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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직장인 밤에는 대학원생

어? 교생실습을 해외로 간다고?

by 이십일

대학원에 입학하고 교생실습을 가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단순하게 회사에서의 일정을 고려해서 한 1년 후에나 갈 수 있겠네 하며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1학기가 끝나갈 때쯤 교생실습을 해외로 갈 수 있는 걸 알게 되었다. 아쉽게도 코로나로 인해 19년도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운영되고 있지 않은 상태여서 이미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 보고서를 여러 번 읽어보며 “나도 갈 수 있겠지?, 가게 되면 방콕으로 진짜 가고 싶다” 하며 꿈과 기대를 품고 있었다.

이땐 아직 먼 이야기라서 가고 싶다는 마음만 가졌을 뿐 행동에 옮기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정신없이 2학기가 끝나가고 있을 때 코로나로 잠정 중단 되었던 해외 교생 실습의 문이 열렸다. 참가자 모집 공고가 올라왔고, 공지가 올라오자마자 봤던 나는 모집 과목에서 좌절했다. 컴퓨터교육 전공인 나는 모집 과목에 정보가 있어야 지원이 가능한데 정보가 없었다. 너무 가고 싶은 마음에 그 학교의 교육과정을 쭉쭉 읽어보며 과학교과 안에 속해 있는 정보 내용을 보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학교에 전화를 했다.


”과학 안에 정보 있는데 컴퓨터 전공은 지원 못하나요? “

“네 안됩니다”


당연한 결과였다. 엄연히 전공이 다른데 될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간절했기에 전화라도 해보자 싶은 마음이었다. 안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그럼 컴퓨터교육 전공은 갈 수는 있는 건지, 내년엔 열리는 건지, 그럼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지? 같은 아쉬움 가득 묻어나는 질문을 하고 전화를 마쳤다. 약간의 어필은 되었으리라 스스로 생각하며 마음을 다독였다.


또 시간이 지나 3학기를 열심히 다니던 중 25년 1학기 해외 교생 실습을 모집한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공지문을 천천히 읽어보았다. 속마음은 제발 정보가 있길 바라고 있었다. 로딩이 느렸던 웹사이트가 원망스러워질 즈음 페이지가 모두 로드되었고 모집 내용을 볼 수 있었다.

기쁘게도 모집 과목란에 정보가 있었다. 혼자서 박수를 짝짝 치며 학교에 전화해서 말이라도 해보길 잘했다고 나 자신을 칭찬하고 있었다. 자 그래서 어디로 가는 거지? 하고 정신 차리고 다시 보니 중국이었다.


으엥? 중국? China?? 하는 마음으로 학교 이름도 구글맵에 검색해 봤다. 진짜 중국이었다.

좋았던 마음이 애매모호해졌다. 내가 생각한 해외교생실습은 방콕에서 하는 교생실습이었기에 방콕이 안되면 다른 동남아로 가고 싶은 마음이었지 뜬금없이 중국이 등장할지 몰랐다. 평일엔 열심히 교생실습에 참여하고 주말엔 야무지게 돌아다니며 팟타이도 먹고 코코넛스무디도 먹어야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마라탕에 훠궈로 변경되어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심정이었다. 동남아를 기대했는데 동북아라뇨 선생님.

더 심각한 고민은 선발된 후에 하기로 마음을 고쳐먹고 지원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직장인이자 대학원생은 미루면 진짜 못할지도 모르는 사정이 생길 수 있어서 후다닥 작성을 완료해 제출폼이 열리기 3주 전에 작성을 완료해 두었다. 제출일이 다가와서 지원서를 제출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선발일을 기다렸다. 최초 공지문에 지원인원이 많은 경우 면접을 본다고 되어있었는데, 제발 나만 지원했길 바라며 면접은 제발 없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꼭 이러면 면접을 보게 되는 것이 수순 아니던가?
선발 결과가 아닌 면접 일정이 먼저 올라왔다. 면접보다 두려웠던 건 애매한 면접 시간으로 시간차도 아닌 반차를 쓰게 되는 것이었다. 면접은 간략하게 본다고 했기에 가볍게 지원 동기와 지원서 내용에서 물어볼만한 내용을 몇 가지 정리해 종이에 써갔다.


면접 볼 건물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는데 나보다 먼저 면접 본 선생님이 있었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어떤 걸 물어보시냐 물었고 선생님은 친절히 알려주셨는데 영어로 자기소개를 시켰다는 말에 난 웃을 수가 없었다. 감사를 표하고 급하게 복도에 있는 라디에이터 앞에 무릎을 꿇고 지원 동기를 정리한 종이 뒷면에 영어 자기소개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전화 영어 2년의 실력을 여기서 발휘해야지!! 하는 마음이었지만 Hi 만 쓰고 말을 잃었다. 다른 내용을 적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며 자괴감이 폭발했지만, 영어는 자신감이다라는 마음으로 문법이 맞는지 틀리는지도 모르는 문장 3-4줄을 어찌어찌 완성했다. 면접 시간이 5분 남짓 남은 무렵 대기실에 들어가 중얼중얼 외우기에 바빴다. 내 차례가 되었고 면접에 들어갔다.


영어 자기소개에 한껏 긴장을 한 나는 지원동기에 대해 대답하면서도 머리 한구석에서는 영어 자기소개를 복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웃기게도 나에겐 영어 자기소개를 시키지 않으셨다. 하하하.

다행인가? 아닌가? 싶으면서 면접은 끝이 났고, 결과는 12월 초에 알려준다고 하셨다.


12월 초가 되어서 하루하루 마음을 졸였다. 지원동기 말할 때 분위기 되게 좋았는데 잘 어필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다가도 영어 자기소개 유창하게 하신 분이 붙지 않을까? 난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했었다.


12월 첫째 주가 끝나갈 때쯤 선발자를 확인하라는 문자가 왔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내 이름이 보였다. 그렇게 중국으로 교생 실습 가는 게 확정이 되었다.


마라탕에 훠궈 먹게 생겼네라고 볼멘소리를 했던 마음은 어디 가고 기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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