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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직장인 밤에는 대학원생

직장인 교생 선생님의 순기능

by 이십일

나에게 고3 학생이 찾아왔다. 나에게 무슨 볼 일이 있는지 모르겠어서 처음엔 약간 쫄았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진 모습은 숨기고 "선생님!! " 부르는 말에 미소로 화답하며 "안녕하세요 ~ 왜 ~?" 하며 바라봤다. 아직 반말을 아예 하는 게 어색해서 이상한 반존대를 하고 있다. 친해지기엔 내가 먼저 말을 편하게 해야 할 것 같은데, 그게 잘 안된다. 이어서 건네온 질문에 약간의 감동을 받았다.


"선생님, 저 컴퓨터공학과에 가고 싶어요. 그래서 궁금한 거 여쭤보고 싶어요. 관심 있는 친구들과 함께 가도 되나요?"


"아 진짜 ~? 응 점심시간에 상담실에서 보자"


내 배경을 아는 학교 선생님들이 수업하시거나, 교무실에 온 아이들에게 해주셨던 말들을 기억하고 온 것이었다.


"교생 선생님 직업이 프로그래머니까 궁금한 거 물어봐~"

"선생님 컴퓨터 잘하니까 안 되는 거 있으면 물어봐 ~"


컴퓨터 잘 못해, 나도 안되면 껐다 켜 라는 말은 속으로 삼켰다.


뭐가 궁금한 걸까, 프로그래밍은 해봤을까, 내가 대답을 해줄 수 있을까? 하는 설렘과 걱정을 가지고 오전을 보내고 점심을 먹고 선생님들과 산책을 하고 4교시가 끝난 고등학생이 밥 먹고 올 시간쯤 상담실에 히터를 켜두고 앉아있었다. 올 때가 되었는데 싶어서 직접 반으로 찾아가 보니, 오려고 막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나를 보자마자 소리쳤다.


"어 쌤 ! 지금 가려고 했어요!! 잠깐 만여!! "


그리 급한 것도 아닌데 나를 보자마자 소리치는 모습을 보니 선생님 이란 타이틀이 편하지만은 않구나를 느끼며 천천히 오라고 말했다. 상담실로 들어와 내 앞에 3명이 주르륵 앉았다. 다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누가 먼저 이야기를 시작할지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안녕 얘들아, 우리 이름부터 이야기할까? 쌤 이름은 아까 수업 들어가서 알지? 너희 이름을 알려주면 좀 적을게!"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고민은 각양각색이었다.


프로그래밍을 좀 해본 아이의 질문은 나를 놀라게 했다.


"제가 새로운 언어를 이런 방식으로 공부하는데, 너무 비효율적인 것 같아요. 선생님은 어떻게 하세요? 그리고 이렇게 하는 게 맞나요?"


이런 고민을 할 만큼 프로그래밍을 해본 것에 놀랐고, 마인크래프트에서 모핑(커스텀 맵을 만들고 배포하는 것이라고 설명해 줬다.) 하면서 여기에 광고 붙여서 돈도 벌어봤다고 이야기하는데 속으로 나보다 나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 주며, 내가 일하며 괜찮다고 생각했었던 깨알 꿀팁과 도큐먼트와 친해지길 바라를 전해주었다. 눈을 반짝이며 물어보길래 아 정말 재밌다고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아이 덕분에 숙소에 가서도 새삼 놀라며 더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많네 하며 홀로 자아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내 일자리 지켜..)


게임 개발을 하고 싶은 아이는 아주 하고 싶은 말이 많은지, 말이 굉장히 빨랐다.


"선생님 저는 프로그래밍은 아직 해보지 않았지만 게임 개발을 하고 싶고 저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보고 싶기도 해요. 근데 제가 게임 개발을 하려면 C++을 할 줄 알아야 한다던데, 대학교에 가면 언어를 선택해서 수업을 들을 수 있나요?"


무엇으로 답변을 시작할지 고민하다가 일단 혼자 다하는 건 지금도 도전하면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조금 힘들겠지만, 그럴 땐 지금 너희끼리 같이 해보는 것도 방법이라며 말해주었다. 그리고 게임 개발을 왜 회사에서 하는지 조금 생각해 보면, 혼자서 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해. 혼자 모든 과정을 경험하는 건 좋지만 퀄리티 있는 게임, 너희가 주로 하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필요하기 때문이야. 거기서 소프트웨어 개발을 담당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지? 그리고 대학에선 하나의 언어를 골라서 수업을 들을 순 없고 프로그래머가 되기 위한 기초를 다진다고 생각하고 준비되어 있는 여러 수업을 들으면서 하나씩 쌓아간다고 생각하고 언젠가 학교에서 배웠던 내용이 어렴풋이 떠오르는 시간이 올 거야라고 전해주었다.


마지막 친구는 나와 같은 꿈을 가지고 있어서 더 놀라웠다.


"선생님, 저는 나중에 박사까지 하고(이 대목부터 범상치 않음을 느낌.) 해외 글로벌 기업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곳에서 일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남들과의 차별점으로 뭘 준비해야 하나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이 말은 내가 나에게 해야 할 말 아니었나?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정답은 잘 모르지만, 일단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지^^? 하며 웃어주었다. 동의하듯이 끄덕거리는 아이는 이윽고 다음 대답을 기다린다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지금 당장은 하나하나 눈앞에 놓인 퀘스트를 깨는 게 가장 급선무라고 이야기했다.


"너희의 현재 가장 큰 퀘스트가 뭐야?"

"대학 가는 거요 ㅜㅜ"

"그래 맞아! 잘 알고 있네 ㅎㅎ"


그것부터 차근히 하다 보면, 뭘 해볼지 뭘 하고 싶을지, 뭘 해야 할지 하나 둘 생겨날 거니까 지금부터 뾰족한 무언갈 준비하려고 고민하는 것보다 일단 하나씩 해야 할걸 해나가면 된다고 전해주었다.


궁금한 게 더 많아서 내일도 점심시간에 또 질문하러 와도 되는지 묻기에 흔쾌히 응했고, 내일은 컴퓨터에 관심 있는데 오늘은 오지 못한 다른 친구와 함께 오겠다고 했다. 내일은 정확히 12시 30분에 상담실에서 보자고 약속을 잡았다. 간식도 준비해서 가야지. 대부분 수줍어서 인사만 할 뿐 나에게 직접적인 대화를 요청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는데 이렇게 두 발로 찾아오는 아이들이 있다니 굉장히 기분 좋은 순간이었다.

벌써부터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있다니, 3명 모두 한국의 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진학을 희망하던데, 한국에 진짜 오면 밥 사줘야지 하는 결심을 혼자서 속으로 했다.


대학원에서 교생실습을 나와 사범대학 실습생보단 나이차이가 많이 나서 더 친해지기 힘들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오히려 장점이 되는 시간이었다. 내가 경험한 것에 대해 알려줄 수 있다니, 이걸 진심으로 듣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있다니, 대학 고민 상담에서 나아가서 진로 고민 상담을 해줄 수 있다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더 열심히 하루하루를 지내야겠다는 자극이 되었다. 아이들은 이걸 알까? ㅎㅎ


교사가 박봉이고 교권이 바닥으로 추락했고, 이제 직업명성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해도 한결같이 그 자리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존재하는 데는 이런 순간순간이 있기 때문인가 보다.


내일은 또 무슨 이야기보따리를 가져올지 너무 궁금하다.

최고의 답변을 해주고 싶은데 나도 부족한 사람인지라 최선을 다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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