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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직장인 밤에는 대학원생

대학원생도 동아리 가입할 수 있어요.

by 이십일

가을 학기 시작 무렵, 대학원 입학 1년여 만에 개강총회를 처음 가보았다. 거기서 알게 된 동기가 학교의 중앙동아리에 속해 있는 걸 보고 나도 들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마침 모집기간이었고 신청과 회비를 내니 순식간에 가입 절차가 이루어졌다. 면접 보는 거 아닌가 싶은 마음에 면접 보자고 하면 가지 않아야겠다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공지방과 잡담방에 초대되었다.


활동을 열심히 하진 않았다. 확실히 시간이 별로 없긴 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들의 주된 활동시간은 저녁 6시 이후인데 그때 나는 회사 일을 끝내느라 정신이 없고, 회사를 끝내면 대학원 가기에 정신이 없었다. 나중엔 나 스스로를 회비를 내고 학부생 구경하러 들어갔다고 표현했다. 그들이 구경거리라는 것은 아니지만, 동아리에 소속된 채 정보를 듣고 보는 것은 나름 유용했다. 대학원에는 잘 공지가 되지 않는 소박한 이야기도 알 수 있는 게 장점이라면 장점이었다.


그렇게 용기가 안나 염탐만 하던 어느 날, 우리 집 근처에서 번개가 열렸다. 갈까 말까 200번은 더 고민하다가 나가보았는데, 앳되다 못해 아직 고등학생 티를 벗지 못한 친구들이 있었다. 순식간에 내가 여기 있을 자리가 아님을 느껴버렸다. 그 즉시 돗자리가 가시방석처럼 느껴졌다. 물론 모두가 친절했지만 혼자 부적응하여 그런 것이다.


그날따라 또 왜 이렇게 덥고 벌레가 많은지, 어색함에 눈앞에 있는 떡볶이나 먹어야겠다 싶어 떡볶이로 손이 향할 때, 떡볶이 국물 위로 죽어있는 날파리가 보였다. 난 프로니까,, 난 프로니까,, 되뇌며 티 나지 않게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회사에서도 짓지 않던 사회생활 미소를 이 자리에서 다 지으며 한 2시간쯤 지나니 불편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사라졌다.


동아리 친구들의 고민거리는 학교 생활과 연애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들의 고민거리를 가만히 듣고 있는 것도 나름 재밌었다. 학교 다닐 때만 알 수 있는 동아리 속 가십, 누구랑 누구랑 사귄다더라, MT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더라, 중간고사 어땠다더라 등등 (귀엽다)

이야기하는 주제가 직장인과 크게 다르진 않지만, 환경이 다르니 풋풋해서 귀엽다고 느낀 것 같다.


한편으로는 주제가 이렇게 치우쳐진걸 보니 새로운 인연이 있을까 해서 이 번개에 나왔을 텐데, 뜬금없이 현실에 찌든 대학원생만 있어서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싶기도 했다. 물론 나도 약간의 기대를 안 했다면 거짓말. 그러니 우리 서로 원망하지 말자.


간간이 들리는 졸업 후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어떤 회사가 좋다더라, 어떤 회사는 이런 게 있다더라 등 오가는 대화 속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들의 상상과 약간의 기대를 굳이 어지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음껏 상상하시오 하하하


이 번개를 마지막으로 나는 동아리 활동에 더 이상 참가하지 않고 있다. 가볼까 싶은 것은 있었지만 시간이 안되거나 선뜻 신청을 못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다 때가 있다는 말은 모두 맞진 않지만 절반은 맞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이건 평생 모르고 싶었는데 말이다.


시간이 될 때 대학원생만, 졸업생만 있는 동아리를 찾아봐야겠다.

잠깐, 그럼 동아리가 맞을까? 동호회 아니고?


외향성을 더 키우는 것도 고려해 보자.

즐거운 삶을 위해서.


그래도 번개를 나간 건 후회하고 싶지 않다.

안 가봤으면 알지도 못했을 거니까.



글을 다 쓰고 나니 깨달았다. 난 뼛속까지 한국인이라는 것을, 나이/시기에 따라 할 것과 안 할 것을 구분하고 있다니 반성해야겠다. 그러니 프로 동아리 활동러가 되기 위해 노력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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