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그 배우? 그가 소설을?
에세이도 아니고 소설을?
궁금증이 첫 번째였고, '그럼 나도?'라는 가능성을 품은 건 두 번째였다.
작가에 선입견을 둔 나를 반성한다.
내가 품었던 두 번째 물음을 물거품으로 만든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기대이상의 책이다. 차인표 배우는 없고, 작품만 남아있다.
자연이 허락한 것, 순리에 맞는 당연한 것들.'인어기름을 먹은 자는 천년을 산다. 한 번 먹은 사람은 그것을 다시 찾으려 한다.'
인어기름을 먹은 공랑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공영감은 덕무와 인어사냥 거래를 한다.
덕무는 숨을 못 쉬는 병에 걸린 딸(영실)을 살리는 병약이라 알려준 인어기름을 얻기 위해 흑암도로 인어사냥에 나선다. 어린 남매 인어를 잡아와서 광에 두고 어미 인어가 오기를 기다리며 인어에 대한 연민에 갈등한다.
“물고기일 뿐이야. 다랑어나 광어처럼. 물고기를 잡을 때 새끼가 슬퍼할 거라고 염려하지는 않잖아? 마찬가지야. 인어가 사람이었으면 육지에서 살았겠지. 물고기니까 물속에서 사는 거잖아. 그러니까 잡아먹어도 돼 광어나 연어를 잡아먹듯이”
덕무의 아들(영득)과 딸(영실)은 인어도 사람처럼 생기고 말을 한다며 잡아먹지 못하게 막는다.
“보고 싶은 사람을 다 볼 수 없는 것처럼, 하고 싶은 일을 다 할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살고 싶어도 먹으면 안 되는 게 있어요. 자연이 허락한 것, 자연스러운 것, 순리에 맞는 당연한 것들.
바람이 불면 구름이 움직이고, 해가 뜨면 아침이 되는 것. 씨앗 한 톨이 아름드리나무로 서서 새들이 가지에 앉아 쉬어가는 것. 꽃이 피면 지고, 철 따라 다시 피는 것. 누군가 일부러 꺾지만 않는다면 백 년이고 다시 피는 것. 이런 것들이 자연이 허락한 것.
아무리 고통을 주어도 어미 인어는 오지 않는다. 어미 없는 인어다.
영실과 영득이 풀피리로 인어소리를 내어 남매(찔레-짱아) 인어를 탈출시키고, 탐욕스러운 공영감은 호수에 남아 인어를 기다리며 끝난다.
“영실이는 나무처럼 살고 싶어 했다는 걸. 그 누구도 해치지 않고 살다가, 생명이 다하면 다음 생명에게 자리를 고스란히 넘겨주길 원했다는 걸. 하루를 살더라도 나무 같은 사람으로 살고 싶어 했다는 걸 아부지가 잊은 것 같대요.”
작품을 위해 수년간 자료를 수집하고 배경이 되는 흑암도는 독도에서, 인어는 강치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신라와 조선 말기를 오가고, 일제강점기에 무분별한 포획으로 멸종된 강치 이야기까지. 소설 속에 무궁무진한 역사와 욕망이 가득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욕망으로 가득한 현재를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들켜서 부끄럽다.
욕망과 욕심의 칼날은 자신을 겨누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여기 인어기름이 있다. 당신은 먹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