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사람을 만나고 이제 막 친해지기 시작할 때, 관계에 대해서 제일 긴가민가 한 시기가 찾아오곤 한다. 물론 한참을 알고 지낸 사람들과도 간혹 이해관계의 문제로 혼란스러울 때가 찾아오지만, 새 학기, 입사, 새로운 모임에 참여하거나 새로운 뭔가를 시작할 때 완전히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닌 한은 사람과 반드시 대면해야 한다. 그럴 때 고민이 드는 것, "이럴 때는 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답을 얻으면 정말 좋겠지만, 답을 얻지 못하면 일단 멘탈부터 잘 붙잡아야 할 일이다.
추가적으로 디자인 공부가 하고 싶어 디자인 과정을 추가로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매우 밝고 붙임성 좋은 친구 하나가 고민이 있다며 다가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들어보니 자기 주변의 한 친구가 하는 일마다 딴지를 거는데 조금 심하다 싶을 만큼 건다는 거다. '그걸 굳이 그렇게 해야돼? 이렇게 하면 더 나아!'하며 사사건건 참견을 했고, 그렇게 한 번 시작하면 본인의 마음은 너무 괴롭더라는 거다. 그래서 하루는 정말 기분이 많이 상했다고 했다. 솔직히 조금 의외의 소식이었다. 수업이 시작된지 얼마 안됐는데 벌써 그런 일이 있었다고..? 그래서 나도 뭐에 머리를 맞은 것처럼 머리가 띠잉 했고, 일단은 방금 들은 이야기에 대해서 정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잠깐동안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상대 친구가 그러는 이유가 뭘까 하고 같이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여러 생각과 말이 오갔는데, 첫 번째 추측은 (어디까지나 추측이었다. 뒷담이라기 보다는.. 혹시 대처법이 나올까, 다음 번을 대비할 수 있을까 해서였고, 몇가지로 생각을 추려놓으면 대처하는데도 조금은 도움을 받을 거 같아서) 그 친구는 그냥 원래부터 말을 필터링 없이 하는 친구일 수 있다는 것. '에이 어떻게 사람이 말하는데 필터링 없이 말하겠어~'하고 순진하게만 생각했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을 만나보고 정말 놀라워했던 것처럼 필터링 없이 말하는 사람의 존재는 늘 새롭고 놀라운 것이 아닐까..? 두 번째는 그 상대 친구는 싫어하는 사람에게 그렇게 마구 말을 던지는 사람일 수 있다는 것. 그러니까 지금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친구를 싫어한다는 거지. 그럴 경우에는 은근한 비교의식이 동반될 것이고, 어떻게든 자기의 약점은 감추고 상대를 까내리기 위해서 평소에도 가시 돋친 말로 공격하는 경우일 거다. 그것 역시 충분한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참을 또 이야기하다가 마지막 세 번째가 떠올랐다. 어쩌면 그 친구도 자기의 말이 남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모르고 있다는 거다.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잘 알고서 살아가는 건 아니다. 현재 진행형인 상태로 평생 배우는 거지... 주변을 보면 오히려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들 비중이 더 많은 거 같다. 만약에 세 번째 경우라면 안타까운 상황이지 않을까 싶었다.
친구는 본인이 그냥 예민하게 구는 건지, 아니면 그 친구가 잘못한 게 맞는지 혼자 생각하고 있으니 혼란스럽고 스스로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하며 힘들어했다. 그렇게 그렇게 이야기를 들어주며 둘이서 추측은 여러모로 해보았지만, 사실 해답은 간단했다. 어쨋든 유난히 속이 상했던 그날은 간접적인 방법으로 마음이 상했음을 표현을 했다고는 했다. 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의사 표현을 분명히 해야 할 일이었다. 그냥 대체 왜 그러는 건지 물어라도 봐야 했다. 언제가 됐든 어떻게 됐든 기회가 생겨서 그 친구와 둘이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그저 니가 느낀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라고 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대화는 끝났다. 그리고 예상했던 것처럼 정말 얼마 안 돼서 둘이서 이야기를 하게 됐다며 상황을 알려주러 친구가 날 찾아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제일 가슴 찡하게(?) 났다. 친구가 자기에게 무례하게 굴던 상대 친구에게 가서 솔직한 말로 '내가 너의 그 말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고 이야기했단다. 그랬더니 정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본인은 정작 인지를 못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미안했다고. 다시는 그렇게 말하지 않겠다고 했단다. 세 번째 경우였다. 사람과 같이 살면서 겪는 문제들은 정답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없는 경우(정답을 내릴 수 없는 경우)도 분명히 있는데, 이 친구는 그다지 정답이 없는 일(정답을 내릴 수 없는 일)을 가지고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던 거다. 그러니까 태클을 계속 거는 그 친구가 이해가 안 될 수 밖에 없었던 거다. 나이도 본인이 더 많았고, 자기보다 어린 친구한테 아무것도 아닌 일 가지고 계속 시비 걸려야 하는 게 제일 힘들었다고 했다.
이 둘 사이의 일은 결국 [소통의 문제]였던 거 같다. 두 가지의 소통 타이밍이 필요했는데, [첫 번째로 됐어야 했던 소통]은, 태클아닌 태클을 걸던 그 친구는 자기에게 '더 나은 방법'이 있었다면 '시비조'로 말할 게 아니고 '더 나은 방법이 있으니 이걸로 해보는 게 어떠냐' 하는 식으로 제안하듯 던졌어야 했다는 거다. 그래야 설득이 되고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졌을 텐데, 아무래도 그 친구가 가진 특유의 화법이나 평소 고유한 태도가 있었겠지 그런 요소들 때문에 본인도 모르게 태클 걸듯이 전달이 됐을 거다. 그러다 보니 이제 막 친해지기 시작한 이 둘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고 최근에 와서 그게 터진 거였다.
그리고 그렇게 꼬인 관계를 푸는 것도 소통뿐이었다. 이게 [두 번째 소통]이다. 만약에 그 친구가 원래 말을 그렇게 막 하는 친구거나(추측1), 특정 인물이 싫어지면 일부러 무례하게 구는 친구였다면(추측2) 소통으로 해결이 안 될 수도 있는 일이었겠지. 하지만 감사하게도 세 번째 케이스였기에 소통으로 다가가는 것이 적절한 방법이었던 거다. 그냥 혼자서 짐작해보건데 어쩌면 오히려 그 태클 걸던 친구에게는 고마운 일이 됐을지도 모른다. 본인조차 모르던 자신의 나쁜 모습을 상대방이 인격적인 자세로 다가와 이야기를 해주는 일은 서로의 선을 너무 극명하게 지키는 요즘 2030 세대에게는 조금 특별한 인카운터(encounter)이기 때문이다. 본인이 아무리 잘못한 게 맞아도 내가 잘못했음을 일깨워주는 말은 지적하는 것만 같아서 얼마든지 싫을 수도 있고, 말을 하는 상대방의 의도를 잘못 받아들이면서 오히려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을 텐데, 그 친구는 자기에게 온 피드백을 공격적으로 받지 않았고, 듣고 자기를 돌아보고 이해하고 수용했다. 그리고 진심 어린 사과도 했다. 아마 그 대화를 하는 순간은 둘이서 서로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고 서로를 더 알아갈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을 거다.
소통이 진짜 어려운 게 맞다. 소통이 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거 같다. 하지만 소통은 사람이 사람으로서 사람과 살면서 가장 기본 밑바탕에 깔리는 것이고, 가장 정직하고 가장 귀한 거다. 그리고 가장 즐거운 일이 될 수도 있고, 가장 감동이 될 수도 있다. 잘 된 소통은 마음도 치유하고 좁아진 속도 넓혀주고 꽉 막힌 생각도 열어주고 나누어진 것도 연합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래서 나는 소통이 좋다. 그리고 그런 소통의 이점 때문에 소통에 대해서 늘 고민하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나도 소통을 늘 잘하는 건 아니다. 과거의 나는 아마 세상에서 제일 못난 소통 방식을 가졌던 사람이었을 거다. 다행히 지금은 조금 나아졌고 아직 더 나아져야 하겠지만, 하나 둘 알아갈 때마다 내 앞에 닫혀있던 문들이 하나 둘 열리는 것 같은 상쾌한 기분을 맛본다. 소통하는 것이 좋아서 상처 많은 기억을 접어두고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고 사람이 궁금하게 될 정도니까 어쩌면 소통 중독이 아닐까? 이런 중독은 좋은 중독인 거 같다.
아무튼 그렇게 그렇게 사람은 부대끼며 산다. 그렇게 살 수밖에 없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 반강제적으로라도.. 그렇기 때문에 늘 숙제처럼 이런 일들이 인생의 도마에 끊임없이 오른다. 또 소통은 갈고 닦여야 둥글어지는 돌처럼 계속해서 부딪혀봐야 하는 거다. 위에서 말했던 친구처럼 사람이 자기가 뱉는 말이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줄 계속 모른다면 한 두사람에서 끝나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똑같이 상처를 주게 되겠지. 그러면 누군가는 말 없이 피하거나(손절), 누군가는 기분나쁘다고 말을 하거나, 아니면 누군가는 분명 정상적인 소통을 시도하기 전에 냅다 싸움부터 걸었을 수도 있다. 그런 식으로 인간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고 그런 안 좋은 경험들이 쌓이다 보면 스스로조차 눈치 못 채는 사이 조금씩 대인관계가 힘들어졌을 거다. (친구가 안 남거나, 다가가는 것보다 떨어져나가는 속도가 더 빠르거나...) '정녕 나한테 문제가 있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내가 뭘 잘못했는데!' 사이의 혼란 속에서 헤매게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 스톱시킨 소통의 기회가 이 친구에게는 주어진 거다.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던 친구가 상대 친구와의 소통을 잘 마쳤다는 소식을 전해주면서 했던 말이 "이런 소통을 통해서 사람의 생각이나 태도가 개선이 될 수 있다는 걸 배웠다."였다. 난 그 과정을 엿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잘 된 소통의 영향이 사람 관계 속에 선하게 작용하는 걸 보면 나도 괜히 가슴 찡해진다. 그 후로는 그 둘이 다시 화목해진 게 눈에 보였다.
두려워도 한 번 더 다가가보자. 지레짐작은 소통에 가장 독이다. 표현 방식은 어떨지 모르나 진심이 묻어난다면 잘 된 소통이다. 그런 어설픈 소통 과정이라도 처음에는 아무래도 겪는 게 좋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겪다 보면 경험이 쌓이면서 두려움에도 조금 무뎌지게 되고, 크고 작은 케이스가 쌓이니까 각 경우에는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일도 수월해지고 소통의 노하우도 생긴다. 물론 그런 어설픈 소통 과정을 안 기다려 주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그냥 내가 제끼면 된다. 그 사람에게도 내가 안 맞듯이 나에게도 그 사람이 안 맞는 것뿐이다. 안 맞는 것을 억지로 맞출 수도 없는 노릇이다. 뭔가 또렷한 공동의 목표가 있지 않는 한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에 안 맞는 사람과 굳이 억지로 호흡을 맞출 필요는 없다. '호흡을 맞출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어쩔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냥 또 다른 소통의 기회를 찾으면 되는 일이다. 그러니까 너무 상처받지 말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소통을 도전해 보도록 하자.
모두가 소통의 중요성을 알게 되면 좋겠다. 소통의 매력도 알게 되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 마음 졸이고 머리 싸매며 스트레스 받는 일이 없어지면 좋겠다.
2022. 4. 16. / 사람과 부대끼기_사람으로 사람과 살기