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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Oct 14. 2023

용기가 필요하지만 꼭 해야 할 일

되돌릴 수는 없지만 덮을 수는 있다

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의 행동, 뱉는 말들, 미치는 영향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 긍정적인 것도 그렇지만 특히나 부정적인 것들은 그 행동을 보고, 말을 듣고, 영향을 받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특히나 지울 수 없는 것이 된다. 이게 [새겨진다]로 표현이 가능한 일인 거다.


새겨진 부정적인 기억과 경험, [상처]는 미안하다는 말로 해결이 안 되며, 아무리 많은 보상을 준다 해도 완전한 위로가 되지 않는다. 되돌릴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복수를 꾀하기도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런 일들은 결국 본인뿐 아니라 주변에도 막대하고 광범위한 또 다른 부정적 영향을 미치며 파괴적인 결말을 맞기도 한다.


되돌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진짜로 더 말에 주의하려고 노력하고, 내 행동과 내 작은 영향이라 해도 그것의 속성이 긍정인지 부정인지를 늘 신경 쓴다. 작아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변에 주고 싶기 때문에..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나도 모르게 나쁜 버릇이 툭 튀어나와서 원치 않았던 일을 벌이기도 한다. 어릴 때는 그나마도 사과도 안 했다. "네가 자처한 일이니까 네가 감당해. 네가 그러지 않았으면 나는 이렇게 너에게 행동하고 말하지 않았을 거야."하고 책임을 상대에게 넘겨주었다. 정말 얼마나 나쁜 사람이었는지.. 물론 몰라서 그랬던 것도 있으나, 팩트는 분명하다. 나는 나쁜 말로 부정적 영향을 행사했고, 상대방에게는 상처로 마음에 새겨졌다는 것이다. 이런 일은 정말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용서받는다 해도 그 사람의 기억에서 사라지지는 않는다.


한 가지 해결 방법이 있다. 자질구레한 노력으로 무마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덮는 것]이다. 무엇으로 덮을까? 우선은 [나의 진솔한 고백]을 덮었다. 내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내 스스로 짐작 가는 부분과 함께 나 조차도 왜 그랬는지 잘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에 대해 공유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야말로 내가 한 행동에 대해 내가 스스로 제삼자가 되어서 진솔한 피드백을 해보면서 상대에게 고백하는 거다. 아마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상대방도 어이가 없지 않을까? 그러면 상대방은 계속해서 내가 왜 잘못했는지, 내 행동이 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가져다줬는지를 설명하고, 본인의 원래 전달하려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그렇게 몇 차례 더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보면 내가 잘못한 부분들이 조금씩 드러난다. 상대의 입장에서는 내 말이 정말 가시 돋친 말로 새겨졌던 것이다.


그러면 [진솔한 인정과 사과]로 덮는다. 내 잘못을 인정한다. 그와 함께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님도 분명히 한다. 상처를 주려고 대화를 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때는 싸우려고 작정하고 나서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때에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그렇게 상대에게 상처를 쌓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정해야 한다. 내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대화가 진행되어 버렸고, 그렇게 대화를 이끌어 간 나에게 잘못이 있다고.. 의도치 않은 대화의 전개도 사실은 내 잘못이다. 어쩌면 순간적인 감정에, 또는 여유 없는 내 마음 상태에 통제력을 잃고 부정적인 방향으로 소통을 몰아간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 상태가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이 상처를 받을 이유는 없는 일이다. 이 과정은 변명을 하거나 내 입장을 변호해서 보호하는 과정이 아니다. 나의 잘못한 점을 솔직하게 상대에게 내어놓는 과정이기 때문에 원래 내가 의도했던 바를 다시 바로 설명을 하거나, 내 안에서 나로 하여금 그렇게 말하게 했던 내 마음 상태의 백그라운드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뱉은 말과 내 원 의도의 갭이 느껴질 것이다. 그것에 대한 솔직한 피드백을 입으로 시인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으로 인정과 사과가 진정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미안!" 하는 한 마디로 사과가 다 되지는 않는다. 상대방이 꽤 큰 충격과 상처를 받았다면, 한 마디 사과가 아니라 백 마디로 소통을 하는 것이 맞다. 가족이나 친구나 연인처럼 친한 사이라면 더더욱 그래야 한다. 이것은 소통에 대한,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책임감을 갖는 행동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대방을 더욱 깊이 생각하는 [사랑]으로 덮는다. 이건 쉽게 말하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전 단계에서 내 진솔한 사과를 받아준 상대방에게 굳이 그 자리에서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앞으로의 시간을 상대방과 지내면서 다시는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상당히 많은 고민을 해야 하고 많은 부분을 고려해야 할 수도 있다. 근데 나는 그 고민하는 과정을 사랑이라고 하고 싶다. 이전에 나누었던 대화를 기억하고, 그 대화에서 내가 잘못했던 것, 상대가 상처받았던 포인트를 기억하고, 앞으로의 일에 적용하는 식으로 시뮬레이션을 그려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뭐가 그렇게 복잡해? 싶지만, 이런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상대방은 내가 자신을 얼마나 생각해 주었는지 말하지 않아도 느끼게 되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난다.


부정적인 영향은 새겨지는 것이기 때문에 한 번 새겨지면 지우기가 어렵다. 하지만 덮을 수는 있다. 마음의 스크래치가 덮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가능하다. 지난 아픈 히스토리를 사람들은 다 기억한다. 하지만 진솔함과 신뢰로 덮인 히스토리는, 상처의 기억뿐 아니라 어떻게 덮였는지도 함께 기억하기 때문에 나에게 상처 준 저 못난 사람을 다시 한번 수용해 주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참 요즘은 소통이 제일 어려운 것 같다. 세대 간의 이해관계와, 모든 사회의 구성원들의 자리에서는 수많은 입장과 생각과 각자의 백그라운드가 깔려서 뒤섞인 채로 어지럽게 살아간다. 이런 세상 속에서 때로는 끝까지 붙잡고 나가보는 것도 참 중요한 것 같다. 나와 가까운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래야 한다. 큰 용기가 필요하고, 막상 마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마냥 피하고 싶을 때도 많을 거다. 하지만 삭막해져 가는 이 시대 가운데 누군가 나를,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밑동에 많은 스크래치를 가졌더라도 여전히 아름다운 나무 한 그루와, 그런 나무들이 무수히 모여있는 아름다운 숲을 끝내는 발견하게 될 것이다.




22.1.8. s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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