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하는 첫 수업
모든지 첫 번째는 떨리는 법인데, 이상하게 아이들을 앞에 두고 하는 첫 번째 수업은 하나도 떨리지 않았다.
그저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 커서였을까? 제한적인 상황에서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음에 빠르게 순응한 탓이었을까? 오히려 아침에 긴장은 하나도 안 한 채로 미리 정보 교실에 가서 아이들을 기다렸다.
대학원에서 과제로 수업실연을 준비해서 진행할 땐 염소가 비웃을 정도로 목소리가 떨렸던 것 같은데, 오늘은 무슨 일인지 정말 초연했다. 나도 내가 새롭게 느껴졌다.
1-2교시가 연달아 정보 수업임으로 난 2시간 수업을 오늘과 다음 주에 해야 하고, 오늘은 1주 차 준비한 내용을 가지고 수업했다. 아이들이 재밌어하길 바라며 수업을 시작했고, 첫 시간은 이론 내용을 풀다 보면 시간이 다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간과한 게 있었다. 여기가 중국이어도, 한국 학교의 학생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한국인의 전형적인 특징인 '질문하지 않음'을 갖추고 있었다. 이걸 생각지 못하고 질문과 되묻는 발문을 꽤 많이 준비했는데 아이들은 내가 물어보면 눈치를 보거나,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거나, 아주 작은 목소리로(거의 입모양만 보여주는 수준) 말했다. 그중 한 두 명은 그래도 열심히 답해주는 아이들이 있었고, 이런 아이들의 호응에 수업을 차곡차곡 진행해갈 수 있었다.
너희라도 없었다면 나는 참 슬펐을 거야 고마워.
하지만 한두 명의 대답으로는 이야기를 더 발전시키기 어려웠고, 수업 시간이 부족하면 어쩌지 싶었는데 오히려 빠르게 끝나게 될 것 같아서 약간 당황스러웠다. 여유롭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호응이 그렇게 많지 않으니, 나 혼자 떠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속으론 엄청나게 당황했지만 당황하지 않은 척 연기하며(제법 잘한 것 같다.) 다음 시간 실습을 위해 미리 준비를 해보자고 이야기했다. 이럴 때만 비상하게 도는 두뇌는 실습 준비를 아주 천천히 준비하게 하기 위해서 제작 키트 수령도 첫 번째 분단부터 이동하도록 통제하고 케이블을 나눠주는 것도 분단 별로 시간을 들여 천천히 진행했다. 마지막 컴퓨터 수령까지 분단 별로 이동하게 했다. 어찌어찌 예상했던 시간에 도달하여 아이들과 함께 다음 시간 실습에 필요한 항목을 하나씩 준비했다.
컴퓨터를 받고 나니 예상했던 대로 조금 더 소란스러워졌다. 이때 처음 느꼈다. 선생님들이 발성이 엄청 중요하다는 것을. 괜히 마이크를 쓰는 선생님들이 있으신 게 아니었구나 하며 나의 학창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다음 수업도 해야 했고, 나의 목소리를 지키기 위해 어디서도 배운 적 없던 복식호흡으로 단전에서 끌어올린 소리로 말을 자연스레 이어나갔다. 산만하고 주의 집중이 흐려진 순간을 보니 컴퓨터를 계속 가지고 해야 하는 다음 교시에는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고 약간 서둘러 첫 번째 교시에 준비할 수 있는 부분을 마쳤다.
1교시가 끝나고 한숨 돌리며 참관을 오신 선생님과 몇 마디를 나누고 다음 수업 자료를 띄워두고 우습게도 화장실로 피신했다. 오히려 수업은 과제로 할 때보다 훨씬 잘했고, 톤도 너무 안정적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교실에 앉아 아이들의 시선을 받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왜 선생님들이 연달아 수업이어도 쉬는 시간에 교무실에 가시는지 내심 이해가 됐달까,,, 교생 실습을 와서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은 '선생님도 사람이다'가 맞을 것 같다. 왜 어릴 땐 역지사지가 안되었을까. 이제 와서 선생님들과 8시간을 붙어있어 보니 차츰 하나 둘 깨닫고 있다.
2교시 시작 2분 전, 교실로 돌아와 아이들을 기다렸다. 아이들이 하나 둘 들어와 나를 한 번 보고 제자리에 찾아가서 앉았다. 종은 쳤지만 아직 안온 아이들을 2분만 더 기다려보자 말하고 또 잠깐 기다렸다. 머피의 법칙처럼 꼭 한 두 명은 늦게 들어오더라고. 잠깐 기다려서 늦은 아이들까지 모두 모인 후 수업을 시작했다. 실습수업이었기에 해야 할 과제를 주고, 힌트는 PPT에 붙여두었다. 자고로 처음부터 다 알려줄 순 없으니 키워드로 힌트만 주었고, 아이들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막힌 부분이 어딘지 확인하고 앞으로 돌아와 전체 설명을 해주는 식으로 진행했다. 돌아다니면서 한 명 한 명 확인해 보니, 다 이해한 것처럼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는데 아직 하나도 못한 아이도 있었고, 내가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챗지피티한테 물어보고 있는 아이도 있었다.
45분 동안 아이들 사이를 정말 한 7-8바퀴는 돈 것 같은데 과제를 이행하는 방식과 속도는 천차만별이었다.
이때 약간 고민이 생겼던 것 같다. 지금 이 수업 속도를 어느 누구에게 맞춰야 할까. 딱히 결정은 못한 채로 난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시간과 기회를 제공하려 노력했다. 덕분에 수업 끝나는 시간 계산은 잘못했지만 말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우리가 있는 정보 교실에서 수업 끝종이 나오지 않아서, 유야무야 아이들을 좀 더 잡아둘 수 있었다. 쉬는 시간이 너무 소중한 걸 알면서 거의 3분을 더 잡아먹었기 때문에 약간 미안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얘들아. 하던 건 마무리해야지.
실습을 하고 나니 귀엽게나마 결과를 나에게 뽐내는 조도 있었다.
"선생님 ~ 저희 다 했어요." 하며 LED를 들어서 보여주는데 너무 귀여웠고 웃음이 절로 났다.
아 이런 뿌듯함으로 선생님을 하는 거겠구나 지레짐작하며 칭찬을 퍼부어주었다.
오늘 수업 내용을 정리하고, 빠르게 다음 수업을 안내하고, 정리까지 하고 나니 10시 13분이었다.
아이들이 정보 교실을 모두 빠져나감과 동시에 내 기운도 쏙 빠져나갔다. 2교시 실습 중간 즈음엔 꽤나 소란스러워지는 순간이 2-3번 있었기에, 그때마다 주의를 주는데 힘을 꽤 쏟았기에, 꽤나 체력소모가 되었던 것 같다. 폭풍 같은 오전 시간이 지나가고, 참관 오신 선생님께 피드백을 듣는 시간이 다가왔다.
마음은 후련하고 두근거렸다. 20년 경력이 넘는 선생님은 내 수업을 어떻게 보셨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내가 잘한 건 안정적인 운영과 주제 선정을 잘한 점이었다.
수업이 안정적으로 잘 진행되었고, 급하게 진행되지도 않고 안정적인 톤을 유지했다고 말씀해 주셨다.
원래 신규 때는 목이 다 나가니까, 발성을 연습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알려주셨다. 수업을 하면서도 느꼈는데, 선생님도 이야기하시는 거 보니 굉장히 중요한 덕목임에 틀림없었다. 아이들이 시시각각 켜대는 지방방송은 꽤나 시끄럽기에, 내 목소리를 잘 전달하려면 기계를 쓰던지, 통제를 잘하던지, 발성을 연습하던지 셋 중 하나인 것이다.
아쉬운 점은 주의 집중은 한 번에 되지 않는데, 여러 번 반복하지 않은 점과 안정적인 톤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하는 바람에 중요한 점 강조해 줄 때도 비슷한 톤이어서 아이들의 기억에 남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부분이었다. 나도 동의하는 바였다. 소란스럽다가 집중을 시켜도 내가 집중이라고 말하는 순간에만 나를 보고 바로 딴짓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도 인지는 했지만 실행하지 못했을 때도 있고, 다른 쪽을 바라보느라 아예 인지조차 못했을 때도 있을 것 같았다. 선생님은 근데 그런 아이들이 악의를 가지고 하는 게 아니고, 그냥 습관처럼 그렇게 되는 아이들이 더 많기에 주의 집중은 못해도 3번은 하도록 반복하는 게 좋다고 알려주셨다.
첫 번째 수업이 끝나고 나니 시원하고 후련했다. 가장 큰 관문을 통과했기에 마음의 짐이 굉장히 덜어졌다.
한번 해보았으니, 다음 수업은 어떻게 해야겠다 싶은 상상도 머릿속에 차곡차곡 펼쳐지고 있다. 잘 정리해서 진행하면 될 것 같다. (얘들아 도와줘!)
벌써 3주 차라는 게 새삼 놀랍다. 다음 주 수업을 하고 나면 이제 한국에 돌아가는 날이 정말 머지않았다.
정말 소중한 시간이 엄청 빠르게 가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자주 든다. 연차와 휴가를 모두 몰아 써서 교생실습을 왔는데 그에 상응하는 기쁨과 즐거움, 뿌듯함을 다방면으로 얻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에서도, 해외에서의 생활도 모든 게 새로운 경험이라서 리프레쉬를 제대로 하는 것 같다.
아마 한 달간 놀기만 했다면 이런 마음은 아니었을 것 같다. 그리고 꽤나 놀라운 사실은 수업으로 소모된 칼로리가 거의 200kcal 정도였다. 역시 말하며 돌아다니는게 최고인가보다.
제대로 추억으로 남을 행복한 시간이 만들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