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다른 코너와 높다란 벽
무언가에 쫓겨 도망가지만, 막다른 코너가 나타나고 높다란 벽에 가로막힌다. 그곳엔 책상과 의자가 있다. 자리에 앉자 시험지 한 장이 내려와 책상 한가운데에 놓인다. 같은 줄을 몇 번이고 읽어 보지만, 무슨 뜻인지 몰라 고개를 흔든다. 시간은 흘러가고 뭐라도 써야 하지만, 이름밖엔 쓸 수 없다.
나를 지켜보는 어떤 시선이 느껴지자 연필을 더 꼭 쥔다. 그 손에 땀이 축축하게 베어 주르륵 흘러내릴 것만 같다. 속상하고 답답한 마음에 눈을 질금 감았다 뜨자, 눈물이 흘러나온다. 시험지를 걷는다는 말에 놀라 허우적거리다 부르르 떨며 깨어난다. 어쩐지, 이 꿈은 낯설지 않다. 요즘 느끼는 감정들과 닮았다.
노트북을 켜기 전, 숨부터 깊숙하게 내뱉었다. 전원을 향하는 손가락은 버튼에 힘겹게 다다른다. ‘글을 잘 써나갈 수 있을까?’ 복잡한 마음이 불쑥, 몇 줄을 힘겹게 적어내다 마음에 들지 않아 까만 흔적을 지운다. 뭔가 부족한 것 같아 고쳐보지만 완성되지 않는다. 멀거니 지켜보다 지쳐만 간다.
화면에 뭐라도 채워 넣어야 하는데, 조급해지려는 마음으로 물들어 하얗던 종이가 노랗게 들뜬다. 어쩌자고, 떠밀어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지. 고통스러운 감정이 올라온다.
글을 쓴다는 건 나에게 무슨 의미일까? 언젠가는 멋진 글을 쓸 것이라는 부푼 희망으로 다가왔다가, 모난 감정들을 배설하고 위로했다가, 힘내보자고 응원하며 안아주었다가, 이젠 초라함을 나열하는 시간이 되었다. 불필요한 단어, 어색한 꾸밈, 앞뒤가 안 맞는 전개.
‘아, 이것밖에 안 돼? 대체, 생각하고 쓰는 거야?’ 못된 마음은 자라나 할퀴며 상처를 만들고 지나갔다.
다이어트도 비슷했다.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려 다짐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하루 이틀 ‘찔끔’ 실천하다 결국 예민해져서 폭발했다. 입 안은 벌써 음식으로 가득 찼고, 마음은 먹구름이 낀 날씨처럼 흐려졌다. 다이어트보다 먹는 이야기로 가득 찬 글들, 반성하는 마음도 무뎌진 상태. 한심하다.
글을 쓸 때도, 다이어트를 할 때도, 다시 하면 된다고 하지만 그 시작이 버겁다. 그렇다고 포기하는 마음으로 놓아버리지도 못하면서, 마음엔 무언가가 알 수 없는 것들로 얹혀진다.
거울을 보니, 퉁퉁한 나와 마주한다. 옷매무새를 고쳐보지만, 표정은 더 심통났다. 잘 단련된 사람들의 몸을 생각하며, 나의 볼과 옆구리, 배와 허벅지에 꾸지람하는 시선이 머무른다. 마치 좋은 글을 읽고선 엉성한 나의 글이 못 견디게 싫은 것처럼, 나를 향한 미움의 화살을 조준하고 아프게 쏘아댄다.
나는 다이어트를 잘하고 싶은 게 아니라, 글을 잘 쓰고 싶은 게 아니라, ‘제대로 해내고 있는 나’를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코너로 몰아붙이고 높다란 벽을 스스로 만들어내면서. 이 궁지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응원하다가 도저히 넘을 수 없다는 강박에 휩싸인다. 어쩌면 이러한 상황보다 이렇게 상황을 해석하는 삐뚤어진 시선이 무섭다.
마음이 세차게 흔들릴 때 그 문제와 마주치기보다 도망을 선택했다. 몸은 피곤하다는 신호를 만들며 잠의 세계로 이끌었다. 눈을 감고 있으면, 적어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를 마주하지 않아도 됐다.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와 불안, 무서움에서 벗어난 것 같았다. 그렇지만 감정은 꿈속에서까지 재현되며 자유롭지 못했다. 벼랑까지 내몰리며 악랄하게 괴롭힘을 당했다. 깬다.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잠시 들었다가, 곧 사라진다.
그럼에도 글을 쓰기 위해, 감정을 정리해나가기 위해 자리에 앉는다. 한 줄을 쓰려고 발버둥 덴다. 복합적인 감정과 불안함과도 마주한다. 마감 기한이 있는 글을 완주해 내자고 속삭인다. 몇 줄이라도 다듬어 보자고 일으킨다.
완벽한 건 없다는 걸 알면서, 나의 마음을 채울 수 없다는 걸 알면서. 한 번만 나를 믿고 나가자며 시선을 바닥에서 앞으로 향한다. 수많은 고침과 고민 속에, 나의 생각 문장은 자라나고 있다.
두려움과 불안의 자리에서 머뭇거려도 씨앗은 싹을 틔운다. 앙상하지만 가지를 만든다. 위를 향해 더디지만 나아간다. 연두색의 몽우리를 만들려고, 잠시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흔들림 속에 주춤하는 과정도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되리.’
#글쓰는과정처럼다이어트도대차게흔들려
#무서우면서두렵다는감정이글을쓰며나타났다
#잠으로이끄는세계
#때론도망가고싶은도피
#한줄을써보려발버둥덴다
#더디더라도한발을내딛어야하는이유
#성장통에힘들어하는나
#글을쓰는의미
#더디지만연두빛몽우리를만들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