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십일 Nov 17. 2024

낮에는 직장인 밤에는 대학원생

이중자아 대학원생의 고연전

학교 축제를 다녀왔었다. 가기 전엔 내가 여길 가는 게 맞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다녀오고 나선 마음속에서 나잇값 좀 해라 라는 생각을 누르고 다녀온 보람이 있었다. 리프레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열심히 뛰어본 건 몇 년 전 갔던 클럽에서 마지막이었던 것 같은데 갱신했다.


난 축제 마지막 날 진행되는 축구를 보러 갔었다.

정신이 없어서 갈 생각을 못했던 터라 빨간색 들어간 옷은 준비를 못했는데, 난 직장인 대학원생 아니던가!? 옷장 속 회사의 빨간 후드집업이 보였고 3초의 고민 후 바로 챙겼다. 대충 TPO만 맞추면 되는 거 아닌가?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경기장을 가는 3호선 속에는 정말 빨간 물결과 파란 물결이 잔뜩 섞여 있었다. 이때의 광경을 보고 회사 후드를 챙겨 온 나를 칭찬했다. 이것마저 없었음 사람 취급도 못 받았겠다 싶었다.


그렇게 고양 경기장에 도착하니 새삼 이 축제의 스케일을 실감하며, 전반은 연대 쪽에서 보기로 해 연대 쪽 응원석으로 향했다. 내심 파란색 안에 빨간색이 보이면 웃기겠지 싶어 자리를 잡고 가방 속에서 회사 후드를 슬쩍 꺼내보았다.


근데 꺼내둔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앞에서 관리하는 총학생회의 일원이 뛰어오더니 빨간색 보이지 않도록 가방에 다 넣어달라 요청을 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아, 이렇게 관리를 하니까 여기가 다 파란색이었구나. 큰일 날 뻔했네 하는 마음에 후드는 쏙 넣어두고 열심히 경기장을 둘러보았다. 마치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곳에 있었던 느낌이랄까.


내 개인적인 감상은 축구는 백그라운드에서 펼쳐지는 운동 일뿐, 모든 이는 응원단이 다음 응원가를 무엇을 부를지에 주목하고 있었던 것 같다. 왜냐면 노래에 맞춰 율동과 더블링을 쳐야 하기 때문이다.


가사를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냥 몇 번 따라 부르고 양옆에서 하는 율동을 따라 하다 보면 어떻게든지 진행은 되었다. 수지 영상으로 유명해진 사랑 한다 연세 ~ 하나만 잘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전반이 끝나고 후반엔 고대 쪽에서 보았는데,

정말 웃기게도 제 집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했다.

응원가를 잘 모르는 건 똑같았지만, 마음이 편해서 그런 건지 가사가 더 잘 들렸다 착각인가?


서로를 놀리는 응원가는 어찌나 많던지, 이것도 재밌는 포인트였다. 고등학교 때 1,2등을 앞다투어하던 친구들이 한 곳에 모여 연세 치킨, 연세 치킨하고 있으니 그 괴리감 때문에 더 재밌었던 것 같다.

축제 이후 한동안 귀에 맴돌았던 게 꿇어라 연세여 워어 ~ 였다. 진짜 중독성 있다..


그렇게 축구 경기가 끝나고 폐막제를 보러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가면서 의도치 않게 살기를 느꼈는데, 전반을 연대에서 봐서 받게 된 응원풍선을 가방 정리하다가 꺼내버린 것이다. 파란색이 나타나자마자 대각선 뒤에서 나지막이 서로 읊조리는 소리는 등에서 식은땀을 흘리게 했다.


“뭐야 연대생이야?”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카드지갑 속 챙겨 온 학생증을 꺼내서 대각선 뒤에서 잘 볼 수 있는 각도로 들고 보길 바라며 가방 정리를 하는 척했다.

이 오묘한 긴장감이 웃기기도 하면서 땀이 나는 나 자신도 웃기고 빨리 버스에서 내리고 싶었다.

하지만 교통체증이 내 마음을 알리 없었다.


경기장에서 부른 응원가는 콘서트에서 가수를 보며 잔잔하게 따라 불렀던 거라면, 폐막제에서 부르는 응원가는 거의 클럽에서 신나서 소리 지르는 것과 같았다. 이 날이 태어나서 모르는 사람과 어깨동무를 가장 많이 한 날이다. 어깨동무를 하면 무조건 아래위로 몸을 흔들었어야 하는데, 다음 날 허리가 당겨도 너무 당겨서 어이가 없었다.


폐막제도 끝나면 이제 다 집에 갈 줄 알았는데, 흥의 민족은 그러지 않았다. 응원단도 가고 무대에 불도 꺼지는 와중에 어디선가 스피커를 끌고 오는 학생이 있었다. 노래를 주최에서 켜주지 않으니 알아서 켜고 따라 부르며 놀더라, 몇 번은 껴서 함께 놀았지만 체력도 텐션도 더 이상 따라갈 수 없던 대학원생은 한발 물러나 소프트콘 하나 먹으며 구경했다.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보니, 왜 어른들이 청춘이다, 좋을 때다 하는지 알아버린 것만 같았다. 물론 아직 나도 좋을 때지만, 좋을 때라는 말이 그 순간에 너무 확 와닿아서 이해가 되었다. 모르는 사람과 어깨동무하고 함께 노래 부르며 웃을 수 있다는 게 청춘이 아니고서야 할 수 있는 일이었을까?


뇌리에 딱 박혀버려서,

그 신나고 뜨겁던 안암의 거리를 잊지 못할 것 같다.

앞으로도 그렇게 뜨겁게 살 수 있길 바라본다.

작가의 이전글 낮에는 직장인 밤에는 대학원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