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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직장인 밤에는 대학원생

끝나가는 교생실습

by 이십일

교생실습이 끝나가고 있다. 이틀 후면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그날의 오후쯤이면 서울에 도착하게 된다.

마지막 공개 수업도 잘 끝냈다. 90분 내에 기획서 작성, 프로그래밍, 발표까지 다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기쁘게도 모든 조가 발표까지 마무리할 수 있었다. 발표 활동을 추가하면서도 이 활동을 꺼려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아이들은 꽤나 발표를 재밌게 잘해주었다. 능글맞게 연기를 하며 발표하는 조도 있었다.

모든 조 누락 없이 각자의 형형색색 결과물을 만들어내었다.


아 뿌듯함이라는 게 이런 걸까? 시간 내에 계획한 내용을 모두 진행하고 아이들도 꽤나 잘 따라와 주어서 즐거운 수업이 되었다. 교장 선생님과 담당 선생님들도 참관을 오셨기에 긴장이 되겠구나 생각했는데, 오히려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90분 동안 가야 할 길이 멀었기 때문이었는지 오셨을 때 눈인사 정도 나누고 아이들 사이를 종횡무진하며 안 되는 문제를 봐주러 다녔다. 나의 옆에서 수업 구성부터 지도안 피드백까지 주신 선생님은 분량이 많음을 아셨기에 마무리를 못할까 떨고 있던 마음을 아셨는지 프로그래밍 시간에 나와 함께 돌아다니시며 열심히 봐주셨다. (감사합니다.)


아이들 사이를 누비며 각자의 내용을 봤는데 이해하는 것도, 풀어내는 것도 각양각색이었다. 내가 맞다고 생각했던 방향과 일치하는 아이가 있는 반면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아이도 있었다. 처음에는 "어 이거 이렇게 하면..!"이라고 말했지만, 곧 대학원 교수님의 말이 떠올라, "그래, 이렇게도 할 수 있지 해봐!"라고 말해주었다. 그 방향이 돌아가는 길이어도 해보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찰나에 떠올랐던 교수님의 말은 아래와 같다.

"아이들이 커서 모두 프로그래머가 될 게 아닌데, Best Practice 바라지 마세요. 여러분의 역할은 그저 사고를 약간 확장해 주는 것일 뿐입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이런 뉘앙스의 말이었고 이 말은 꽤나 내 뇌리에 깊게 남아있는 말이었다. 이 일을 직업으로 삼았기에 회사에서 원하는 best를 찾아 헤매던 내가 교육으로써 사용하는 프로그래밍은 이렇구나, 어렴풋이 알게 되었던 계기이기도 하다. 일시정지 블록에 10초를 넣지 않고, 1초짜리 일시정지 블록을 10개 가져다 써도, 효율적이지 않을 뿐 의도한 대로 동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이 내용이 정말 중요한 포인트였는데 일시정지 1초짜리 코드를 10개 써놓으면 회사에선 바로 조인트 까이기에, 항상 간결하게 작성해야 한다는 직업병으로 아이들에게도 살짝 튀어나왔다가 번복하길 반복했다. 대학원에서 수업만 듣고 이야기만 들었을 땐 잘 이해하지 못했던 내용을 수업을 진행하고 선생님들께 피드백을 받아보니 교수님이 했던 말이 무엇인지 이제야 제대로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들에게 피드백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 말들도 되게 인상 깊었다.
한 선생님은 아이들이 이렇게 발표를 잘할지 몰랐다며 대부분 쭈뼛대고, 아주 간략히 만 이야기하고 들어가는데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능청맞게 발표하는 아이들이 많은 걸 보며 한국에서의 경험과는 달랐음을 설명해 주셨다. 나조차도 생각보다 발표를 잘해주어서 놀라웠는데, 한국과는 조금 달랐다는 부분이 신기했다.

준비를 도와주신 정보 담당 선생님도 아이들의 발표 실력에 놀랐고, 분량도 많고 처음에 하기에 어려운 게 프로젝트 수업인데 잘하셨다며 칭찬해 주셨다. 다른 선생님들도 아이들이 딴짓을 안 하고 모두 각자의 프로그래밍을 하고 서로 돕고 하는 게 아주 훌륭했다고 말씀해 주셨다.


처음에 수업을 준비하면서도 컴퓨터가 1인 1대이기 때문에 딴짓을 하는 거 아닐까 걱정되었는데, 걱정이 무색하게 아이들은 각자의 프로그래밍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이들 사이를 못해도 10바퀴는 돌았던 것 같은데, 그때마다 크롬 탭에 다른 게 있거나, 새 탭이 열려 있는 걸 보지 못했다. 내가 시간이 별로 없으니 집중해야 해, 5분 남았다. 이런 이야기를 지난 수업 시간보다 많이 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굉장히 협조적이어서 정말 고마웠어.


마지막 공개수업까지 마무리하고 나니, 마음이 무진장 편안해졌다.

이제 정말 중국을 떠나 한국을 가야 한다는 게 실감이 났다. 나의 출근 사실을 아는 담당 선생님은 이제 다음 주면 회사로 출근하시겠네요? 하며 놀리셨다. 영어 선생님은 이렇게 교생실습을 아쉬워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하셨다. 솔직히 말하자면 교생 실습이 아쉬운 것보단 해외에서 하게 된 교생 실습이 끝나는 게 아쉬웠다.
어딜 가던 새로운 것 투성이었던 한 달이 끝나간다니 믿기지 않지만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 남았다.


꽤나 긍정적인 영향을 준 오랜만의 학교 생활이었다. 선생님들과 이야기하던 시간, 교무실에서 펼쳐지는 많은 사건, 지나가기만 해도 밝게 인사하는 아이들, 다정하고 따뜻한 선생님들, 상담할 땐 생각보다 솔직하게 많은 걸 이야기하는 아이들, 오랜만에 먹을 수 있었던 급식, 다채로운 중국의 풍경과 음식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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