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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직장인 밤에는 대학원생

중국에서 교생실습 시작!

by 이십일

결국 교생실습을 왔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더니, 작년부터 바랬던 해외 교생 실습을 떠나게 되었고,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중국의 한 한국학교의 교무실에 앉아있다.

지난 주말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정말 바빴다. 회사가 끝나면 정신없이 대학원에 가고, 밀려오는 과제를 열심히 쳐내고, 발표과제는 가장 먼저 할 사람에 손들며 PPT를 열심히 찍어냈다.


교생실습을 간다고 교수님들께 말씀드리며, 해외로 가기 때문에 아예 수업 수강이 어렵다고 재차 강조까지 하며 4주간 부재임을 알렸고, 회사에서도 하던 일을 열심히 마무리하고, 떠나기 전 도움이라도 될까 간단한 업무들을 부랴부랴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연차와 휴가 도합 20개를 태워 가는 교생실습이기에, 여행 정보 찾는 것도 게을리하면 안 됐다.

아니 그래도 되었지만, 내 마음이 용납하지 않았다. 몸이 부서져도 놀고 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토요일 비행기를 타고 중국에 도착했고, 중국어 간판을 보면서 점점 실감하기 시작했다.

아 중국이구나, 한 달간 여기 사는구나. 정말 말도 안 되는구나 싶었고, 중국어 공부 좀 할걸 하고 시작된 후회는 호텔 체크인에서부터였다.

passport를 모르는 리셉션 직원이 문제였을까, 중국어로 passport를 모르는 내가 문제였을까.

직원과 내 사이에 마가 뜨고, 우린 둘 다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의 번역기를 꺼냈다.

눈치로나마 알아들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을 아예 못 알아들으니 그것도 불가능했다.


어찌어찌 번역기로 체크인만을 성공하고, 부수적인 안내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직원과 나는 그냥 부딪히며 알아가기로 암묵적 합의를 했다. 말을 해도 못 알아듣고, 파파고도 네이티브의 중국어 음성으로는 해석을 잘못해 주더라고.


캐리어는 잠가둔 채로 가방만 내려두고 냄새의 근원지를 찾기 시작했다. 근원지가 있다면 찾아서 없애고 싶었다. 비행기에서도, 공항에서도, 공항버스에서도, 호텔에서도 한국에서 맡지 못한 쿰쿰한 듯한 냄새가 계속 낫다. 버스에선 되게 심해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냄새를 표현하자면, 여름이 와서 겨우내 압축팩에 넣어두었던 홑이불을 꺼냈더니 나는 냄새 같은 느낌이었다. 결코 좋은 냄새는 아니었다. 이 냄새를 해결하지 못하면, 짐을 도저히 풀 수 없을 것 같았다. 집 앞 쇼핑센터가 10시까지 운영하길래 열심히 돌아다녀서 방향제를 찾았고,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문을 닫아버려서 실제로 짐은 일요일에 풀 수 있었다.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한 채, 저녁을 먹으러 숙소 앞 훠궈 집에 갔다. 뭔가 정리하는 분위기였지만, 혼자 들어온 1인 손님을 내치진 않았고, 주문을 하는데 훠궈 맛을 고르지 않고 주문해 버려서, 탕은 무슨 맛으로 할 건지에 대해 6-7명 되는 중국인이 나를 둘러싸고 중국어로만 말해줬다.

슬펐다. tomato를 모르는 여러분과 중국어로 토마토도 모르는 나.


그 와중에도 친절하긴 정말 친절했다. 악명(?) 높은 중국인의 행동 때문에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일단 3일 간 내가 경험한 중국인은 모두 친절했다.


훠궈를 먹고 있는데, 직원이 나에게 오며 무언갈 열심히 설명했다. 못 알아들었지만, 알아들은 척 고개를 끄덕였는데, 문 닫을 시간이 되어서 직원들이 밥을 옆에서 먹겠다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직원들이 밥을 다 먹고, 정리를 하더니 주방에 불이 꺼졌다. 난 아직 먹고 있었지만, 불이 꺼져서 더 급하게 와르르 먹었다. 그 분위기에서 남은 걸 열심히 먹은 내가 대단했다.


먹은 둥 만둥 중국에서의 첫끼가 지나고, 냄새의 근원을 찾지 못한 호텔 방에서 최소한의 짐만 꺼내고 잠에 들었고, 일찌감치 일어나서 주변을 한 바퀴 산책하며 돌아보고, 봐두었던 방향제까지 사 와서 짐을 풀었다. 좀 살 것 같았다. 꽤 비싼 방향제였는데, 돈 값 하는 것 같아서 만족스러웠다.


일요일엔 산책을 한 10km 정도 한 것 같다. 인근을 걸어서 돌아다니며, 달리기 할만한 곳을 보고, 중국의 길거리 음식을 구경만 했다. 아직 먹을 엄두가 잘 나지 않아서, 보기에 노멀 한 음식만 몇 개 먹어서 저녁을 대체하고, 사들고 온 딸기는 약간 덤터기를 씐 것 같았지만, 말도 못 하는 나에게 팔아줘서 고맙다는 생각으로 몇 개 씻어 먹었다. 생각보다 맛있었다.


일요일은 좀 돌아다니다가 교생 첫 출근을 앞두고 가방을 챙기며 일찍 잠에 들었다.


대망의 오늘, 학교 스쿨버스를 타기 위해 연락하던 선생님께서 호텔로 와주셨다. 선생님의 에스코트 하에 스쿨버스 타는 위치를 파악하고, 함께 타고 학교로 향했다. 스쿨버스에 같이 탄 아이들을 보면서 약간의 설렘과 힐링을 한 것 같다. 어딜 가나 그렇듯 학교는 싱그러웠다. 학교라는 건물이 주는 느낌이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 온 교생 선생님으로 아이들 뿐만 아니라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이야기가 많았다고 전해 들었다. 선생님들은 대체 왜 어떻게 여길 오게 되었는지 궁금해하셨고, 아이들은 그저 교생 선생님이 궁금했나 보다. 처음 보는 나에게도 모두가 인사를 건네고 멀리서부터 주목하며 걸어온다.


담당 선생님을 따라 들어간 첫 수업 참관에서 아주 까불거리는 친구 덕분에 조금 시끄러웠지만, 분위기가 금방 풀렸고, 아이들은 귀엽게 나에게 말을 걸었다.


"교생 선생님한테 박수 ~~!", "선생님 너무 이뻐요." 이런 말이 부끄러우면서도 좋았다.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순수한 호응과 칭찬이어서 그러려나? 웃기고도 좋았다. 왜 학교 선생님들은 천천히 늙는 건지 단 몇 시간 만에도 느낄 수 있었다. 로봇 같이 무미건조한 나에게도 웃으면서 수줍은 질문을 건네는 아이들은 이쁘고 귀여웠다.

화장하지 말아라, 너희가 제일 이쁜 나이다. 이런 말을 왜 하는 건지 정말 깨달아버린 것 같다.


내일부터는 나의 담당 학급도 생기고, 상담도 하고 조회/종례도 하게 될 거라고 하셨다.

친화력을 끌어모아 얼른 친해져야지 싶은 마음이다.

내가 큰 도움이 되진 않겠지만, 나에게도 너희에게도 재밌는 추억이라도 되길 바란다.

교육봉사 때도 느꼈지만, 생각보다 발육이 좋지만, 대화를 몇 마디 나누면 어린이임을 깨닫는다.

궁금한 게 참 유치해, 그래서 부러운 존재인 아이들.


한 아이는 학생 부장 선생님께 내일 화장을 좀 해도 될지 질문을 하러 왔었다.

비공식적으로는 내일 안 잡으시는 거 아니냐는 너스레를 떨며 선생님께 질문을 했고, 난 앞에 앉아서 웃음을 숨긴 채 그 대화를 듣고 있었다. 학생 부장 선생님은 포스 있게 한마디 하셨다.


"나 내일 시력이 좀 안 좋을 예정이야"


난 앞자리에 앉아, 선생님께 저런 질문을 하러도 오는구나 하며 놀라워했고, 순수한 그 질문에 웃음이 나서 앞자리에 앉아서 아이가 간 후 연신 키득대며, 선생님께 말을 드렸다.

"굉장히 귀여운 질문을 받으셨네요"

선생님도 이런 질문은 한국에 있는 학교에선 없는 일이라며, 웃으셨다.

매일 이런 새로운 일이 얼마나 많으실까,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한 달간 많이 경험해야지.


그리고 급식도 꽤나 괜찮았다. 양배추를 찍어먹는 소스를 밥 위에 부어버렸지만, 맛은 있었다.

오랜만에 먹는 급식이어서 그런지 식판에 밥 먹으니 귀엽고 재밌었다.


정신없이 오전이 지나가고, 학교에 계신 수많은 선생님들이 나를 응원해 주고, 내일은 또 과학 축제이기 때문에 더 여유롭고 즐거울 테니 걱정 말라며 말해주셨다.


과학 축제 부스에서 고기를 판다던데, 맛있을지 궁금하다.

내일은 더 즐겁고 뿌듯한 하루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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