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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직장인 밤에는 대학원생

학생도 선생님도 즐거운 학교 행사

by 이십일

교생 출근 3일 차, 오늘도 수많은 안녕하세요와 함께한다. 새삼 선생님들은 하루에 안녕하세요를 얼마나 많이 말하고 들을까 싶었다. 여긴 초중고가 모두 함께 있는 국제학교이기에 나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아이들의 연령대도 꽤 다양하고 각자 나이에 맞는 목소리로 발랄하게 인사한다. 아침에 좀 피곤하더라도, 밝게 인사를 건네는 아이들을 보면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다. 단전에서 끌어올린 미소를 지으며 안녕! 하고 반갑게 인사한다.


과학 축제가 시작되어서 오늘은 수업이 없는 날이었다. 그만큼 아이들도 들떴고 선생님도 들떴다.

운이 좋게 교무실에 자리가 남아 교무실에서 생활을 하는데, 교무실에서 오가는 선생님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내심 어렸을 때 했던 생각들이 맞는 것 같아서 웃기면서도 역시 다 똑같은 사람이구나 싶기도 하다.


나를 웃음 짓게 한 선생님의 한마디 "축제 내일도 하면 좋겠다"


축제로 인해 아이들은 운동장에 모여있고, 선생님들도 구경을 하러 나갔다. 아이들은 각양각색 부스를 운영하고 초등학생 아이들도 중고등학생 아이들이 운영하는 부스를 구경하러 모두 운동장으로 뛰어나왔다.


거의 1년 치 어린이를 교생실습에서 다 보는 것 같았다. 신발주머니 같은 가방을 들고 언니오빠가 가이드해주는 체험을 하고 선물을 받아 차곡차곡 가방에 넣고, 간식도 맛있게 먹으며 뛰어다니고, 잔디밭에 모여 앉아 서로 떠드는 모습 자체가 힐링이었다. 바람만 조금 덜 불었다면 아주 좋았을 텐데, 바람이 많이 불어 아쉬웠다.


나도 열심히 부스마다 돌아다니며 눈도장을 찍었다. 이제 3일 된 교생선생님이라 아이들은 낯을 가리면서도 붕어빵 부스에선 붕어빵을 고기꼬치 부스에선 고기꼬치를 먹어보라며 줬다. 고기꼬치 부스에선 정말 캠핑용품을 다 들고 와서 구워주는데 저걸 다 어디서 구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가 고기꼬치가 생각보다 맛있어서 더 놀랬다. 바나나우유도 만들어서 주고, 소고기를 구워주는 부스도 있었다.

과학 문제를 맞히면 난이도마다 선물이 다른 부스도 있었는데, 다행히 문제는 다 맞혔고, 어른된 도리로 선물은 받지 않았다. 하하. 내가 담당하는 학급은 디퓨저 부스를 운영했는데, 여긴 선생님들에게 인기 폭발이었다. 나도 하나 만들어서 숙소에 가져다 두었다.

운동장을 열심히 돌아다니며 부스를 구경하니 진이 빠졌다. 물론 아이들은 하나도 지쳐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바람이 많이 부는데도 쌩쌩하게 부스를 운영하고 뛰어다녔다. 정말 대단해...

한 바퀴 구경을 하고 교무실에 돌아오니 몸이 노곤노곤했다. 창문 너머로는 아직도 지치지 않은 시끌한 소리가 들렸다.


구경을 마치신 선생님들끼리 교무실에서 삼삼오오 모여 앉아 간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솔직히 무슨 이야기를 하실지 궁금했다. 직장인의 대화는 취미, 운동, 연애, 주식 등등이었기에, 무슨 주제로 대화를 하실까, 대부분이 기혼자이니 결혼, 자식, 중국이니까 사는 이야기를 많이 하시지 않을까 싶었는데 놀랍게도 학교의 아이들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하셨다.


딱 이 간식을 먹는 시간 한정이 아니더라도 선생님들의 일상에 아이들이 있기에, 점심을 먹을 때도, 교무실에서 간단한 대화를 나눌 때도, 산책할 때도 언제나 아이들의 이야기를 했고, 아이들이 사고 친 것이나 잘한 것, 아이들 사이의 일에 대해서 대화를 많이 나누시고, 선생님들은 모든 이야기의 중심이 학교 아이들 이야기였다. 아이들에게 애정이 없는 선생님이 없는 것. 그저 직업일 수도 있을 법한데, 내 자식 이야기보다 학교 학생 이야기가 가장 많은 것, 모든 선생님이 정말 따뜻한 마음으로 언급되는 아이 한 명 한 명을 생각하고 걱정했다. 그리고 언제나 긍정적인 리액션과 피드백. 내가 가장 닮고 싶은 부분이었다. 아이가 한마디를 하면 3마디의 긍정적인 칭찬과 피드백, 어떻게 그렇게 말을 할 수 있는 거지 싶었다. 나랑은 다른 한국어를 구사하는 느낌.

선생님들의 여러 모습에서 가장 본받고 싶은 모습이었다. 한 달 동안 선생님들의 화법을 잘 관찰해 보고 연습해 봐야지.


행사가 끝나고 다음 날, 고3 수업에 참관을 들어갔다. 첫날보단 웃으면서 자기소개를 했다.

"선생님은 혼자 와서 친구도 없고 중국어도 못해, 그러니 길 가다 만나면 반갑게 인사해 줘."


수업 중간중간 아이들이 잡담하면서 "교생선생님한테 물어보자 교생선생님한테 물어보자" 하는 걸 들었는데,
나도 수줍고 애들도 수줍어서 아직 무슨 질문인지 듣지 못했다. 떠나기 전에 들을 수 있길.


어서 친해지자. 이 삭막한 정적 더 이상 못 견딜 것 같아.


+ 초등학생은 너무 귀엽고, 중학생은 은근히 귀엽고, 고등학생은 그렇게 귀엽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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