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 30분 이후의 삶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8시 10분에 시작해서 4시 30분에 퇴근하는 삶을 2주 정도 살아보니 9 to 6와 비교하여 확실한 시간 여유가 생긴다. 물론 중국의 거대한 만리방화벽 안에 갇혀 유튜브를 못 보는 것도 시간적 여유를 만들어 주는데 한 몫하게 되었다. vpn을 바꿔가며 시도해 보면 유튜브도 볼 수 있다는데 그럴 때마다 무료 체험이 없는 vpn은 결제를 해야 하고, 결제한 이후에도 안 될 가능성이 있기에(중국은 불시 검열을 진행해서 접속 차단 사이트를 수시로 관리한다고 한다.) 그냥 유튜브를 보지 않기로 했다.
나의 소중한 핸드폰은 벌써 사용한 지 5년 차이기에 배터리가 금방 달고 뜨거워지는 것도 빠른 포기에 일조했다. 오히려 유튜브를 안(못) 보게 되어서 좋은 점은 저녁에 꽤 빨리 잠에 들고 숙면을 취할 수 있다. 핸드폰으로 할 게 없으니 내려놓고 눈을 감으면 금방 잠에 든다. 서울에서 잠에 들기까지 1시간은 족히 걸렸는데, 요즘은 누우면 5분 안에 잠든다.
4시 30분 퇴근을 하면 이것저것을 다해도 늦어도 9시다. 1시간 정도 걸어서 퇴근하고, 스트레칭 클래스와 스피닝 클래스를 참가하고 땀에 절어 숙소로 돌아오니 8시 50분이었다. 다른 날엔 산책을 2시간 해도 6시 30분이다. 시간적 여유가 생기고 딴짓할 거리는 사라져서 걷고, 뛰고, 운동하고 책을 읽는다. 한 달에 한 권은 읽자가 올해의 목표였는데 4월에만 벌써 2권을 읽고 다음 책을 시작했다. 운동도 서울에서보다 많이 꾸준하게 할 수 있다. 선생님의 최고의 복지는 4시 30분 퇴근이 아닐까 싶다. 진짜 선생님이 되어서 이것저것 하게 된다면 늦게 퇴근하는 일도 많겠지만 말이다. 요즘 나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은 학교가 끝나고 1시간 정도 음악을 들으며 걸어서 숙소를 가는 것이다. 날씨가 좋아 따뜻한 햇살과 좋아하는 노래로 무장하고 걸어가다 보면 금방 도착한다. 중국은 꽤나 깨끗하고 크고 넓어서 보는 재미가 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마음에도 여유가 있다. 회사+대학원을 갈 때는 뭐든 빨리빨리 그 자리에서 해결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고, 어떻게 해서든 내일의 무사 출근과 주말 이틀의 쉬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렸다. 그러다 보니 예쁜 걸 보거나 맛있는 걸 먹고 즐길 마음의 여유가 증발했다. 운동+회사+대학원을 마치 일일 퀘스트처럼 여기고 달성을 향해서만 뛰었고, 약간의 뿌듯함과 피곤함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길 반복했다. 중국에선 운동을 할지, 책을 읽을지, 맛있는 걸 먹으러 떠날지 선택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사실이 아주 만족스럽고 퇴근 후 이것저것 하면서 시계를 봤을 때 아직 6시밖에 안 됐다니 하며 놀라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회사를 다니면서는 시간차를 쓰지 않으면 꿈도 못 꿨을 듯한 순간이 펼쳐지고 있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교생 실습에 와서 회사를 다닌다고 말씀드렸더니, 한 달간 한번 학교생활과 직장생활을 비교해 보시라 이야기해 주셨는데 뚜렷한 장단점이 있지만, 무시할 수 없는 큰 장점은 이른 퇴근 시간인 것 같다. 쉬는 시간만 되면 각자의 이야기로 교무실을 찾아오는 아이들, 많지도 적지도 않게 걸려오는 민원 전화, 수많은 학사 일정에 필요한 자료, 문서, 기안 생성이 무한히 반복되어서 이걸 하는 것은 정말 힘들고 고될 것 같다. 그렇지만 가끔 발생하는 굉장히 뿌듯한 순간들이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오늘도 아이들이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오케스트라 공연을 점심시간에 진행했는데 한 달 후 떠나는 교생 선생님의 입장에서도 굉장히 기억에 남는 모습이었다.
열심히 연주하는 아이들, 이끌어주는 음악 선생님, 앉아서 구경하는 학생들과 주변에 서서 열띤 응원과 사진을 찍어주는 담임 선생님과 교과 선생님, 교장/교감 선생님까지. 살살 부는 바람까지 어우러져 아름다운 순간으로 느껴져 사진을 찰칵 찍어두었다. 학교를 다니다 보면 이런 순간들이 있기에 힐링이 되는 것 같다. 현직 선생님들은 우스갯소리로 말이 통하는 사람들과 일하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알게 될 거라고 하셨는데 그 부분도 약간만 깨닫고, 이 여유와 순간의 뿌듯함이 부러워지기만 했다. 나중에 하게 되면 좋겠다는 마음과 함께.
4시 30분의 즐거운 퇴근의 기억을 한국에 가져가서도 시간차로 종종 재현해야겠다.
중국에서 소소한 것에 즐거웠던 것처럼 한국에서도 소소하게 웃을 수 있는 사건을 많이 만들어서 행복하게 지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