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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직장인 밤에는 대학원생

교무실에 있는 교생 선생님

by 이십일

운이 좋게도(?) 교생실습 기간 동안 교무실에 공석이 있어 교무실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혼자 온 교생 선생님을 배려한 여러 선생님들이 중국인 교생 선생님들과 함께 하기엔 더 불편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아래 교무실에 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선생님들이 말씀해 주시길 원래 교생 선생님은 대부분 여러 명 오기에 학교의 빈 공간 a.k.a 골방(좋게 이야기하면 교생실) 같은 곳에서 그들끼리 지내고, 수업 참관이 있을 때만 교실로 오고 가고 하기에 이렇게 많이 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고 하셨다. 보통은 교무실에 자리가 없는 게 태반이라고도 말씀해 주셨다.


선생님 중 나를 담당해 주시는 선생님도 처음으로 교생 선생님과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해보는 거라고 하셨다.

학창 시절을 생각해 보면 교생선생님을 복도에서 지나다니는 것만 봤지, 선생님들과 함께 다니는 것은 그렇게 자주 목격하는 장면은 아니었다. 교무실에 상주하니 선생님들의 업무 일상을 볼 수 있었다. 이것 또한 꽤나 좋은 경험이었다. 신입의 마음가짐으로(나에게 아무것도 시키시진 않지만)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쫑긋하고 있다 보면 교내의 이슈와 선생님들의 회의 주제, 학생들 사이의 이슈를 모두 알 수 있게 되었다. 학교 다닐 때 어떻게 선생님들이 다 알고 있지 싶었는데 교무실이 화개장터였던 셈이다.


수업이 끝나고 오셔서 무언가 이슈가 있었을 땐 공유하시고, 다음 수업 선생님께 귀띔을 해주시기도 한다.

누구와 누가 사귄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아이들에게 어떤 권한을 어디까지 주실지에 대해선 치열하고 살벌하게 이야기 나누시기도 한다. 중국인 교생 선생님들과 교생실에 같이 있었다면 재미는 더 있었을지 몰라도(아니 중국어를 못해서 재미없었으려나) 교무실에 앉아서 실제 업무를 하시는 모습을 보고 듣는 게 더 유익하다고 생각했다.


교무실에 있으면서 나름의 가설도 검증을 했다.

"선생님이 이름을 알고 있는 학생은 어딘가 유별난 구석이 있다."

나도 교무실에 있어보니 자주 오거나 자주 언급되는 아이들의 이름과 얼굴은 기가 막히게 잘 매치가 되었다. 잠정 기정 사실화를 하고 있을 때 선생님 한 분이 말씀해 주셨다.


"나도 이름을 다 외우고 싶은데, 결국 문제아거나 무언가 좀 특출 나거나 야무진 애들은 교무실에서 이름이 자주 언급되고, 자주 오니까 걔네의 이름을 먼저 외우게 되어요."

"오히려 문제없이 조용히 잘 지내는 아이들 이름을 잘 못 외워서 약간 미안할 때가 있어요."


선생님에게 직접 답변을 들어서 좋았고, 주변 선생님들의 긍정에 역시 그렇구나 싶었다.

한편으론 대학교 때 교수님도 내 이름을 외우셨는데 교수님이 보기에 난 어느 쪽에 속했을지 약간의 걱정이 밀려오기도 했다.


2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지신 담당 선생님과 가까이 있어서 들을 수 있는 학교 이야기도 꽤나 재밌는 포인트였다. 실무자가 전해주는 깨알 같은 조언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은 상태로 교생 실습을 온 게 다행이었다. 조언뿐만 아니라 선생님들의 문화도 알려주셨는데 초등 선생님들은 주로 배구, 중고등 선생님들은 주로 배드민턴을 즐겨하신다는 이야기였다. 우스갯소리로 발령 날 때 배구/배드민턴 잘하는 선생님을 스카우트해가기도 한다며 말하셨다. 얼결에 학교 체육관에서 선생님들과 함께 배드민턴을 치게 되었는데 무림고수처럼 엄청 잘 치시는 분들이 많아 놀라웠고, 셔틀콕의 스피드가 살벌한 것을 보며 감탄을 연발했다. 오래간만에 하는 배드민턴이 즐겁기도 했다.


이 학교는 학생 수 대비 선생님 수가 정말 적은 편인데, 소수정예 선생님들이 학교의 모든 업무처리를 다 하는 것을 보면 업무 과중이 심각하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선생님 한 분이 수업에 들어가야 하는 학년이 3개 이상인 경우도 많고, 이외에 학교에 필요한 여러 업무 처리 및 아이들의 행사 주관 및 주최, 보상까지 고민하고 이행하려면 몸이 10개여도 모자랄 것 같았다. 계속해서 화두 되는 반복적인 업무, 보고용 서식 등을 정말 줄이거나, 자동화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더 확고해지는 순간이었다. 전공을 살려 아이들의 연구보고서 평가에 첨언을 약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는데, 그때도 이 많은 내용을 검수하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자동화하고 싶다는 욕구도 스멀스멀 올라왔다.


가장 놀라운 포인트는 수업을 다녀와서도 해야 할 업무가 산더미인데, 아이들이 부르면 모든 선생님이 빠지지 않고 환한 미소와 다정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음정 '솔' 정도에서 시작하는 음으로 답변해 주실 때가 가장 대단하고 프로페셔녈 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 왜 ~? 무슨 일 있어?"

"아 ~ 그래서 왔어 ~ 선생님이 해줄게"


프로페셔널을 넘어서 애정이 없으면 이게 가능한 일일까? 싶기도 하다.

하루하루 선생님의 대단함과 나는 어떤 학생이었을까? 를 계속 생각하게 하는 교생실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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