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멋없는 정직을 버리기로 했다

웅크렸던 만큼, 활짝 펼쳐질 그 순간을 위해

by 행복 한스푼

허어억, 숨이 까딱까딱 막혀 오는데?

무언의 감정들이 올라왔고 이것들은 점차 숨통을 압박하며 조여왔다. 글쓰기 과제를 붙들면서 무기력한 나를 다그쳤고 책상에 앉혀 놓았지만, 집중력은 금세 흐트러져 오래가지 못했다. 요령만 피우는 게으른 창작자가 되어 에세이 글의 주어만 바꾸고 있었다.

왜일까?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신호가 밑바닥에서 꾸물거리다가 수면 위로 둥둥 떠 오르는 이유. 절반은 써놓은 글이라 다듬기만 하면 될 거라 했는데 진척이 없다. 촤라락 전개를 펼치지만, 구성이 유치하다. 탁 막힌 벽을 그어대며 쓰는 것 같은 이 감정은?


난 나를 믿지 못했다.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인지 수없이 의심했다. 차라리 글을 쓸땐, 실수로라도 잘 써버릴지 모른다고, 거짓 자뻑이라끌어와야했다. 최고의 글을 제조하고 있으니까, 완성되는 과정이 너무 신나고 설레어 손끝마저 떨려온다고 긍정적인 상상으로 뇌를 속였어야 했다.

나의 양심은 멋없는 정직을 선택했다. 더 나아가 가장 못 쓰고 있는 날 중의 최악의 날이라고 설정하며 극도의 불안에 시달렸다. 그래서 자주 겁이 났다. 숙제를 덮고 미디어에 노출되며 잠시 잊고 싶지만, 가슴을 두드리는 심박수가 높아졌다. 잠을 자면서도 가슴에 돌덩이를 올려놓은 사람이 되어 벌떡벌떡 놀라 일어났다 다시 웅크렸다.


작년, 처음 소설을 습작했을 땐 주인공을 제멋대로 만들고, 코믹하게 이야기를 설정하며 신났었다. 물론 통념 문장을 벗어나도록, 개연성 있는 문장들로 써가야 한다는 걸 혹독히 합평받았다. 다만, 재밌게 읽었다는 동인 몇 분과 작가가 즐겁게 쓰면 독자들도 안다는 말에, 소설은 계속 써보고 싶은 장르가 되었다. 그렇게 생각만 했다.

유료 강의를 결재하고 억지로라도 쓸 기회를 만들었다. 내가 잘 쓸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식탐과 음식 이야기. 다이어트 연재 글 속에서 자주 등장했던 소재였다. 이를 각색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마술적 리얼리즘의 마르케스에 대해 배우고 있으니, 꿈을 통해 반려 도마뱀이 요리하는 부분을 추가했다. 그럼에도 전개가 부실하고 빈약했다. 단면적 사건들을 나열하고 있다는 생각에 수정하다 멈춰 섰다. 뭔가 문젠데? 내 글들이 예뻐 보일 리 없다. 삐뚤어진 잣대만큼 더 삐딱하고, 미워졌다.


이 감정은 어반 드로잉을 할 때도 불쑥 나타났다. 언젠가 내가 그린 표지를 책으로 만들고 싶어 수강한 강좌. 펜으로 선을 긋고, 물감의 농도를 조절하며 색을 섞어나갈 때는 다채로운 빛깔에 신기하고 재밌었다. 그러다 녹색 계열의 나무를 색칠하거나 그리는 과정에서 난이도가 올라갔다.

색을 섞어 원하는 색깔 톤을 만드는 과정은 물감의 비율에 따라, 물의 양의 따라 차이가 나타났다. 녹색 계열에 레드 계열의 브라운을 섞을 때와 옐로우 계열의 브라운을 섞을 때는 값이 달라졌다. 한쪽은 녹색이 사라지며 검정에 가까워졌고, 한쪽은 톤 다운된 올리브색 쪽으로 변했다. 녹색도 색을 섞으며 노란빛이 많이 나는 연두빛, 올리브 색, 연한 녹색, 찐 그린으로 만들어졌다.

수학 공식처럼 미술에도 여러 방법이 존재했고, 빛을 받는 곳과 어두운 곳의 차이를 분명히 나타내줘야 그림이 살았다. 그 과정을 터득해가는 과정 중에 계절을 반영하듯 벚꽃 나무를 그렸다. 스케치북에 여러 벚꽃 나무를 심지만 촌스러운 붉은 계열의 색으로 표현된다. 줄기나 중간 가지를 넣어주는 것도, 여리여리한 분홍을 몽글몽글 조화롭게 표현하기 어렵다. 처음에 살짝씩 남겨주었던 흰 여백은 명암을 주다가 점점 자리를 잃었다.

욕심을 놓지 못하는 자는 붓도 놓지 못했다. 붓칠은 점점 과해진다. 그럴수록 점점 봄과 멀어지는 벚꽃을 마주한다. 내 도화지에선 붓 자국이 촌스럽게 돌아다녔다. 점점 수습이 불가하다. 같은 나무라도 푸른 나무들을 그리는 것과 또 다른 장르 같다. 흰 여백은 나무 사이의 하늘이라는 공간도 표현되어야 한다. 여리여리한 핑크나 빨간색의 농도로 힘을 빼며 나아가야 한다. 물 농도를 더해 색을 풀어 보지만 실패한다. 중간 가지들의 자연스런 표현을 시도하다 뚝뚝 끊긴다. 밑으로 갈수록 살짝 굵어지지만 굴곡이 있는 나무 표면을 살려주어야 한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낑낑대며 붓을 놓지 못한다.

그래, 하다 보면 되겠지. 몇 번 더 그려보면 나아지겠지. 근데, 아니네 왜? 대체 왜? 나아지지 않는 건데? 감정은 불만을 쏟으며 휘청한다.


둘째 아이가 지나가다 멈추며 나의 스케치북을 바라봤다.

“엄마, 진짜 잘했는데? 대단해.”

“엄만, 진짜 못하는 것 같은데. 나아질 기미가 안 보여!”

“미술 선생님이 그랬는데, 뭐든 잘할 수 있다는 마음이 중요하데!”

“음? 그렇지. 쓸 데 있는 자신감, 그 자신감이 실종한 상태야.”

그러고 보면, 나는 막히는 순간들을 못 견디게 힘들어했다. 불편한 감정에 쉽게 휘둘렸다. 별것 아니라고 쓱 넘겨도 되는데, 쓰나미급 큰 파도로 만들어 진저리를 치며 온몸으로 받아냈다.

달달 볶으며 나를 괴롭혔던 과제는 제출했다. 열심히 하지 않은 건 사실, 반성도 해본다. 이것을 통해 나는 무엇을 배웠는가? 불편한 감정들, 돋보기처럼 확대 재생산할 때 긍정적인 생각으로 맞대응해야 한다고.

‘처음부터 잘 썼다면 이러고 있겠니?’ 부정적인 감정을 서술하는 법을 배웠다. 나열하고 쪼개고, 받아들이고, 후회하고, 여러 감정들을 흡수했다. 그리고 버리듯 훅 던져버릴 것이다. 먼 훗날 홈런을 칠 나를 그리며.

누군가의 강력한 응원보다 내면의 단단한 나를 깨우는 시간을 갖는다.

웅크렸던 만큼, 활짝 펼쳐질 나의 모든 순간을 위해.


#숨이막혀오는순간을견디기가버거웠다

#숙제를열심히하지않은자는반성을하며돌아본다

#어반드로잉벚꽃그리며미친녀자가되어갔다

#어반드로잉색의비율과물의농도로색깔표현하기

#열심을하지못했지만부정적인감정을배설한다

#불편한감정을견뎌내지못하고힘들게받아들였던주간

#내면의단단한나를응원하며

#감정일기

#멋없는정직은던져버리고유쾌한내가되기

#때론긍정으로맞대응해야해

#언젠가크게칠홈런날을생각하며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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