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면 클수록 조용해지는 마법
교생 실습이 2주 차에 접어들었다. 순식간에 지난주가 지나갔기에, 앞으로 남은 3주도 눈 깜빡하면 지나가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교무실에 앉아있다 보면 내재된 직장인의 본능으로 선생님들께 도움이 되고 싶어 뭐라도 하고 싶지만, 나에게 줄 수 없는 권한과 무언갈 맡기기 위해서 드는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상당하기에 학교 규모가 작아 1인 다역을 하는 선생님들께 요청드리기는 꽤 어려운 일이다.
대충 몸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은 도와드리고 이동 수업일 때 쉬는 시간에 공 차러 간 아이들에게 "빨리 들어와 2분 남았어." 소리 쳐주는 것만 열심히 하고 있다. 왜 그렇게 선생님들이 뛰지 말라고 했는지 이제 좀 이해가 가는 게 웃기기도 하고 뛰어오는 아이들을 보면 걱정이 되는 내 마음도 웃겼다. 나도 지하철 놓치기 싫어서 미친 듯이 뛰어가는데 내가 여기서 뛰지 말라고 핀잔을 주고 있다니 어불성설이다.
처음 참관을 들어갔던 수업은 8학년, 중학교 2학년이었다. 여긴 초중고가 함께 있기에 1~12 학년으로 나타낸다. 중2답게 교실은 시끌 시끌했고, 선생님이 앞에 있으나 없으나 서로만 아는 이야기를 하고 키득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처음엔 이 북새통 속에서 선생님과의 대화는 대화대로 이어지는 게 신기했고, 서로의 이야기도 안 들릴 법 한데 대화를 하는 게 신기했다. 시끌 시끌한 반 답게 나에게도 관심이 많았고, 수업 중간중간 나를 쳐다보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얘네 수업을 듣고 있긴 한 걸까,,라는 생각이 들쯤 수업이 끝났고, 아이들이 우르르 정보 교실을 떠나니 혼이 쏙 빠졌다. 난 별다른 걸 하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아이들을 관찰하기만 했는데 말이다. 수업을 한 선생님은 얼마나 힘이 들었을지 감히 상상을 못 하겠다.
선생님과 정보 교실에 남아 다음 수업을 위한 컴퓨터 세팅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수업은 항상 교사의 마음대로 되지 않고, 이 반은 꽤나 시끄러운 편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오히려 이렇게 시끄러운 반이 나을 수도 있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날은 이해가 안 갔지만 바로 다음 날 담당 학급이 된 11학년의 조회를 하러 들어가서 바로 이해했다.
처음 본 반이 시끄러웠기에 이 반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갔다가 큰 코를 다쳤다. 고요했다. 자고 있는 아이도 있었다. "안녕 얘들아"라고 해도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원래 담임 선생님이 왜 그렇게 교실 문을 열면서 힘차게 "하이루 ~!" 하고 외치는 것인지 단박에 깨달아버렸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분위기를 타파할 수 없을 것 같았다.
1분이 1시간 같았고, 아이들과 나는 중간중간 마가 뜨는 대화를 이어갔다. 궁금한 게 정말 많았던 중2와 다르게 나에게 궁금한 것도 없는 열댓 명의 아이들과 대화를 하기란 쉽지 않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던 빨리 나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다음 조회 시간부턴 취미를 물어볼 거니까 꼭 생각해 오기라고 말하고, 첫 조회 시간이 끝났다. 15분이 지옥 같았다. 교무실에 돌아오니 담당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너무 조용하죠,, 선생님 교실에 있는데 정말 구해주고 싶었어요, 나도 제일 힘들어" 다행이었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게 약간은 위안이 되었다.
점심을 먹으며 선생님들과 대화를 하다가 11학년 이야기가 나왔다. 공통 주제는 아이들이 너무 조용한 것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나에게 애들이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를 너무 빨리 깨우쳤다며, 안타깝게 웃으셨다. 누가 그런 분위기를 조성했을까 생각해 보면 결국 어른들이다. 미안 ㅜㅜ.
아침 조회를 들어가야 하는 시간이 더 고달프게 느껴졌다. 그래도 착한 아이들이라서 반응은 조금 없어도 물어보면 대답은 다해준다. 며칠에 걸쳐 아이들의 취미 조사를 완료했다. 이 말은 할 이야기가 떨어졌다는 것, 내가 스몰토크를 못하는 줄은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못하다니 절망적이다. 수업 지도안을 작성할게 아니고 스몰토크 연습을 해야 할 판이다.
첫 주에 초등부터 고등까지 여러 수업을 참관하러 들어가게 되었는데, 정말이지 학년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말이 없다. 6학년은 선생님이 말할 틈을 주지 않고 발표하고 싶다고 손을 들었다면, 8학년은 수다스럽고 종종 발표를 한다. 선생님과의 대화도 적극적으로 임하는 편, 다만 좀 시끌시끌하게 임하는 편이고 11학년은 노이즈 캔슬링을 켜 논듯이 고요하다. 12학년, 고3은 선생님에게 우호적이고 적당한 수준의 티키타카와 협조가 된다.(교내의 학생 중 가장 어른답다.) 또 다른 학교에 가면 다를 수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나이를 먹어가며 톤다운이 되는 느낌, 파릇파릇하고 적극적인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는 학교여야 할텐데 싶은 마음이 드는 2주차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