스크림의 크기처럼 나의 미움도 작아져 간다. 그렇게 나와 조용히 화해해 본다.


#눈치싸움

#아이스크림의철학

#감정그사람의몫일뿐

#치열한싸움

#별것도아닌일에자꾸화가나

#자격지심은애씀으로답했네

#자책하지말라고속상한마음풀라고

#배려받지못한것같아속상했냐고나를안는다

#조용한화해

#다이어트그게뭐라고

#감정일기

#해외가려다감정털린이야기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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