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생실습 끝, 컴백홈
꿈만 같던 시간이 다 지나갔다. 모두의 다정함으로 교생실습을 무사히 마쳤다. 너무 잘 적응한 탓인지, 중국음식이 아닌 한국음식을 먹으면 배탈이 나고 있지만(?) 금방 사그라들긴 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
한 달을 놀러만 왔다면, 이렇게까지 재밌진 않았을 것이다. 매일 같이 학교에 출근하고 퇴근하며 남은 시간을 알차게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더 많이 지치지 않고 여행도 할 수 있었다. 힘들어도 학교에 와서 초중고 여러 아이들의 밝은 인사를 들으면 힘이 날 수밖에 없었다. 아침에 피곤할 법도 한데, 아이들은 얼굴에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웃음기가 약간 사그라들긴 하지만.
한 달간 나의 엔돌핀을 담당했던 녀석은 학교 스쿨버스 맨 앞자리에 앉은 양갈래 머리 소녀다. 지치지도 않는지 선생님들이 탈 때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하고 귀여운 목소리로 외친다. 어제 술을 마셔 숙취가 있어도, 잠을 늦게 잤어도, 주말 여독으로 피곤해도 그 인사에는 모든 안면근육을 총동원하여 함박미소를 짓게 된다.
담당 학급의 아이들에게 선물과 꽃을 받았다. 해준 게 없고 자주 보지도 못한 교생 선생님이라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담임 선생님을 통해 10분 후에 교실로 오라는 이야기에 마음이 두근 했다. 중간고사 기간이라서 내심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보잘것없는 나에게 이런 선물까지 준비해 주다니, 쭈뼛대다 더 다가가지 못한 게 후회로 밀려왔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미 시간은 지났고 지금에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고 문을 열었다. 아이들은 고2답게 살짝만 웃으면서 꽃과 선물, 각자 작성한 편지를 건네주었다. 눈물을 흘렸어야 하는데, 마음은 감동받았지만 눈물은 출력이 되지 않았다.
웃으면서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미안해, 지금 엄청 감동받았는데, 눈물은 안나,, 안약을 넣고 왔어야 하는데 어떡하냐"
가는 날에 다 달아서인지 아이들도 조금은 말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10여분 남짓 웃고 떠들다가, 핸드폰 번호를 공유하고 한국에 오면 꼭 연락하기로 약속했다. 내 월급날은 5일이니까 이후로 연락을 하길 바란다며 웃으며 이야기해 줬다. 왜 항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은 했지만 기억은 안 나고, 마음과는 다른 말이 나가서 뚝딱이는 걸까. 마음의 절반만 표현된 것 같아 아쉬움이 들었지만, 그래도 진심이 전해졌길 바란다. 처음엔 그렇게 어색했는데, 이젠 장난도 치고 웃고 할 수 있게 된 게 정말 다행이다.
나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고, 소중한 인연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
교무실에 돌아와서는 헐레벌떡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말로 모든 걸 전달하지 못했으니, 글로 전달하고 가야지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한 자 한 자 적었다.
교장선생님이 훈화 말씀을 왜 그렇게 길게 하는지 이해가 가기도 했다. 이쁘니까 좋은 말을 많이 해주고 싶은 마음. 적당한 위트와 잔소리를 나름 섞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난 언제나 진심이고, 진심이었어 얘들아.
티가 잘 안 나서 그렇지,,,
선생님들도 정말 따뜻했다. 내가 하는 고민에 진심으로 고민해 주고, 조언도 아끼지 않으셨다. 한 분 한 분 아이들에게 진심인 만큼 나에게도 진심이셨다.
가장 많이 소통한 담당 선생님과는 마지막 밤 저녁을 같이 하며 즐겁게 술 여러 잔을 기울이고,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다시 생각해 봐도 운이 참 좋았다.
해외로 교생실습을 간 것부터 착한 아이들을 만나고, 다양한 배경에 열정적인 선생님들을 만나고, 학교 행사도 경험해 보고, 중국도 경험해 봤다.
걱정 가득했던 처음 떠날 때의 마음이 무색하게 더 지내고 싶었다. 여러모로 매우 좋은 경험이었고, 한 달의 시간을 통해 다양한 삶의 방식을 보면서 내가 원하는 게 과연 무엇인지 고민하는 게 숙제로 생겨난 것 같다.
즐겁고도 어려운 숙제를 남긴 교생실습 끝.
이제 출근하고 등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